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vs영화 - 『걸프렌즈』
소설vs영화 - 『걸프렌즈』
  • 강인해
  • 승인 2010.02.0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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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세 여자, “우린 이 남자로 논다”
 
 
▲ 소설 『걸프렌즈』 표지(좌)와 영화 '걸프렌즈' 포스터(우)

 
 
[독서신문] 강인해 기자 = “한 남자를 사랑하는 세 여자의 동호회를 위하여! 음… 우리 걸프렌즈 클럽 어때?”
 
스물아홉 직장 5년차 한송이가 같은 회사 유진호 대리의 기습 키스에 넉 다운돼 연애를 시작한다. 그녀는 그의 키스 실력을 은반 위에 미끄러지는 피겨스케이터의 환상적인 테크닉에 비유한다. “감미로운 스핀! 드라마틱한 피겨스케이팅!”

헌데 그의 부드러운 혀끝 스케이팅에 흠뻑 빠져있을 때 즈음 그녀는 너무 타서 닳고 닳아 거칠어진 얼음판 위를 달리는 불쾌함을 느낀다. 바로 내 남자가 감춰둔 ‘다른 여자’의 존재를 알게 된 것. 것도 한 명도 아닌 두 명씩이나. 
 
 
 
▲ 영화 '걸프렌즈'의 한 장면   



■ 한 남자를 사랑한 발칙한 세 여자
이 책은 2007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한 남자를 사랑하는 세 여자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다분히 도발적인 내용을 담았다.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의 설정처럼 (물론 그 보다 과하진 않다) ‘이게 현실에서도 가능한 상황일까’라는 의문이 일지만 작가는 현대 여성의 진보적인 연애관을 솔직하게 그렸다.

영화에서도 주인공 한송이(강혜정), 그녀의 남자를 사랑하는 두 여자 진(한채영)과 보라(허이재), 그녀의 절친 현주(조은지)는 솔직한 대사와 연기로 주체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연애에 임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녀들은 우리네 여성들이 한 번쯤은 상상해봤을 법한 ‘쿨’한 연애를 펼쳐간다.
 
 
▲ 영화 '걸프렌즈'의 한 장면 

 


예를 들어 유 대리의 공식적인 여자인 한송이는 키스 테크닉에 매료돼 ‘쿨’하게 연애를 결심했고 영화에서는 생략됐지만 소설에서는 그와 사귀는 와중에도 일종의 ‘보험’으로 또 다른 남자를 만나기도 한다. 두 여자 진과 보라는 자신이 진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의 여자 앞에서 숨기지 않고, 송이의 친구인 현주도 애인에게 차인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부딪혀간다.

몇 번의 만남을 거듭한 이 여자들은 한 남자를 사랑하는 동호회인 ‘걸프렌즈 클럽’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의 모임을 결성한다. 이것이야 말로 불행의 시작이라고 느낀 송이는 이 클럽을 부인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질투와 견제를 바탕으로 관계를 맺은 이들에게서 점차 연민과 애정의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송이는 자기 남자는 물론이고 그 남자를 사랑하는 그녀들도 포용한다.
 
 
▲ 영화 '걸프렌즈'의 한 장면   



■ 원작의 변형… 난투극 인상적
영화는 원작을 적잖게 변형했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송이의 시점에서 독백이 주를 이루고, 등장인물과의 대화가 양념처럼 맛깔스럽게 이뤄진다. 작가 특유의 신세대적인 비유법, 예를 들어 키스를 피겨스케이팅으로 묘사하고, 패스트푸드․커피 브랜드같은 트렌드적인 요소에 감정을 이입하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독백이 존재한다. 다만 영화는 송이 혼자 주절대는 형식이 아닌 누군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방식을 택했다. 송이는 정신과에 찾아가 자신의 기막힌 상황을 의사에게 늘어놓는다. 제3자인 의사에게 자신의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들과 클럽까지 결성한 사실을 들려주면서 이러한 황당한 관계맺음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객관적인 의견을 구한다.


 
▲ 영화 '걸프렌즈'의 한 장면  

 
소설에서 섹스는 둘의 관계가 가까워질 때나 불청객의 등장으로 파국으로 이어질 때나 상황을 전환하는 열쇠가 된다. 원작은 송이와 진호의 섹스장면을 자주 묘사한다. 송이는 관계 할 때 느끼는 속마음을 여성의 입장에서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비속어 등의 자극적인 언어는 사용치 않지만 솔직한 표현이 유쾌하면서도 짜릿하다.

영화는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만 살릴 수 있는 느낌을 잘 표현했다. 특히, 진이 주최한 파티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은 세 여자들이 그동안 쌓아온 오해를 풀어버리는 계기가 된다. 그녀들은 손에 잡히는 것은 전부 집어 던지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헤드락도 건다.
 
 
▲ 영화 '걸프렌즈'의 한 장면


 
급기야는 케이크 범벅이 돼 파티장소에 있는 풀장으로 ‘풍덩’. 소설에는 없지만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진 이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 그를 차지한 그녀는 누구?
『걸프렌즈』는 사랑에 끌려 다니는 과거의 무거운 여성상 보다는 사랑을 주도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그래서 세 여자는 진호에게 선택받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녀들이 그를 차지하는 것이다. 과연 그를 갖는 사람은 셋 중의 누구일까? 원작이나 영화는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진호는 송이에게 반지를 전해 주고 그녀의 결정을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 영화 '걸프렌즈'의 한 장면   



그리고 걸프렌즈 클럽은 진을 주축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소설에서는 이벤트 회사를 차리고, 영화에서는 패션 관련 사업에 뛰어든다. 사랑에 괴로워하던 이들이 갑자기 ‘커리어 우먼’으로 변신한 것이다. 사랑에 얽매이지 않는 주체적인 여성을 그리기 위해서 ‘일하는 여성’은 필수적인 요소인 것처럼. 참으로 아쉬운 설정이다.

그래도 소설은 허름한 사무실, 개업식 나레이터 모델 등에서 돌잔치 이벤트 기획으로 그나마 단계를 밟아가지만 영화는 너무 많은 단계를 생략했다. 그래서 더 많은 실망감을 안겨준다. 실직한 송이는 진의 회사에 입사해 큰 패션쇼를 성공시키고, 보라는 갑작스럽게 그들이 기획한 패션쇼의 모델로 발탁된다. 그리고 송이는 남자와 함께 가고 싶어 하던 남산타워를 그가 아닌 그녀들과 함께 간다.
 
 
▲ 영화 '걸프렌즈'의 스틸컷 



한 소설가는 『걸프렌즈』가 한국 소설의 변화를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그 당시는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시대는 하도 빨리 변하니까. 하지만 2년이 지난 후 만들어진 영화는 변화를 담아내기보다 안주했다는 인상이 남는다. 아쉽다.
 
toward2030@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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