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이 가을이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계절이기를
부디 이 가을이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계절이기를
  • 조완호
  • 승인 2005.11.1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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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완호 (한성디지털대 교수 · 계간 문학마을 발행인)

 글은 말을 통해 하고자 했던 바를 다 전할 수 없고, 말 또한 말하는 사람의 뜻을 온전히 다 표출할 수 없어 늘 부족한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사악해지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그래서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말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늘 그랬지만 요즘 유난히 말이 시비(是非)의 대상이 되는 예가 많은 것은 말로써 행동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고, 말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며, 이런저런 이유로 하여 마음에 맺힌 것이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할 기회를 얻어 여과 없이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침묵이 웅변보다 설득력과 호소력이 큰 경우가 많은 만큼 자기 정신의 침잠을 위해서도 이 가을에는 그를 실천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대세(大勢)는 도도히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억지를 쓴다고 하여 흐름의 방향 자체를 바꾸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순리(順理)에 따라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격랑(激浪)은 언제나 소란스러움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큰 흐름은 그것이 순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거역하는 것은 돌로 바다를 메우려는 작태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소란스러움은 명리(名利)에 눈이 어두워 중심을 잃은 대범하지 못한 무리들이 만들어내는 자기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이제 모든 생명들이 혹한을 이겨낼 준비를 하느라 저마다 바쁜 계절이다. 사람들은 겨울을 위해 무엇인가를 자꾸 모아다 쌓아놓음으로써 그것으로 위안을 얻고 마음 든든해하지만, 자연은 제 몸을 휩싸고 있던 한낱 부스러기에 불과한 것들을 다 떨궈내 몸과 마음을 단출하게 함으로써 그것으로 나름의 앞날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쌓음의 미학’과 ‘버림의 미학’이 공존하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그래야만이 여러 난관 속에서도 현명히 대처해 늘 건재할 수 있고, 다시 태어나듯 새잎과 꽃을 피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사태로 얼룩졌던 지난 시간들이 단순한 불행이나 그로 인한 파문으로 기억되지 않기 위해서도 지혜를 모아 이 가을을 슬기를 터득하는 계절로 삼아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 소란스러움 속에서 나날을 보내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도 이 가을에는 우리의 정신을 맑게 할 책이라도 한 권씩 손에 들고 산길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벤치나 강가 한가한 곳을 찾아가보기를 권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잊고 있던 자아(自我)와의 조촐한 만남을 위해서.    
비록 ‘글은 말을 통해 하고자 하는 바를 다 전할 수 없고, 말 또한 말하는 사람의 뜻을 온전히 다 표출할 수 없어 늘 부족한 존재에 불과한 존재’이긴 하지만, 글과 뜻으로 이루어진 정신의 집인 책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중 가장 솜씨 있게 다듬어진 것들만으로 꾸며진 정수(精髓)의 결집체이기에 분명 그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쌓음’과 ‘버림’의 미학이 공존하는 이 계절에 인간 본연의 순박함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늦은 시간까지 불을 켜고 무엇인가에 흠뻑 빠져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충분히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가을과 겨울동안 응축된 그 무엇들을 자양분으로 하여 봄에는 소담스러운 잎도 만들어 몸에 붙일 수 있게 될 것이고,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빛깔의 꽃도 만들어 전조등처럼 이마 앞에 붙여 우리가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 행복의 주인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이 계절이 우리 모두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나날이 되길 기대해본다.     

독서신문 1391호 [200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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