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필편지’의 감동
‘친필편지’의 감동
  • 조석남
  • 승인 2012.09.1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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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남 편집국장     ©독서신문
[독서신문 = 조석남 편집국장] 스스로를 ‘국보’라고 칭하며 숱한 일화를 남긴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의 ‘연애편지 사건’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다. 시인으로서의 문재도 뛰어났던 양 박사는 일본 와세다대 유학시절, 서울에서 짝사랑했던 여대생을 잊지 못해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구구절절한 미문의 연애편지는 흠모하는 여대생의 손에 닿기도 전 사감의 검열로 번번히 차단되곤 했다. 미션 스쿨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사정을 알게된 그는 성경 중에서 ‘사랑’과 관련된 대목들을 뽑아 연서를 보냈고, 정성에 감복한 여대생으로부터 마침내 마음을 얻어냈다는 얘기다.
이처럼 편지는 진한 감동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베르테르의 편지는 못다 이룬 사랑에 가슴앓이하는 그 시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e-메일과 휴대전화 문자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편지는 어쩌면 박물관속 골동품처럼 케케묵은 과거의 도구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e-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는 사람의 감정을 전달하기에는 편지보다 못할 것이다.
특히 워드로 친 깔끔한 인쇄체의 편지보다는 온 정성을 다해 손으로 직접 쓴 편지는 쓰는 사람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어 받는 사람이 더 많은 감동을 받을 것이다. e-메일을 손으로 바꿔준다는 일명 ‘스네일 메일 마이 이메일(Snail Mail My Email)’ 운동이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을 봐도 ‘손편지’, ‘친필편지’의 감동은 남다르다. 여기서 ‘스네일 메일’이란 ‘달팽이처럼 느리다’는 뜻으로 차가운 e-메일을 직접 손으로 써서 따뜻한 편지로 보내는 일반우편물을 이르는 말이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30년 전 아버지 작업 멘트’라는 제목과 함께 편지 한 장이 게재됐다. “황홀하게 울려퍼지는 아름다운 멜로디 같이”로 시작하는 이 편지에는 자신의 프로필도 기재했으며, 마지막에는 “그럼 머리 속에 맴도는 이름 석자를 생각하며”로 마무리지었다.
손으로 정성스럽게 쓴 이 편지에는 닭살이 돋을 정도로 오글거리는 멘트가 가득 담겨 있지만 30년 전 떨리는 마음으로 썼을 ‘손편지’가 감동을 안겨줬다. ‘30년 전 아버지 작업 멘트’ 편지를 본 네티즌들은 “글씨체 정말 부럽다”, “하나도 안 틀린 걸 보니 쓰고 틀리면 또 새로 쓰셨나봐요”, “내용은 느끼하지만 이런 편지 받아보고 싶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편지를 접하며 필자 역시 지나온 세월을 되짚어보니 언제 ‘손편지’를 마지막으로 보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대학시절과 기자생활 초창기만해도 부모님께, 또 친한 친구에게 그리움과 감사의 편지를 써서 보내고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성탄절 카드조차 온라인으로 대신했고, 연하 카드 몇장 보낸 것이 전부인 것 같다.
 
편지는 말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과거와는 다르게 말이 조금씩 가벼워지면서 글의 강점이 더욱 부각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글로 쓴 편지만이 줄 수 있는 감정이입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게 된다.
편지를 쓰기 위해 일일이 편지지와 봉투를 구입했을 것이며, 그 편지에 쓴 글들을 하나하나 써내려 갔을 것이며, 또한 상대방을 생각하며 말보다는 다른 깊음으로 한번 더 생각해서 작성했을 편지에서 더욱 많은 감동을 받는 건 당연할 것이다.
꽃은 눈을 즐겁게 하지만, 편지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마음의 꽃’ 편지는 닫혔던 세상을 녹이는 희망이 된다. 짤막해도 친필로 전하는 메시지는 큰 격려가 된다. 고된 직장생활에 지친 아빠에게, 온 몸에 성한 데가 없으면서도 자식만을 걱정하시는 엄마에게, 오랫동안 못뵌 스승님께, 마음을 열지 못했던 친구·선후배에게, 사랑하는 마음만은 꼭 전하고 싶은 연인에게 ‘친필편지’를 보내보자.  
이번 가을은 ‘독서의 계절’만이 아니라 ‘편지의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못 쓰는 글씨이면 어떤가. 맞춤법·철자가 좀 틀리고, 문장이 더러 꼬이면 어떤가. 정성이 가득 담긴 ‘친필편지’라면 받는 사람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만큼 더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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