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게임
새벽의 게임
  • 김동민
  • 승인 2005.11.1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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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 (소설가 · 문학평론가)
둔치에 새벽운동 나오는 사람들은 천태만상이다. 연령도 그렇고 차림새도 그렇고 운동하는 모습도 그렇다.
 허연 머리칼 노년층, 대머리 중년 사내, 꽁지머리 청년, 긴 머리 아가씨, 졸린 눈 비비며 어른 따르는 꼬마, ……. 새빨간 운동복, 연녹색 점퍼, 흰 티셔츠, 노란 바지, 보랏빛 운동모, 주황색 운동화, ……. 숨가쁘게 뛰는 사람, 로봇처럼 뒤뚱거리는 사람, 거꾸로 걷는 사람, 땅이 꺼질세라 조심조심 발을 옮기는 사람, 연방 옆엣사람과 무어라 조잘대며 멈췄다 가는 사람, ……. 철봉대 매달리는 사람, 허리돌리기 기구에만 집착하는 사람, 역기 드는 사람, 평행봉 하는 사람, 줄넘기하는 사람, 팔굽혀펴기 하는 사람, …….

 참으로 제 스타일대로 행동한다. 그런데 그들이 꼭 하나 되게 하는 일이 있다. 아니 그렇게 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저 노인이다. 커다란 청색 차양 아래에는 나무 벤치가 여섯 개 놓였는데 그중 강가 쪽에 있는 가운데 벤치, 그 자리의 주인공.

 언제부터 그 벤치가 노인의 지정석이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노인이 그곳에 나타난 시기라든지 어디 사는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새벽같이 그 장소에 나오는지 (노인은 아직 한 번도 운동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는 이가 없다.

 만약 노인이 그 이상한 짓거리만 하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의 시선도 끌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그렇고 그런 늙수레한 몰골이었고 삼삼오오 나오는 경로당 회원들과 별로 구별이 가지 않았다. 생김새도 평범했다.

 그런데 노인은 아주 엉뚱한 짓을 했다.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다. 그게 무슨 특별한 일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노인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그런 말은 쑥 들어갈 것이다. 한마디로 지독한 음치였다. 저만큼 흘러가는 강물도 킥킥거리는 듯했다. 게걸스럽게 무언가를 먹어대는 비둘기 떼도 노인 쪽을 힐끔거리는 것 같았다. 그것도 노래라고 하는지 실로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레퍼토리는 풍부했다. 가사도 거의 맞는 듯했다. 문제는 곡조였다. 그렇게 엉터리로 부르라고 해도 힘들 터였다. 게다가 늙은이가 목청 하나는 어찌 그리도 우렁찬지. 온 둔치가 왕왕 울릴 판이었다. 근처에서 운동하는 이들은 연신 노인에게 눈길을 던졌다. 달리던 사람도 예외 없이 바라보았다. 애완견이 깽깽 짖어댔다.

 그런데 웬일일까. 노인의 노래는 너무나 구슬프게 들렸다. 청승맞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그다지도 궁상맞을까. 사람들은 곡조가 엉망진창인 그 슬픈 노래를 부르는 노인을 두고 추측이 분분했다.

 “할멈이 얼마 전 죽은 홀아비가 틀림없어.”
 “자식들한테 버림받은 영감이 아닐까?”
 “젊은 시절에 가수 지망생이었을지도 몰라.”
 “정신이 어떻게 된 게 확실하다구.”

 대다수 사람들은 소곤거렸다. 미친 노인 취급하는 사람은 큰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그들 표정 또한 다양했다. 어이없어 하는 사람, 불쌍하다는 눈빛을 지어 보이는 사람, 정말 귀를 틀어막고 싶군, 하면서 짜증스런 표정을 하는 사람, 염려스럽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 …….

 어쨌거나 노인은 관심의 초점이 돼버렸다. 도대체 노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새벽마다 저렇게 강가에 나와 청승맞은 엉터리 노래를 끝도 없이 불러대는 것인가. 목도 아프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쩌다 같은 노래를 반복할 때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하루 아침 동안에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이틀 전 불렀던 노래를 다시 하는 일이야 허다하지만 그날 그날 새벽 노래는 달랐다.

 사람들은 점점 노골적인 관심을 띠었다. 노인 눈치 따윈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동물원 우리 안 원숭이 구경하듯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이는 바로 옆에 다가가서 노인 눈을 들여다보았다. 미친 사람은 눈빛에서 구별해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노인 반응은 한결같았다. 누가 무슨 언동을 해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듯했다. 심지어 젊은이 하나가 집게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동그라미를 그려 보여도 무표정했다. 아니 더욱 노랫소리가 높아졌다. 그럴 땐 세상을 달관한 선사(;? 같은 면모도 엿보였다.

 “사아고오옹에에 배앳노오래에 가아무울거어리이고…….”
 “처웅두웅사안 바악다알재애를 우울고오 너엄는 내애 니임아아…….”
 “타아향사아리이 며해애더언가 소온꼬옵아…….”

 이제 노인 없는 새벽은 없게 되었다. 노인의 노래 속에 둔치의 하루가 열렸다. 만일 노인이 나오지 않으면 세상은 없어질 것 같았다.
 그랬다. 노인은 단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나왔다. 비 오는 날 사람들은 우산 속에서 노인을 보았다. 바람 몰아치는 날 사람들은 허옇게 날리는 노인의 은빛 머리칼을 보았다. 안개 자욱한 날 한폭의 동양화 속에 흐르는 운무를 거느리고 나타난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노래를 부르고 불렀다. 백날 천날 노래해도 영원한 음치는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지만. 그런데도, 아니 그래서 더욱 그런지 몰라도, 노인 노랫가락은 갈수록 슬픈 색조를 담았다. 만약 노인 목청이 곱고 곡조가 맞았다면 저렇게 구슬픈 느낌을 자아내지는 않을 거라고 예단하는 이도 나왔다.

 옳았다. 노인에겐 분명 엄청난 사연이 있을 터였다. 그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새벽같이 나와 저 아래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며 끝도 없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 노인의 상처는 과연 얼마나 깊고 큰 것일까. 처음에 노인을 이상하게 보고 경멸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경외감을 키워갔다. 저렇게 형편없는 노래 솜씨임에도 전혀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 있게 큰소리로 불러대는 그 배포는 진정 놀랍고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

 아, 노인이여. 행색은 비록 초췌할망정 세상 도(?를 깨친 이가 확실했다. 어렵고 힘든 세상 살아가기 위해 악착같이 새벽운동 하는 불쌍한 중생들을 위무하기 위해 저렇게 노래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반대파도 당연히 만만찮았다. 완전히 미쳤다, 올데 갈데 없는 거렁뱅이다, 더럽게 늙었다, …….

 사람들 의견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그 강도가 심해졌다. 마침내 사람들은 제 짐작이 옳다고 다투기에 이르렀다. 운동은 하지 않고 노인을 저만큼 앞에 두고 큰소리로 언쟁을 벌였다.

 -돌아버린 늙은이라구. 저 노랫소리 들어보라니까!
 -맞아. 우리가 이렇게 떠들어대도 그냥 노래만 하잖아. 미친 게 확실해. 의심할 여지가 없어.
 -아냐. 너무나 큰 슬픔이 노인을 저렇게 만든 거야. 할머니가 얼마 전 타계하신 거야.
 -그래. 자식들도 등 돌리고 아내도 없고 그러니 노래로 괴로운 심정을 달랠 수밖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노인 정체는 한층 오리무중이었다. 노인 눈에는 그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노인 귀에는 그 많은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오직 사람들을 더욱 많이 불러모으기 위한 듯 예의 그 엉터리 곡조 노래만 더더욱 큰소리로 불러댈 뿐이었다.

 급기야 사람들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다. 노인의 정체를 알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다는 얼굴들이었다. 운동이고 나발이고 노인의 깊고 큰 사연을 먼저 알아야겠다는 심사였다.

 어느 날 드디어 모두들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노인을 빙 에워싸고 있다가 노인이 잠시 노래를 멈춘 틈을 타 중년 사내가 물었다.
 “영감님! 영감님이 노래를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여인네도 물었다.
 “제발 그 사연을 들려주세요.”

 그러나 노인은 말이 없었다. 그저 가만히 눈을 내리깔 뿐이었다. 사람들은 더욱 재촉하고 재촉했다. 이대로는 세상없어도 그냥 물러갈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노인 입을 열게 하기에 성공했다. 그런데 노인이 천천히 눈을 뜨고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하는 소리는 이러한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당신들을 지켜보는 게 참으로 즐거웠소. 특히 그 표정들이 말이오. 그래 일부러 더욱 엉터리 노래를 불렀지. 늙어 나이 먹으니 아무도 날 상대해 주지 않더군. 난 그런 세상 사람들과의 게임을 꿈꾸었어. 이 늙은이에게 관심을 갖게 할…. 이제 게임은 끝났어. 이건 내가 이긴 게임이라구. 하하하, 으하하하.”
(끝)
 
독서신문 1389호 [2005.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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