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욕망의 서사적 부활을 그려
불길한 욕망의 서사적 부활을 그려
  • 최용석
  • 승인 2009.12.15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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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의 장편 『목화밭 엽기전』
▲ 백민석 소설가     © 독서신문

백민석의 장편 『목화밭 엽기전』은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의 극적인 연출을 통해 개인 내면에 은밀히 감추어진 불길한 욕망을 보여준다. 사회적 일탈을 유발하는 불길한 욕망은 종종 동물의 야성적 행위에서 그 실체가 가늠되기도 한다. 이처럼 타인에 대한 배려가 거세된 불길한 욕망을 화두로 삼은 소설적 육화는 서사 문학에 대한 통념과 고정관념을 뿌리째 흔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특히 전통 서사(?)에 길들여진 독자는 이 작품을 당혹스럽고 낯선 것으로 수용함으로써 서사적 소통에 혼란과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본 서사 담론은 현 시점에서 더욱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다. 문화적 탄압 탓에 이제는 일상의 이면으로 밀려난 원초적 욕망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작중에 보이는 과도한 선정성과 폭력성은 문화라는 억압 기제로 인해 경멸과 증오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하지만 문화화 이전에는 엄연히 존재 가치를 지녔던 불길한 욕망의 존재를 새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문화의 성숙 혹은 억압에도 불구하고 개인 내면에 잔존하는 불길한 욕망은 간혹 일상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곤 한다. 즉 현실원칙에 기초한 문화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원초적 욕망은 폭력성과 과도한 에로티시즘의 양상으로 혹은 그것의 혼용 형태로 표출되곤 하는 것이다. 가령, 작중 인물의 경우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는 일에 흥미와 쾌락을 느끼고,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해서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가혹한 폭력을 휘두르거나 성적 쾌락에 탐닉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행한다. 이런 과도한 일탈행위는 작중 인물이 임의대로 설정한 일상적 영역을 침범한 이들에게 예외 없이 실현된다.

그런 점에서 일탈행위를 부추기는 불길한 욕망은 동물의 본능과 다를 바 없다. 이처럼 원초적 본능에 속하는 불길한 욕망은 사회 근간을 이루는 이른바 근대기획의 한계와 자기모순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근대기획은 이성과 합리성에 집착한 탓에 그 외의 정서적 영역에는 무관심 내지는 배척의 입장을 취한다. 그 중심에 불길한 욕망이 놓여 있음은 물론이다. 흥미로운 점은 근대기획에 기초한 현대의 문화가 불길한 욕망과 마찬가지로 자기질서를 위반한 대상에겐 어김없이 폭력으로 응징한다는 것이다. 폭력의 정도로 말하자면 문화는 불길한 욕망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불길한 욕망을 일상에서 여과 없이 표출하는 작중의 한창림이 ‘펫숍’ 혹은 ‘펫숍 삼촌’에게 저항한 결과, 결국 패망에 이르는 장면은 문화의 폭력성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문화 현상이 곧 일상이라는 사실에 비추어도 이는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따라서 근대기획의 한계로서의 문화의 폭력성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을 간파할 수 있다. 동시에 근대기획에 따른 문화적 질서가 다양한 욕망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는 데 뚜렷한 한계를 지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처럼 문화적 질서의 대척점에 놓인 불길한 욕망이 소통부재의 환경과 접할 경우, 그것의 표출 빈도 및 정도는 뚜렷이 증가되는 특성을 보인다. 작중의 한창림 부부는 주변과는 물론, 이들 부부간에서조차도 소통은 부재하다. 한창림과 펫숍 삼촌의 소통 또한 쌍방향적인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펫숍 삼촌이 한창림에게 건네는 언어는 명령과 지시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불길한 욕망에 따른 일탈행위는 이와 같이 담론적 차원의 비판적 접근을 통한 자기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그래서 개인 혹은 현실의 이면에 관심을 집중시킨 작가의 문학적 통찰력은 더욱 그 빛을 발한다.

이런 문학적 안목은 가상현실에서 개인의 정체성 문제에 머물러 있던 이전 작품들, 가령 『내가 사랑한 캔디』나 최근의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에서 일구어낸 문학적 성과를 손쉽게 뛰어넘게 한다. 따라서 『목화밭 엽기전』은 과도한 일탈을 매개로 사회적 시스템의 부조리에 대한 진지하고 흥미로운 비판적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일정한 서사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 최용석 문학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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