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책의 날'과 '사색'의 위기
'세계 책의 날'과 '사색'의 위기
  • 조석남
  • 승인 2013.04.3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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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남 편집국장     © 독서신문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젊은이들이 사색은 하지 않고, 검색을 주로 한다."

이 시대의 뜻있는 지성들은 한결같이 '사색'이 부족한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우려한다. 이의 해결을 위해 "넓고 깊게 보게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며 "그것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검색'을 '사색'으로 바꾸는 것.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인터넷 문화를 바로잡는 것. 기성세대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다. 게임과 인터넷에 빠진 젊은이를 책과 신문으로 인도하는 건 디지털을 아날로그로 바꾸는 것처럼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같은 젊음의 영웅들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빌 게이츠가 미래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디지털 혁명에 대해 쓴 책은 『생각의 속도』다. 제목으로 뽑은 '생각'과 '속도'는 게이츠의 삶을 규정하는 두 개의 핵심 키워드다. 스피드광인 게이츠가 '속도'에 대해 숱한 화제를 뿌린 것처럼 '생각'에 대해서도 유명한 일화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게이츠는 어머니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게이츠에게 "저녁을 먹으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도 아들의 대답은 없었다. 어머니는 참다 못해 차고로 내려가 게이츠에게 소리쳤다. "식사하란 소리 듣지 않았어? 도대체 지금 뭘 하고 있어?" 게이츠는 짧게 대답한다. "생각하고 있다"고. 어이없어 하는 어머니에게 게이츠는 결정적인 한 마디를 더 던진다. "엄마는 생각하려고 노력한 적이라도 있나요?" 그 뒤로 어머니는 아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와의 전쟁을 포기한다.
 
지난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22일 광화문 일대에서 책과 장미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펼쳤다. 23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책드림 데이' 행사를 열었고, 서울시교육청은 한국출판인회의와 함께 '책 읽는 서울교육'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책의 날'은 세계인의 독서증진을 위해 유네스코가 1995년 제정했다. 이날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책과 꽃을 선물하던 '세인트 조지 축일'이자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의 서거일. 카탈루냐 지방에서만 하루에 책 40만 권, 장미 400만 송이가 팔린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정은 심각하다. 우리나라 성인 100명 중 33.2명이 1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는다고 한다. 서적 구입비도 갈수록  줄고 있다. 가뜩이나 책을 사지 않는데 도서관마저 드무니 큰일이다. 도서관당 인구는 유럽은 1만명인데 우리는 6만명 이상이다.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보려면 공공도서관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공공도서관은 지식을 얻는 '정보의 곳간'이자 미래를 준비하는 '콘텐츠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도 "나를 키운 건 도서관"이라고 했다. 도서관을 확충하면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일자리도 늘어난다. 중형 도서관 하나에 40여명이 필요하니 1,000개만 늘려도 4만명이 일자리를 얻게 된다.

출판 매체가 위기를 맞은 것은 독자에게 더 이상 '좋은 책'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도서관 정책, 교육 정책이 문제의 본질이다. 한국 교육은 '독자'가 생겨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자가 점점 사라지면 일시적인 마케팅으로 만들어낸 '소비자'만 남게 된다.

독자에게 다가가려는 노력도 물론 소중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어떻게 독자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출판계,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공공자금을 만들어 도서관이나 유사 기능을 하는 독서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것, 즉 독자를 '만들어 내는데' 돈을 투자해야 한다. 공공도서관을 늘리고 도서구입비에 세제 혜택을 주면 난마와 같이 얽힌 출판 생태계 문제도 풀어나갈 수 있다.
 
우리가 꿈꾸는 '책의 세계'는 대체 어떤 곳일까. 작은 소망들이 모여 아름다운 현실을 만들어 가는 곳이고, 누구도 차별없는 지식을 얻으면서 상상의 날개를 맘껏 펼칠 수 있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맑은 영혼을 가진 우리 모두가 미래를 그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조그마한 노력으로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니 생각해 보면 이만큼 효율성 있는 투자가 있겠는가.

서양 속담에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인격을 거두고, 인격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고 했다. 모든 것의 근원은 '생각'이라는 말인데, 이 생각의 원천이 바로 '책'인 것이다. 키케로는 "책은 소년의 음식이 되고, 노년을 즐겁게 하고, 위난의 도피소가 되고, 여행할 적엔 친구가 된다"고 설파했다.

독서문화는 정부 기관과 학교, 서점, 출판사, 독자가 함께 만들어나가야 하는 복합적인 작업이다. 도서관과 서점에서 책읽는 학생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함석헌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들이 '생각하는 백성'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무릇 '검색'은 무엇(what)을 찾는 게 주목적이만, '사색'은 어떻게(how)를 추구하는 창조적 발상을 장려한다.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검색은 스스로 정보를 고르는 작업이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뉴스와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고, 사회 분열과정의 일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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