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좌표
생각의 좌표
  • 독서신문
  • 승인 2009.12.1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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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암기’가 아닌 ‘사유’할 권리가 있다
[독서신문] 황정은 기자 = 많은 지식인들이 현 세대를 거론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사고가 정지된 세대’에 대한 부분이다. 이것은 디지털 세대에 있는 현대인들이 사고의 다양성을 조장하는 가운데 거주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사고를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음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다능(多能)은 무능(無能)’이라는 말이 있듯 많은 매체와 다양한 정보가 존재하는 이 시대에서 사고력의 확장은 무한하게 일어날 듯 하지만 오히려 정보가 부유한 환경이 모든 사고를 차단해 버리고 있다. 사람마다 독특한 체취(體臭)가 있는 것처럼 개인은 저마다의 사취(思臭)가 있게 마련이다. 같은 현상을 접할지라도 자신만이 갖고 있는 논리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만의 언어와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유(思考)다. 발생한 사건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왜’와 ‘어떻게’라는 생각의 여과장치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꿔 생각하는 것. 발생한 사건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언급하는 것이 ‘제 1의 언어’라면 자신의 사고체계 안에서 이것을 새롭게 가공하고 다듬은 후 내뱉는 것은 ‘제 2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은 ‘제 2의 언어’에 능한 사람일수록 ‘지식인’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된다. 나이를 먹고 교육의 혜택을 받은 사람일수록 제 2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은 더욱 높아진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연간 배출되는 대졸자가 50만 명을 상회하는 현실에서 제 2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 미미하다는 것이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는 그의 신간을 통해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질문으로 독자들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가 이처럼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합리적 동물이 아니라 (자신의 기존 생각을) 합리화하는 동물’이라는 그의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웬만한 내적 결단과 용기가 아니고서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분위기에서 홍세화의 이 질문은 타인의 사고에 노예로 전락한 현대 한국인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어린 아이들을 피곤하게 생각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한 가지는 바로 ‘호기심’이다. 사소한 현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촉각을 세우며 ‘왜’라는 질문을 입에서 내려놓지 않는 아이들에게 부모는 다소 귀찮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인들에게도 고스란히 작용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조직에서 피곤한 인물로 낙인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발견한다. ‘왜’라는 질문은 곧 조직에 ‘딴지’를 거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암묵적인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왜’라는 질문은 점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오히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그 좋은 머리를 기존의 생각을 수정하기보다 기존의 생각을 계속 고집하기 위한 합리화의 도구로 쓴다. 사람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는 바를 지속적으로 합리화하면서 고집하기 때문에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이런 물음을 던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홍세화는 ‘왜’와 ‘어떻게’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부단히 던질 것을 조언한다. 사실 이 두 가지 질문은 인간이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러한 질문이 없이도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쟁취의 역사’였던 과거를 돌이켜 본다면 ‘사유’도 쟁취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도 결국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교육철학자 콩도르세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과 ‘믿는 사람’으로 나누었다. 이는 다시 말해 ‘근대적 인간’과 ‘중세적 인간’으로 나눈 것인데, 이를 다시 내 식대로 적용해 보면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를 물을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배우고 익히는 ‘학습(學習)’에서 ‘습(習)’을 강조하는 저자. 이것은 아는 것보다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신의 생각의 좌표는 지금 어디쯤인가. 어디로 가야할 지 두려워 아직 원점에 있다면 이젠 당신만의 주장과 목소리를 곧게 펴며 x축이든 y축이든 어디로든 가보는 것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길이 아닐까. 우린 ‘암기’가 아닌 ‘사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chloe@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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