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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락프로가 눈 돌린 ‘제3세계’, ‘대륙 내부 문명’ 탐험
다큐 <아마존의 눈물>이 높은 시청률을 보이자 예능 프로그램도 덩달아 다루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미개발지에 사는 원주민의 삶을 실없는 말로 가지고 놀면 안 된다.
<아마존의 눈물>은 mbc 창사 48주년 특집으로 방송된 다큐멘터리로 문명의 탈을 쓴 인간이 행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겪는 아마존의 몸살을 보여준다. 매회 20%가 훨씬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비교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대성공을 기록했다. 제작진의 어렵고 괴로운 촬영이야기를 주제로 한 ‘에필로그편’ 시청률도 20.5%였다. 피크 타임 드라마 시청률이 20%를 넘기 힘든 점을 생각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청자 게시판엔 다양한 의견이 올라와 있다.
“도대체 아마존의 눈물인가, pd의 눈물인가? 심층적인 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 나머지, 볼거리 장면만 잔뜩 나열해 놓는 식이었다.”
“매번 보여주는 건 부족들 나체, 잔인한 사냥 등 자극적인 장면이고… 많은 노력을 들였으나 아직까진 전체적인 완성도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강렬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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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으로 남의 문화를 ‘실없는 말로 가지고 노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다큐에 이어 예능 프로그램도 제3세계를 앞 다투어 다루고 있다. mbc <일요일일요일밤에>의 ‘단비’ 등은 봉사활동과 예능을 함께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대륙 내부 문명을 보여주고 있다.
눈에 익지 않은 문화를 알린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문화에 대해 뛰어나다는 오만한 자세로 미개발지에 사는 원주민의 삶을 실없는 말로 가지고 놀면 안 된다'는 비판은 나름대로 이유와 근거가 있는 고유한 문화를 이용하여 '그들의 삶을 흥밋거리화'하지 말라는 충고이다.
2. <아마존의 눈물>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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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이야기이다. 7천 킬로미터를 넘어 끝없이 펼쳐지는 강을 따라 한반도 면적의 서른다섯 배에 이르는 지구 최대 열대 우림, 아마존. 몸길이가 10 미터를 넘나드는 지상 최대의 뱀 아나콘다와 ‘소리 없는 강자’ 느림보 슬로스, 사나운 포식자 악어가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지구 생물의 보고. 인류 마지막 원시의 땅, 아마존을 보여준다.
최후 원시부족, 조에 족, 허용된 외부문명은 단 2가지(칼과 거울) - 턱에 나무 막대기를 꽂는 뽀뚜루(poturu)는 영구치가 난 이후부터 평생을 하고 살아가는 중요한 장식이다. 해를 시계 삼아 하루를 보내고, 나무를 마찰시켜 불씨를 얻는다. 거울을 보며 외모를 가꾸고, 칼을 가지고 밀림을 헤치며 사냥한 고기들을 다듬는다.
일부다처, 다부일처 - 조에 족 최고의 사냥꾼, 모닌은 아내가 셋이다. 복혼문화는 여자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모닌의 여동생 투싸 역시 남편이 둘이다.
사냥과 축제 - 가장 좋아하는 새 무뚱과 원숭이 그리고 몸무게가 최대 삼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아르마딜로까지, 밀림에 있는 어떤 짐승도 이들을 이기지 못한다. 사냥 후, 사냥을 해온 사람이 고기를 나눠주는데, 많든 적든 노인에게까지 골고루 돌아가도록 한다.
또한, 공동체 화합을 위해 수시로 축제를 연다. 와우라 부족의 빼끼 축제가 유명하다. 빼끼 축제 기간에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약 올리는 노래를 많이 부르는데, 이에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오물투척’으로 응수한다.
조에에 닥친 위기(말라리아) - 아메리카 원주민 비극은 ‘총, 균, 쇠’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에서부터 남아메리카의 끝인 칠레까지, 과거 유럽 국가들이 아메리카 전역을 정복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 세 가지로부터 유리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총으로 대변되는 무기로 원주민들을 제압했고, 원주민은 접해보지 못한 병원균을 들여오면서 면역력 없는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최근 기온상승과 서구문명의 유입, 그리고 무분별한 벌목으로 아프리카의 전유물이었던 병원균 말라리아가 남아메리카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2부 : 낙원은 없다
환경 파괴와 문명의 침투로 인해 무너져 가는 자연 생태계와 아마존 인디오 사회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을 보여준다.
멸종의 땅, 아마존 - 지상 최대, 생물 보고, 아마존강에 사는 날카로운 이빨로 동료의 사체마저 먹어치우는 거침없는 포식자 피라냐부터, 최고 5미터에 달하는 지상 최대의 담수어 삐라루꾸까지.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었지만 기후변화와 무분별한 남획으로 야생동물 낙원인 아마존은 파괴되어가고 있다.
서구 문명과 불안한 공존 - 문명의 접촉으로 서구문명은 이들의 삶 깊숙이 들어왔다. 수공예 그릇과 스테인리스 냄비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옷을 입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함께 살아가는 와우라 족. 최근엔 전기를 만드는 발전기도 들어왔다. 이제 이들은 기름이 생길 때면 발전기를 돌려 텔레비전을 보기에 바쁘다. 생활양식과 함께 가치관도 달라지고 있다. 공동체 삶에 ‘사유재산소유’ 개념이 생긴 것이다.
3부 : 불타는 아마존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아마존이 사라지는 현실을 보여주고 그 미래를 보여준다.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개체수가 줄어가는 삐라루꾸를 보호어종으로 지정하지만 불법으로 유통되는 현장을 보여준다.
금광에 고통 받는 야노마미족·도시의 걸인 자미나와족 - 아마존을 향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고무로 시작한 아마존행 러시는 물고기, 목재, 금광, 석유로 이어지고 있다. 아마존에서 가장 강성했던 부족, 야노마미족. 지금 그들이 신음하고 있다. 황금을 찾아나선 개발업자들은 방해가 되는 야노마미족을 총으로 살해하고 아마존 강에는 사금채취를 위해 수은을 풀어 죽음의 강으로 만들고 있다.
아마존 강 상류지역에 위치한 자미나와 - 19세기 말, 고무산업 활황으로 몰려든 고무채취업자들에 의해 문명을 알게 된 자미나와족은 붕괴의 길을 걷고 있다. 술과 담배와 같은 도시의 유혹을 따라 하나둘 부족을 떠나 도시로 향하고 있는 것. 도시의 걸인 할머니 마르낑야(marquinha)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거리에서 손녀와 함께 구걸하는 그녀에게, 자립성 강한 자미나와족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을 무시하던 백인과의 시비 끝에 살인사건이 벌어져 감옥에 간 큰 아들의 옥바라지만도 벌써 3년째. 둘째아들은 마약판매상으로, 딸은 가출 후 변변한 일자리 하나 없이 살아간다.
(출처 : mbc <아마존의 눈물> 홈페이지)
Ⅱ. 생각확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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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년~ 2009년)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태인계 프랑스인으로 태어나 파리 대학 법학부 문학부를 졸업하였다. 1934년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58년 프랑스 콜레즈 드 프랑스 인류학과 정교수가 되었다. 2009년 100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구조주의를 개척했다. 남아메리카 브라질에서 현지 조사를 마친 후, 친족 이론·사고 체계·신화 분석에 있어 구조주의를 제창하여 인류학·문학·사상 분야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저서에 『친족의 기본 구조』, 『슬픈 열대(熱帶)』 등이 있다.
『슬픈 열대』는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브라질에 체류하면서, 내륙 지방의 네 원주민 부족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에 대해 조사 연구 했으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955년에 저술한 책이다. 『슬픈 열대』 는 (박옥줄 옮김, 한길사, 1998. 750쪽)은 전체 9부로 나뉘어 있다.
제1부(여행의 마감) -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필자가 뉴욕으로 밀항하기까지를 회상형식으로 기술.
제2부(여로에서) - 여행에 앞서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 사회학 교수에 취임하게 되는 과정과 어떻게 하여 민족학자가 되었는지 설명.
제3부(신세계) - 적도 부근 무풍대를 통과하면서 느끼는 신세계와 구세계 간의 희망과 몰락, 정열과 무기력 표현.
제4부(대지와 인간) - 브라질 생활과 현지조사를 위한 예비답사 내용 언급.
제5부(카두베오족) - 계층조직과 얼굴 문양
제6부(보로로족) - 주거와 사회 구조
제7부(남비콰라족) ~ 제8부(투피 카와이브족) - 혼인 제도, 원주민 사회에 내재하는 논리를 찾아내고 있다.
제9부(귀로) - 인도 및 파키스탄 여행기 추가, 개인적 체험과 현지조사 내용들 종합, 정리, 자신이 인류학적 연구에서 직면하였던 문제점과 모순을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다. 제9부 중 ‘38장 럼주 한 잔’은 문화상대주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다.
2. 『슬픈 열대』 읽어보기
마르크스가 내게 가르쳐 주었던 것은 물리학이 감각의 여건에서부터 출발하여 체계를 세운 것이 아닌 것처럼 사회과학도 사건들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회과학의 목적은 하나의 모델을 설정하여 그것의 특성과 그것이 실험실에서의 테스트에 반응하는 갖가지 방식을 검토한 후 이어서 그 관찰 결과를 경험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석-예견했던 바와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에 적용하는 것이다.(중략)
여기서도(캘커타) 역시 상대방이 틀림없이 갖추고 있다고 되도록이면 내가 인정하고 싶은 그 인간적 자질을, 상대방의 행동거지 때문에 부득불 부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교상의 규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관장하는 모든 원초적 상황이 무너져 버리고,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방법도 없다. 왜냐하면 이들 불행한 자들을 평등하게 대해 주고 싶어도 그들은 이 부정에 대해 항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등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오히려 당신이 오만한 태도로 자기들을 짓밟아 주기를 애원하거나 간청하고 있다. 당신과 그들을 갈라놓고 있는 거리를 확대함으로써 한줌의 음식을 기대하는 것이고, 그 음식도 당신과 그들의 관계가 긴장되면 그만큼 더 영양가가 높은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이 나의 신분을 높이면 높일수록 그들이 요구하는 별것 아닌 것이 대단한 것이 될 것이라고 그들은 기대한다. (중략)
과거에는 단 한 사람의 전문가가 그의 조국을 유명하게 만들 수 있었던 분야에서, 이제는 그러한 전문가들이 모인 군대가 필요하다. 창조적 과학은 하나의 집합적이며, 거의 익명적인 활동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이 점에 대해 전혀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다.
사회과학의 목적은 하나의 모델을 설정하여 그것의 특성과 그것이 실험실에서의 테스트에 반응하는 갖가지 방식을 검토한 후, 이어서 그 관찰 결과를 경험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석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여행담이란 지금은 없어져 존재하지는 않지만 마땅히 계속 존재해주기를 우리가 바라는 그런 것의 환영을 우리에게 갖다 준다.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위선적 억지가 아니고서는 인간이 자기의 생활 조건과 무관하게 자기의 신조를 선택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치 조직이 사회의 생존 형태를 결정하기는커녕 생존 형태가 그 자체의 표현인 이데올로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들 기호(이데올로기)는 그것이 지적하는 대상체가 현존하는 경우에만 언어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 현재의 서양과 동양 간의 오해는 우선 의미론적인 것에서 비롯된다. 동양에서 우리(서양인)가 선전하는 개념의 형식은 그곳에서는 의미가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의미가 다른 것이다. 반면 만의 하나 여건이 전혀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도저히 우리가 견뎌낼 수 없다고 판단하는 범위 내의 변화인지 아닌지는 이런 사태의 희생자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안면 도식은 개인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부여하였고 자연에서 문화로,무정신의 동물로부터 문명화된 인간으로의 이행을 나타내는 경계선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사회적 지위에 따른 상이한 양식과 구성을 지님으로써 사회적 기능을 보유하였다. 물론 이 같은 사실들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자체가 카두베오족 예술의 독창성을 확인시켜 주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그것은 그 존재 이유를 설명해 줄 뿐이다. 각 계급은 사회적 관용에 지배받고 있었다. 귀족 계급에는, 그리고 어느 정도는 전사 계급에까지도 최대의 관심사는 권위의 문제였다. (중략)
완전한 사회란 없다. 모든 사회는 애초에 그 사회가 주장하는 규범들과 양립할 수 없는 어떤 불순물을 그 자체 내에 지니고 있다. 불순물은 구체적으로는 숱한 잔인, 부정, 그리고 무감각으로 표현될 수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요소들을 어떻게 평가해야만 하는 것일까? 인류학적 조사가 이에 대한 대답을 제공할 수 있다. 어떤 적은 수의 사회를 비교하면 서로서로가 매우 상이한 것처럼 보이게 되지만, 조사의 영역이 확대되어 나감에 따라 이 차이점은 점점 감소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어떤 사회도 철저하게 선하지는 않다는 점이 명백해질 것이다. (중략)
야만인의 모든 관례들 가운데서 우리들이 가장 끔찍하게 혐오하는 식인 풍습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다른 고기가 모자라기 때문에 서로를 잡아먹는 경우 - 홀리네시아의 어떤 지역에서는 이런 사례가 있었다. - 는 제외시켜야만 한다. 도덕적으로 말한다면, 어떤 사회도 굶주림 때문에 생기는 요구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다. 우리가 나치의 학살 수용소에서 보았듯이, 사람들은 아사(餓死)할 지경이 되면 문자 그대로 무엇이든지 먹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식인 풍습의 긍정적인 형태 ― 그 기원이 신비적, 주술적 또는 종교적인 것들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 들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조상의 신체의 일부분이나 적의 시체의 살점들을 먹음으로써 식인종은 죽은 자의 덕을 획득하려 하거나 또는 그 힘들을 중화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의식은 종종 매우 비밀스럽게 거행되며, 그들이 먹고자 하는 그 음식물을 다른 음식물과 섞거나 빻아 가루로 만든, 유기물 약간을 합해 먹는다. 그리고 식인 풍습의 요소가 보다 공개적으로 인정되었을 때일지라도, 도덕적인 근거에서 그러한 습관을 저주한다는 사실은, 시체의 물질적인 파괴에 의해서 위태로워질 어떤 육체적 부활이나 또는 영혼과 육체의 연결과 여기에 따르는 이원론의 확신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러한 확신들은 의식적인 식인 풍습의 의미로 시해되고 있는 것에 나타나는 것과 동일한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편이 더 나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무런 정당한 이유도 지니고 있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식인종을 비난하는 이유인 죽음의 신성함에 대한 무시의 정도는, 우리가 해부학 실습을 용인하고 있는 사실보다 더 크지도, 더 적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만약 어떤 다른 사회의 관찰자가 조사하게 된다면, 우리들 자신의 어떤 관계들이 그에게는 우리가 비문명적이라고 간주하는 식인 풍습과 유사한 종류로 간주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들의 재판과 형벌의 습관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만약 우리가 외부로부터 이것들을 관찰한다면, 우리는 두 개의 상반되는 사회형을 구별해 보고 싶어질 것이다.
즉, 식인 풍습을 실행하는 사회에서는 어떤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중화시키거나 또는 그들을 자기네에게 유리하도록 변모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자기네 육체 속으로 빨아들이는 것이라고 믿는다. 한편 우리들 사회 같은 두 번째 유형의 사회는, 소위 말하는 앙트로페미(anthrop mei: 특정인을 축출 또는 배제해 버리는 일)를 채택하는 사회이다.
즉,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여 그들은 정반대의 해결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 끔찍한 존재들을 일정 기간 또는 영원히 고립시킴으로써 그들을 사회로부터 추방하는 것이다. 이 존재들은 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고안된 시설들 가운데서 인간성과의 모든 접촉을 거부당한다. 우리가 미개적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사회에 있어서 이 같은 관습은 극심한 공포를 일으킬 것이다. 그들이 오직 우리와는 대칭적인 관습들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들을 야만적이라고 간주하듯이 우리들 자신도 그들에게는 야만적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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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슬픈 열대』 이해하기
『슬픈 열대』는 원주민 사회를 파괴하는 서구 문명의 무차별성에 대해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서양 문명이 파괴해버린 열대에 대한 슬픔이 『슬픈 열대』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레비스트로스가 슬퍼한 것은 원주민들은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으나 서구 문명은 이들을 그들의 잣대로 재단하여 야만 비합리적, 미개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를 상업주의로 황폐화시키고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열대 원주민 사회를 ‘인간성에 관한 전체적 체험을 거의 완전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이 사회는 우리들의 사회와는 다른 종류의 사회일 뿐’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로 기준을 정하려는 서구 사회의 방자함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미개사회로 보이는 생활모습이라 해도(벌거벗은 생활, 악어 ․ 원숭이 고기 ․ 나무뿌리 ․ 곤충 애벌레 식용) 어떤 면에서는 문명사회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기도 한다.
<아마존의 눈물> 1부 '마지막 원시의 땅'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조에 족 최고 사냥꾼 모닌은 아내가 셋이다. 원하면 몇 번이고 결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중 둘째와 셋째 부인은 서로 자매지간이다. 이러한 복혼문화는 여자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모닌의 여동생 투싸 역시 남편이 둘이다. 지금의 아들도 둘째남편과의 사이에서 가졌다. 하지만 아이는 핏줄에 관계없이 두 남편에 의해 길러진다. 배우자의 형제를 아내로 맞이하거나, 혈연관계에 상관없이 자녀를 공동 양육하는 것은 누군가가 죽었을 때, 남은 자가 죽은 형제와 부모를 대신해 이들을 보살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처 : mbc <아마존의 눈물 홈페이지)
이러한 문화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에 대해 레비스트로스는 서구 사회 자체가 인종에 대한 편견 또는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지적한다.
Ⅲ. 생각 정리하기
1. 야만과 문명의 기준
서구인들은 이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를 문명으로, 미개척지 원주민을 이성이 없는(비이성 존재)존재로 야만이라고 구분한다. 때문에 이들은 ‘문명=선, 야만=악’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이성이냐 비이성이냐에 대한 판단은 주관에 의한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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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문화 절대주의
문화를 특별한 기본이 되는 표준으로 절대화시키는 주의이다.(우수함과 열등함 관계 등) 문화절대주의는 자문화중심주의, 문화사대주의, 인종주의 등으로 나타나며, 야만에서 미개로 문명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서양중심주의, 문화제국주의 등을 중심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② 문화 보편주의
문화를 보편적으로 기본이 되는 표준을 설정하는 주의이다. 예를 들면 인류 보편적 가치로 인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살인과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 주의이다. 문화 보편주의로 문화 단계론과 문화 전파론을 들 수 있다.
* 문화 단계론 : 모든 문화발전은 보편경로를 따르며, 시간의 차이만 있다.
* 문화전파론(교류과정) : 수용가능성은 보편성의 증거이며, 문화의 고유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전파된 것이다.
문화 보편주의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이행된다고 보고 있다. 상대주의에 대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즉, 문화에 대한 보편적으로 기본이 되는 표준은 특정사회의 기준이라는 관점에서 그렇다(서유럽 근대). 문화 보편주의 역시 절대주의와 같이 서양중심주의와 문화제국주의로 나갈 수 있다. 이와 함께 문화 진화론을 살펴볼 수 있다. 문화 진화론은 서양의 문화가 고립된 부족의 문화에 비하여 질적으로 높은 상태라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또한 고립된 부족이나 서양 이외의 삶은 불편하고 비합리적이라는 서구 우월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같이 문화는 질적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믿고 자기의 문화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태도를 자문화 중심주의라고 한다. 이에 빠지면 다른 문화는 문제가 있고 이상하다는 편견을 가지기 쉽다. (출처 : 고교『사회문화』, 중앙교육)
③ 문화 상대주의
문화 상대주의는 기본이 되는 문화에 대한 표준을 설정하지 않으며(개방성), 문화는 총체성(전체성, totality)을 가지고 서로 서로 상호작용한다고 본다. 즉 인간, 인간정신, 문화, 생태, 정보, 세계화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주의이다. 부분합에서 전체로 나아간다. 전체=부분합이라는 근대 사고방식을 부정하며, 탈자기중심, 탈서양, 탈인간을 지향한다.
상대론적 관점은 어떤 사회의 문화를 그 사회의 독특한 환경과 상황 및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는 다른 사회의 절대적 판단 기준을 가지고 평가되어서는 안 되고, 그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점을 통해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 문화는 유교나 이슬람 문화의 잣대만을 가지고 판단되어서는 안 되고, 기독교 문화가 영위되고 있는 사회의 역사적 배경과 환경 및 상황에서 탐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를 이해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것은 문화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출처 : 고교『사회문화』, 천재교육)
이와 관련된 예로 움베르토 에코는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격렬하게 비난해 온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를 “한마디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우둔함의 극치”라고 잘못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어떤 동물을 잡아먹느냐 하는 문제는 문화인류학적인 문제, 넓게는 문화 간 번역의 문제”라면서 “설사 다른 문명권에서 개고기를 먹는 사실에 혐오감을 느낀다고 해도, `관용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④ 극단적 문화 상대주의
기본이 되는 문화에 대한 표준을 설정하지 않으며, 모든 행위와 관습을 옹호하거나, 모순된 가치 모두를 긍정하게 되는 단점이 있다.
2. 구조주의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1) 배경 및 개관
구조주의는 근본 요소들 사이의 상호 관계 위에 정신적, 언어적, 사회적, 문화적 ‘구조’가 성립하며, 그 구조에서 특정 개인이나 문화에 대한 의미가 생산된다고 본다. 구조주의는 사회 ․ 문화 현상들이 단순히 물리적 대상이나 사건이 아니라 복잡한 의미체계를 지닌 대상과 사건이라는 소쉬르 이론에서 출발하며 특히 문화, 언어, 사회와 관련된 학문에 많은 영향을 준다.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 인류학자이며, 구조주의에 큰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미셸 푸코, 루이 알튀세르, 라캉 등이 있다.
2) 소쉬르의 구조언어학
① 언어기호에 대한 변별성
첫째, 언어는 기호이다. 기호는 무엇을 대신한다는 의미이며, 언어기호는 양면을 지닌 일종의 정신적 실체다. 언어기호가 결합시키는 것은 명칭과 사물이 아니라 기표와 기의 즉, 청각영상과 개념이다. 따라서 청각 영상과 개념의 결합이 기호이며 소쉬르는 청각영 상을 기표, 개념을 기의라는 용어로 대체하였다.
둘째, 언어는 자의성을 본질로 한다. 이 말은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어떤 필연성도 없 음을 의미한다.
셋째, 언어기호는 변별적 특성을 보여준다. 기표가 다를 때 의미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말과 발의 다른 의미는 ㅁ과 ㅂ의 음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음소, 기표가 다를 때 의미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음소란 더 이상 작게 나눌 수 없는 음운론상 최소 단위이다.
넷째, 언어기호는 체계이다. 언어가 구조라는 말은 변별성 개념, 곧 음소 개념이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② 랑그(langue)와 빠롤(parole)
소쉬르에 의하면 언어활동(language)은 랑그와 빠롤로 구성된다. 이 세상에는 무수한 말들이 존재하지만, 이 말들이 말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심층에 문법을 소유한다. 랑그와 빠롤은 소쉬르가 처음 사용한 언어학용어로서 랑그는 언어공동체가 수용하고 있는 기호들이 맺는 관계의 체계이다. 빠롤은 말하고 듣기 위해 이 랑그를 이용하는 개인적 행위이다.
③ 통시성과 공시성
통시성은 어원적으로 두 시점(two times)을 뜻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말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으로 쓰인다. 공시성은 어원학적으로 동시성(same time)을 뜻한다. 소쉬르는 공시성을 논리적 또는 심리적 관계들이 어떤 하나의 체계 속에 공존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예를 들면 <양과 음>은 <양>, <음> 두 요소를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공시적이지만, 이 두 요소들이 시간을 따라 어떤 사건으로 전개되는 것 (흐름)은 통시적이다. <양과 음>, <양지와 음지>, 같은 표현에서 서로 대립되는 개념들은 동시성을 띠고 공존하고 있다.
④ 계열체와 통합체
일차적으로 텍스트는 자연언어의 저장고에서 선택한 요소들을 결합함으로써 이루어지며 ‘모든 단어의 선택은 자연언어의 영역 내에서 이루어진다. 주어+서술어’ 또는 ‘관형어+주어+목적어+서술어’ 와 같은 구문 형식으로 결합한다. 수직의 축, 곧 계열적 관계에 있어서는 시간적 질서를 따르지 않고, 서로 교환될 수 있으면, 언술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서로 유사한 관계에 있게 된다. 계열적 관계에 있는 요소로는 '소'의 경우 '당나귀. 노새. 말'등이, '짐'의 경우 '꼴, 덤불, 장작'등이, '운반 한다'의 경우 '나른다, 옮긴다, 싣고 간다' 등이 있다. 통합적 관계란 언어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시간적 질서를 따르고, 언술의 표면에 드러나며 서로 교환될 수 없고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통합적 관계는 시간적 계기성을 따르며, 수직의 축 위에서 진행된다. 예컨대 '소가 짐을 운반 한다'는 문장이 그렇다. 이 문장에서 언술을 구성하는 세 요소는 위에서 지적한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요소들이 통합적 관계에 있는 것을 통합체, 계열적 관계에 있는 것을 계열체라고 부른다.
3) 레비스트로스 구조인류학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언어학의 주요방법을 문화연구에 폭넓게 적용했다. 사회문화적 현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사물의 겉에 나타난 경험현상을 실마리로 하되, 이를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실재로 보지 않고, 겉에 나타난 현상 형태를 규칙과 규정으로 제한하는 비가시적이고 본질적인 심층의 구조적 원리를 논리적으로 미루어 분석하였다. 경험으로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현상형태의 뒷면에는 이러한 겉에 나타난 현상을 만들어 내는 상호 간 기능적 연관이 있고, 심층 상호 간 기능적 연관을 비록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실재한다는 것이 레비스트로스의 실재론적 입장이다. 언어활동 친족체계, 토템체계, 신화에 대한 논리, 요리체계, 결혼규칙 같은 모든 문화에 대한 현상은 상징체계이며, 이는 개인수준의 의식이나 실존적 단정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생활체의 집합 표상이며, 이러한 생활체의 집합 표상은 개인의 의식과 관련성이 없는 사회적 무의식 속에서 몸으로 실현(實現)된 이원적 대립체계를 반영한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사회적 무의식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인 상징체계에 의해 구성되고 이에 종속되는 존재이며, 의식이라는 것은 항상 무의식의 구조를 통해 가능하므로, 이른바 의식적 주체에게 철학적 우선권을 부여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 레비스트로스의 기본사유이다.
이를 바탕으로 레비스트로스는 「친족의 기본적인 구조」(1949)에서 근친상간금지를 중심으로 여성교환을 이론으로 체계화 했다. 근친상간금지를 기본으로 결혼규칙과 친족체계를 분석하였으며, 결혼, 신화, 토템, 등은 언어로 번역될 수 있다고 봤다. 레비스트로스는 매우 다른 것처럼 보이는 이들 간의 사이에서 서로 비슷한 성질을 찾아낸다. 결혼규칙과 친족체계는 여성을 서로 바꿈으로 본디 상태로 되돌린다. 언어가 단어의 본디 상태로 되돌림이라면 결혼규칙은 여성을 본디 상태로 되돌림이라는 점에서 서로 비슷한 성질을 가진다.
친족체계를 조사하면서 레비스트로스는 결혼규칙을 근거로 근친상간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규칙을 설명하기 위해 근친상간을 이용했다. 남자는 아버지의 여자인 어머니를 가질 수 없다. 하지 못하게 함이 교환에 대한 규칙을 만든다. 하지만 하지 못하게 함의 목적이 근친결혼을 막는 데 있다는 설명만으로는 모자라다. 족외혼으로 인해 부자관계와 같은 관계가 아닌 상하 관계로 이루어진 혈연만이 아니라 수평적인 인연 맺음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여성 거래에 있어 특별히 다른 점은 사회적 관계로서의 친족을 구성한다는 점에 있다. 친족은 다른 선물의 교환과는 달리 영속성이 있는 성격을 지닌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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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생각 찾아보기
1. 소쉬르가 확립한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e), 통시적 ․ 공시적, 랑그(langue), 파롤(parole) 등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2. 보편문명론과 세계화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 배경지식
1.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서양의 작가,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동양 문화의 여러 측면을 묘사하거나 모방하는 것을 이른다. '오리엔탈리스트'란 말은 이러한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으나, 동양을 연구하는 학자를 이르는 전통적인 용어이기도 하다. 오리엔탈리즘은 예술사에서 북아프리카나 근동(또는 서아시아)의 지중해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얻은 요소들을 이용한 내용, 색깔, 양식을 주제로 다룬 19세기 프랑스 예술가들의 작품을 이를 때 널리 쓰인다. 이러한 의미는 20세기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의 논쟁적인 책 『오리엔탈리즘』을 내놓으면서 달라졌는데, 이 저서에서 사이드는 18~19세기에 유럽 제국주의적 태도로 형성된 동양에 대한 적대적이고 탄원적인 시각의 서양 예술 및 학술 전통을 이를 때 이 용어를 썼다. 이런 의미로 쓰일 때 '오리엔탈리즘'은 동양 문화와 사람에 대한 근본적이면서도 편향된 외부의 해석을 뜻한다. 사이드는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적 학술 전통을 비판하였으며, 현대 학자 특히 버나드 루이스에 대해서도 그러하였다. 반면 일부 현대 학자들은 '오리엔탈리즘'이란 말을 제국주의 시대에 非서구 문화를 무가치하다고 보는 사람에 반대하며 親동양적인 태도를 보였던 저자들을 이르는 말로 쓰기도 하였다.
오리엔탈리즘은 어원으로 보아서 오리엔트(orient)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오리엔트란 라틴어로 '해돋이', '해가 뜨는 방향'인 오리엔스(oriens)에 해당되는 단어로서 이 단어가 발전하여 동방, 동양이 되었다. 오리엔탈리즘이 본격적으로 쓰이게 될 때부터는 19세기 중엽부터로, 동양을 연구하는 학문, 곧 '동양학'으로 서양이 동양에 반응하는 방식이라든가 서양인들이 동양 문화에 대한 태도, 관념, 이미지에 대해서, 서양인이 동양에 대해서 만들어내는 담론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이후에 오리엔탈리즘은 에드워드 사이드에 의해 만들어진 신조어가 아니고 서양인들이 동양을 바라볼 때 선입견을 가지고 본다는 뜻으로 치우쳐졌으며, 그 뜻이 왜곡되었다고 할 수 있다.
로마 시대의 오리엔트의 범위는 제국 내에 동부 지방은 물론 제국 외부에 있는 다른 국가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단어였다. 그 후에 로마 제국이 분열되고 서유럽이 그들의 중심적인 세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을 옥시덴트(occident), 서방이라 부르며 오리엔트는 이와 대조되는 문화를 가진 동방세계라는 뜻이 부가되어, 인도와 중국, 일본을 이루는 광범위한 지역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2.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가 주장한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인들이 동양을 볼 때에 선입견을 가지고 본다는 것으로,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동양이 서양인의 정체성을 확립해 주는 대상으로, 열등한 동양이 존재하기에 우월한 서양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이 열등하며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하며, 자신들보다 두뇌나 신체 면에서 열등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수많은 문화가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한꺼번에 동양이란 단어로 포함시킨다고 주장했다. 또한 쇠퇴하고 비참한 동양을 식민지화함으로써 동양을 구출해 내었다고 주장해 자신들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와 관련해서 1978년 『오리엔탈리즘』이란 책을 냈다. (출처 : 위키백과)
3.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
동양의 관점에서 동양과 구별되고 대립되는 서양(occident)에 관한 왜곡되고 고정된 이미지나 편견을 형성하는 인식이나 태도.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지만, 동일한 인식 구조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이 ‘서양에 의해 구성되고 날조된 동양’에 관한 인식이라면, 옥시덴탈리즘은 ‘동양에 의해 구성되고 날조된 서양’에 관한 인식이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4. 서구인이 동양을 고정관념으로 바라본 모습
동양 : 정절, 몰개성, 정적, 온순, 남성우월주의, 불결, 덜 진보됨. 흑백
서양 : 자유, 개성, 동적, 활달, 남녀평등, 청결, 진보, 컬러.
/ 황인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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