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과장과 방불)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과장과 방불)
  • 독서신문
  • 승인 2013.12.2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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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_ 감성과 오성 사이 - 한국 미술사의 라이벌
최근 대학의 상아탑 안에 머물던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강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는 이같은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고 인문학 열풍을 더욱 확산시키고자 유명 석학들의 강연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편집자 註


[독서신문] 조선 후기 화가들은 조선의 아름다운 산하, 곧 우리나라의 명승(名勝)을 즐겨 화폭에 담았다.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 일컫는다. 실재하는 풍경을 그렸기에 붙여진 명칭이자, 한국회화사에서 커다란 업적으로 주목받는 영역이다. 조선의 화가가 조선 땅을 그림은 당연한 일임에도, 진경산수화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 그 이유는 중국 송(宋)-명(明) 시기의 산수화풍을 기리던 관념미에서 벗어나 우리 땅의 현실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런 회화경향은 풍속화나 초상화 등의 인물화와 마찬가지로 조선적인 것과 당대 현실을 중요시했던 후기의 새로운 문예사조와 함께 한다.
 
조선의 문인과 화가들이 자신들이 사는 땅에 애정을 실어 실경을 그린 시점은 조선시대를 전ㆍ후기로 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17세기 중반은 전란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시기였으며,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에 따른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대륙이 만주족의 지배 아래 놓이자 숭명(崇明) 의식이 강했던 조선의 문인들에게 충격이었고, 일부에서는 북벌론이 제기될 정도였다.

조선 사회는 ‘소중화(小中華)’ 내지 ‘조선중화(朝鮮中華)’, ‘주자종본주의(朱子宗本主義)’ 같은 용어가 쓰일 정도로 성리학(性理學)의 학통을 고수하려 했다고 본다. 이런 이념을 강력하게 표방하며 조선 후기를 집권했던 세력이 서인(西人)ㆍ노론(老論)이였다. 그 핵심 인사들과 절친하던 숙종ㆍ영조시절의 진경작가가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이다. 겸재는 17세기 실경도와 산수화의 전통을 이었으면서도, 그와 완연히 다르게 자신의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했다. 중국화풍이 정착된 ‘몽유도원도’ 이후 근 300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진경산수화와 더불어 조선 후기 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지도제작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땅의 아름다움을 예술적으로 접근했던 동시기에 땅의 행정, 경제, 정치성을 담은 지도의 과학화가 진행된 사실은 조선 후기 문화를 융성하게 한 저력이라 여겨진다. 겸재 진경산수화풍을 따른 회화식 지도의 발달은 물론이려니와, 윤두서 이후 정상기(鄭尙驥), 신경준(申景濬), 정철조(鄭喆祚), 김정호(金正浩) 등의 전국지도나 도별지도 역시 지리정보 외에도 시각적 아름다움을 지닌 회화성을 구가한다.
 
 
마음에 품은 진경그림 - 겸재 정선
 
▲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겸재는 조선의 절경명승에 걸맞는 독창적 형식을 창출했다. 먼저 실경 대상을 중앙에 부각시키거나 전경(全景)을 부감하여 재구성하는 구도법을 꼽을 수 있다. 붓을 곧추세워 죽죽 내리그은 난시준(亂柴) 혹은 열마준(裂麻)으로 일컬어지던 수직준법, 부벽준의 변형으로 농묵 붓자욱을 중첩한 적묵법(積墨法), 붓 끝을 반복해서 찍는 미점준(米點), 연한 담먹의 부드러운 피마준(披麻)과 태점(苔點), 붓을 옆으로 뉘여 ‘丁’모양으로 측필(側筆)을 반복한 솔밭 표현, 그리고 한 손에 붓을 두 자루 쥐고 그리는 양필법(兩筆法) 등이 겸재의 개성적 화법이다.

이들은 송-명대 전통적인 화원의 북종화풍과 당대 화보나 그림을 통해 익힌 피마준과 미점의 남종문인화풍을 자기화하여 개발한 것이다. 조선의 풍경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이런 점이 겸재를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완성자이자 조선 산수화의 거장으로 만들었다.

겸재가 그린 진경작품의 현장을 답사하다 보면 과연 실견하였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닮게 그린 예가 거의 없다. 아마 1751년작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삼성미술관 리움)를 제외하고는 실경과 닮지 않게 그리기를 일관한 듯하다. 심지어 가까이 살던 장동팔경(壯洞八景)을 그린 작품도 실경과 크게 차이가 난다. 보지 않고 그리거나 감정이 지나쳐 과장이 심한 ‘구라체’라 일컬을 만할 정도이다. 혹은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데서 오는 기초 묘사력의 결여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지나치게 감성을 노출하면서도 화면구성이나 과장방식, 그리고 필묵법 등은 겸재가 주역에 밝았다고 하듯이 음양론을 따진 이지적이고 논리적인 면모도 읽힌다. 예컨대 울진의 ‘성류굴’(간송미술관)을 보면 가운데 선바위가 우뚝하다. 현장에 가보면 쌍굴이 있는 암반은 토산에 붙은 형국으로, 우뚝하게 과장할 별 여지가 없다. 결국 겸재는 굴의 여성성에 빗대어 남근형 바위를 세워 음양의 조화를 맞춘 셈이다. ‘금강전도’의 원형구도, 토산의 미점과 암산의 수직준 대비효과 등도 음양론으로 해석된다.
 
 
눈에 비친 실경그림- 단원 김홍도
 
▲ 단원 김홍도의 ‘소림명월도’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는 도화서(圖畵署) 화원 출신으로 산수, 인물, 풍속, 동물, 화조화 등 모든 회화영역에서 필묵(筆墨)의 기량을 뽐낸 작가이다. 단원에 대해 표암도 ‘자연의 조화를 빼앗을 정도로 잘 그려 예전에는 이런 솜씨가 없었다’며 ‘천부적 소질과 명석한 머리’를 상찬해 마지 않았다. 이 평가에 손색없이 단원은 우리 전통회화의 고전적 전형(典型)으로 삼을 만큼 탁월한 사실력의 명작들을 남겼다.

단원은 또 산수화풍과 실경 사생법을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1769)에게 배웠고, 표암과 더불어 능호관 이인상(凌壺館 李麟祥, 1710~1760) 같은 화가의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 정신을 받아들였다. 물론 겸재의 영향도 단원의 회화적 기반을 튼튼하게 받쳐줬다.

단원의 진경산수화 작품은 어느 회화영역보다 예술성이 빛난다. 1788년 정조의 어명으로 선배인 복헌 김응환(復軒 金應煥, 1742~1789)과 금강산 일대를 여행하며 사생해본 이후 실경을 포착하는 기량이 크게 다져졌다. 곧 화가가 서있는 위치에서 바라본 대로의 형상을 화폭에 담는 방식을 완성한 것이다. 1795년 작 ‘을묘년화첩(乙卯年畵帖)’의 ‘총석정도(叢石亭圖)’(개인소장), 1796년 작 ‘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의 ‘옥순봉도(玉筍峯圖)’나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삼성미술관 리움)가 좋은 예이다. 서양화법에 능숙했다던 단원 진경작품의 현장에 서면 대체로 그림과 동일한 구도가 초점거리 50mm내지 35mm 렌즈의 카메라 뷰-파인더에 고스란히 잡힌다. 단원이 마치 카메라 옵스쿠라를 사용해본 것 같은 인상이 들 정도이다.

단원의 진경화법은 다른 화가들에 비해 대상의 실제를 닮게 인식하는 ‘진경(眞景)’의 의미로 근대성에 접근해 있다. 성리학적 이념의 마음이 아닌 인간의 눈에 비친 풍경을 정확하게 그렸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를 염두에 두면 단원과 그를 좋아하던 당대 문인들은 자신들이 서있는 땅이 곧 이상향이라는 생각을 가졌을 법하다. 여기에 단원의 부드럽고 연한 담묵담채와 분방한 필치는 실경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다. 마치 유럽의 19세기 인상주의를 연상케 할 정도이다. 우리 19세기 회화가 단원화풍을 한 단계 발전시켰더라면 하는 가정을 떠오르게 할만큼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잘 알다시피 단원 이후에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세한도’(손창근소장)로 대표되듯이, 망막에 어리는 대상보다 심상(心象)을 표출해야 한다는 서권기(書卷氣)ㆍ문자향(文字香)의 남종문인화풍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사회의 몰락기 문예현상이기도 하며, 18세기의 현실미가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한 풍토에서 나온 결과로 여겨진다.

 / 정리 = 윤빛나 기자
 
*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이태호 명지대 교수가 ‘감성과 오성 사이 - 한국 미술사의 라이벌’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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