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철로 나의 인권을 침해말라
[독서신문] 황정은 기자 =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셔야겠지만,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전철을 타야하고,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타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곳을 택하겠는가.”
지하철 푸시맨 아르바이트생의 느낌을 옮긴 박민규의 소설『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한 대목이다. 우리는 매일 ‘지옥철’과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힘겨울 출근을 감행하지만 이것이 ‘인권의 침해’라고 여긴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여기 숨쉴 틈 없는 지하철과 위험요소 99.9%를 안고 있는 만원버스로 통근하는 직장인들이 ‘매일 아침 저녁,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며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되짚은 책이 나왔다.
『일어나라 인권 otl』은 지난 2008년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 <한겨레 21>에서 총 30회에 걸쳐 연재한 인권의 현장을 엮어 만든 작품으로 좌절해 쓰러진 사람의 모습을 상징하는 이모티콘인 ‘otl'을 활용해 그 표지부터 눈길을 끌고 있다.
만약 당신이 인권은 프랑스 대혁명이 발생하거나 일제 치하에서나 언급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아니 그때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유신헌법이 시행됐을 때에나 거론된 화두라고 여겼다면 이 책을 통해 ‘인권’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돌봐주는 배우자도 자식도 없는 홀몸의 말기암 노인 환자가 단칸방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로 끌려갈 순간을 기다리던 유대인 노인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문명국이라 일컬어지는 대한민국에서 실은 얼마나 더 잔인하고 비참하게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는지를 거침없이 폭로하고 있다.
■ 일어나라 인권 otl
한겨레21 편집부 지음 | 한겨레출판사 펴냄 | 296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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