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서정의 현대시의 부활
초원(草原) 김현숙
풀밭에 서니
어린날 부활절의 종소리 되살아나
무구(無垢)한 날 뵈었던 그이
만날 듯하네
이제
윤나는 햇살 땅에 엎디고
볕 발치에 묻어온 실비 가락
눈바람 적시던 몸도 풀어보려니
풀꽃과 벌레들의 숨결
하늘 닿는 데까지 차오르네
내 비로소
손끝에서 맴돌던 정감(情感) 뛰쳐나와
물감들 풀고
목에 잠긴 한숨
조그만 노래로 되네
그이의 말씀
빛, 바람, 구를처럼 쏟아져
여기 나
작은 풀잎으로 서네
이해와 감상
오늘의 한국 현대시단은 아름다운 한국어 시어(詩語)의 순수 서정의 시적 감흥(感興)에 너무나 목타고 있다. 바로 그런 우리들의 심각한 갈증을 청신하게 풀어준 한국 현대시의 주옥편(珠玉篇)이 김현숙 시인의 [초원]이 아닌가 한다. 오늘의 우리 시단은 비시어(非詩語)의 난폭한 언어에 몹시 시달리는 절박한 현실에 처해 있다. “풀밭에 서니/어린날 부활절의 종소리 되살아나/무구(無垢)한 날 뵈었던 그이/만날 듯하네”(제1연)로서 제시한 ‘그이’라는 한 절대자의 설정으로부터 전개되는 김현숙의 서정의 시세계는 곧이어 독자에게 순수 자연의 빛나는 정서의 승화를 말끔하게 깔아준다. 즉 “이제/윤나는 햇살 땅에 엎디고/볕 발치에 묻어온 실비 가락/눈바람 적시던 몸도 풀어보려니/풀꽃과 벌레들의 숨결/하늘 닿는 데까지 차오르네”(제2연)라는 이 고차원 감각미의 메타포야말로 오늘의 현대시인에게 주어진 포스트모던의 눈부신 시의 역동미(力動美)라 이르련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그이의 말씀/빛, 바람, 구를처럼 쏟아져/여기 나/작은 풀잎으로 서네”라고 절대자와의 접근이라는 절절한 소망을 야무지게 귀결짓는 순수서정의 현대시의 한 표본을 유감없이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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