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리고 바다빛, 그 미움과 사랑의 변주
어머니 그리고 바다빛, 그 미움과 사랑의 변주
  • 안재동
  • 승인 2013.04.14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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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향미 시집 『바다빛에 물들기』에 대해
  나는 뿔이 갖고 싶었다.
  이른 봄 머위햇순처럼 모 없이 둥근
  뿔 하나 갖고 싶었다.
  내 뿔에 들이받힌 상처부위마다
  솔솔 항기 퍼지는
  그런 뿔 하나 갖고 싶었다.
  어릴 적 풀 먹이던 우리 집 뿔난 염소
  길고 무섭지만 뿔끝이 돌돌 말려
  어느 누구에게도 뿔질한번 못해본
  허울뿐인 어머니 뿔
  자운영꽃잎 같은 재롱 한 묶음 뜯어다
  어머니 앞에 내밀면
  벅찬 실의에도 치머리 흔들지 않는
  어머니 뿔, 삶의 비애가
  버선목이라면
  홀라당 까뒤집어 보여주고 싶다던
  어머니의 뿔을 만지작거리다가
  어머니 버선코에서 자란
  눈물 비친 뿔 하나를 보았으니
  내안에 숨은 가시들
  뾰족한 뿔로 자라고 있었으니
  그것이 어머니를 들이박던 뿔이었음을
  그때는 까맣게 몰랐으니

            - 천향미, <뿔> 전문

  이 <뿔>이란 작품은 천향미 시인이 2007년 문단에 데뷔한 이래 5년 반이 지난 시점에서 첫 상재한 시집 『바다빛에 물들기』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어머니에 대한 애증의 심리가 메타포적으로 잘 형성된, 즉 은유(隱喩) 처리가 매우 탁월한 작품이다. 어떤 ‘어머니’에 대한 그 ‘자식’의 감정을 효과적인 이미지로 밀도 있게 잘 묘사하였다.
 
  ‘뿔’이라면 동물은 물론 사람 누구에게도 유무형적으로 지니고 있거나, 어쩌면 지니고 싶은, 공격 또는 방어용 무기인 셈이다. 그런 ‘뿔’은 일단 경계의 대상이기도 하거니와 무서움의 상징이다. 그러한 ‘뿔’이라는 소재로 화자가 어머니에 대한 애증의 전말을 무리 없이 시화(詩化)해낸 작품인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는 시집에서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시인의 기억 속 어머니는 “자운영꽃잎 같은 재롱 한 묶음”이면 모든 실의에도 불구하고 넉넉하게 받아들여주시던 그런 분이다. 그러니 그분의 ‘뿔’이야말로 “삶의 비애”와 등가가 아니겠는가. 그 순간 시인은 어머니의 “버선코에서 자란/눈물 비친 뿔 하나”를 떠올리면서, 뿔’ 에 대한 비애의 기억을 완성한다. 그렇게 시인이 관찰하고 형상화하고 그 의미를 완성시키고 있는 시적 대상으로서의 ‘뿔’은, 사물 그 자체이자 생의 이법을 담고 있는 반영체이자 삶의 기억을 매개하고 은유하는 상관물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러한 특별한 함의를 ‘어머니’를 향한 선연한 기억과 그리움에 집중적으로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 시집해설 <선연한 기억과 감각으로 가 닿는 새로운 ‘중심’> 중에서

  천향미 시인은 2007년에 계간 시전문지 《서시》를 통해 시인으로 공식 등단한 바 있고, 2011년에는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공모(현대시 부문)에 수백 대 일의 응모자들 중에서 당당히 당선됐다. 그만큼 작품력 면에서 누구 못지않게 내공이 쌓인 시인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면서 2012년에 부산문화재단으로부터 창작지원금을 받게 되고서야 첫 시집 『바다빛에 물들기』를 상재했다.
  천향미 시인은 2012년 말(12월)까지, 5년간 사단법인 윤동주선양회 사무국장 일을 맡아 윤동주 시인의 선양사업에도 큰 역할을 하였으며, 현재는 부산시인협회에서 편집 실무(편집차장)를 맡고 있다.

  이번에 나온 그의 시집은 국내 유수의 메이저급 문예지로 통하는 《서정시학》사에서 출간되었고, 문학평론가로 명성이 높은 유성호 교수(한양대)가 발문(해설)을 썼다.

  천향미 시인의 다수 작품에서는 유년기로부터 성장기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지금까지일지도 모를 남다른 아픔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가정적으로 누구나 다 있는 아버지·어머니의 자리가 그에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도 온화한 성품과 교양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하고 성인이 되었으며, 특히 시인으로서의 소양과 자질까지 잘 갖추었다는 평가도 있다.

  “시는 아픔을 통해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오른다.”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이번 그의 첫 시집에서 받게 되는 가장 뚜렷한 인상이 바로 그런 점이라고나 할까. 그의 시편들 면면에서 묻어나는 향기가 ‘결코 예사롭지 않다’ 할 만큼 뭉클한 감동이 전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역방향 창가에 앉아
  내 유년에 개가한 엄마의 철길 위로
  엄마, 하고 나직이 불러본다
  입김어린 차창에 언니 '태희' 이름을 먼저 쓰고
  차창이 흐려지기를 기다렸다 다시
  '미야' 작은 글씨로 내 이름을 적었을,
  그리고는 이내 뿌옇게 지워졌을,
  왜, 과거는 멀미가 날까? 역방향 좌석처럼
  엄마가 떠나던 그날 지축을 흔들며
  기차는 미포 구덕포를 돌아 북으로 갔고
  서러움에 울던 레일의 평행선은
  다음 기차가 지나간 후에라야 아닌 듯
  지워졌을 것인데
  늘 안개 속을 달려야만 했던 기차
  등 돌리고 앉은 나처럼
  등 뒤의 풍경이 그리워 더욱 애틋하였을
  애틋하여 서러웠을 시간을 만나러 간다
  풀어내는 기적소리에
  온기를 느끼며 쉬고 싶은 간이역
  다음 역은 월례역이다
  애써 '원래' 라고 발음하며 원래 그랬던 것처럼
  내 잃어버렸던 여정의 출발점을 만나면
  그때 기적보다 크게 울 수 있을까?
  동해남부선 열차는 파도가 바퀴다
  용서 같은 파도가 잠잠해지면
  나 거꾸로 앉았던 자리 앞으로 앉을 것이다
            - <동해남부선> 전문 

  이 시 <동해남부선> 역시 <뿔>에서와 같은 서정이 배경으로 짙게 형성된 작품이다. 시에서 흘러나온 시인의 ‘비애’적 정서가 독자의 마음을 흥건히 적시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그만큼 감정의 이입 및 흡인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이 갖는 어머니에 대한 물컹한 서정은 이 뿐이 아니다. <거미와 소녀>에서도 그런 점을 느낄 수 있다.

  세 살 이후로  거미는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도시로 전학 간 그녀는 덩그러니 허공에  폐가 같은 그리움 한 채 남겨 놓고 떠났다

              (중략) 

  천 조각 흩어진 무대 위  기억을 건져 올리는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조명이  포획된 곤충의 울음처럼 무겁다 

              (중략) 

  거미줄에 직조된 새벽 햇살이  격자무늬 비단처럼 곱다  세 살 적 마지막으로 보았던  삼베 이불 홑청을 시침질하던  어머니 스란치마, 희미한 막이 내린다
            - <거미와 소녀> 부분  

  또 <왜가리>란 작품에서도 같은 서정의 맥락이 감지된다.

              (전략) 

   한복 곱게 차려 입고 먼 길 떠난 엄마의 초상화 닮은 큰 오리 

              (중략) 

  -모가지를 비틀고 한쪽만 바라보고 선 왜가리는 왜 그리지 않느냐고 물새처럼 조용히 물었는데
  소녀는 돌연 부리보다 예리한 붓끝으로 왜가리 머리에 피가 나도록 쪼아댄다   
  -계절이 바뀌어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고 했지 않느냐  허구한 날 한쪽다리 가슴에 묻고 갈대울음으로 섰느냐
  캔버스 위로 솟구친 소녀의 붓끝이 놀빛보다 붉다 

            - <왜가리> 부분

  이 시에서도 독자는 시인의 ‘애틋하고 간절한’ 서정에 쉽게 합류되면서 교감의 폭을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 천향미 시집『바다빛에 물들기』표지     © 안재동
  이 시집에 든 57편의 작품들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현상은 <뿔>을 비롯해 <왜가리>, <동해남부선> 등이 시집의 제1~3번째에 위치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시인에겐 ‘어머니’에 대한 창작적, 심적 비중이 적지 않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천 시인은 물론 일반인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있을 수 있는, ‘결코 쉽게 지우지 못할’ 일종의 ‘애증’에 다름 아니리라.

  이 시집 속의 57편의 작품들 중에서는 눈에 튈만한, 즉 관심이 유달리 끌리는, 개성적인 제목들이 많다. <불꽃밥상>이라든가 <부끄러운 오독>, <호모사피엔스를 추억하며>, <꽃의 유언>, <사이코패스>, <버블버블&매직쇼>, <투명 주의보>, <디오라마>, <그림자를 캡처하다>, <비토도>, <다초점의 눈>, <트릭아트> 외에도 여럿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바다빛에 물들기>란 작품을 표제시로 올렸을까?
  그것은 아마도 시인이 어머니에 대해 서린 ‘애증의 감정’을 크나큰 바다에다 용해를 시키고 싶어서이거나, 혹은 그 어떤 대상을 서산의 ‘노을’처럼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서서히 떠나보내는 경우처럼 ‘바다빛’으로 희석이나 시키고 싶어서가 아닐까 한다. 아래 작품은 <바다빛에 물들기>이다.

  (전략) 내 안에 중심이 없는 것 같아 중심의 시원 태초의 뼈를 찾아 바다 간다 바다의 외곽에 눈을 얹는 다 게으른 수평선이 끌고 오는 원시의 햇살, 살이 도처 에 널려 있다 뼈 없는 살이 저렇듯 눈부시게 반짝일 수 있다니

  혈혈단신, 황홀한 빛은 뼈로 되어 있다 중심을 고집 하지 않는 저 바다의 등뼈, 태초에 나도 물이었을 적, 물의 변방이었을 적, 중심을 향해 끝없이 휩쓸렸을 내 뼈들

  무원고립,뼈들이 돌연 한 몸을 이루는 에스겔 골짜 기의 환상을 보듯 저 빛나는 무의식의 파장 속에서 나 그윽이 퍼질러 앉아 생면부지의 몸을 만나 사랑을 나 누고 뼈를 세운다 (후략)  

            - <바다빛에 물들기> 부분

  이 작품 역시 메타포면에서 깊이를 갖춘 수작에 해당됨을 느낄 수 있는데,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애증과 함께 성장기로부터 현재의 삶에 이르는 총체적 서정이 함축된 작품으로 이해된다.

  분석컨대, 시인이 갖는 어머니에 대한 정서의 근저는 바로 ‘사랑’이다. 그것은 ‘미움’을 이길 수 있는 보다 더 큰, 즉 바다와도 같은 큰 사랑이다. 어쩌면 시인에게 ‘미움’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랑’, 예컨대, 시인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미움’은 바닷물에 늘 출렁이면서 발생하는 포말 같은 존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시인에게 평생 자리한 어머니에 대한 서정은 ‘미움’보다는 분명히 더 큰 ‘그리움’ 내지 ‘사랑’ 바로 그것 아닐까 한다.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해도 잘 되지 않는…….

  결론적으로, 이 시집을 통해 발현되는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사상의 근간은 표제시 <바다빛에 물들기>를 비롯해 다수의 관련 작품에서 피력되고 있듯이 시인의 마음 한켠에 미움이란 것이 존재하고 있다면, 또 어쩔 수 없이 그에 교차화 되는 사랑의 ‘변주’로 정리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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