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올바름)란 강자의 이익’
‘정의(올바름)란 강자의 이익’
  • 조순옥
  • 승인 2009.11.13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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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지난 29일(2009년 10월) 미디어법 권한쟁의 심판에서 권한 침해는 인정하면서 법은 유효하다고 밝혔다. 이 결정에 대해 여러 가지 상황을 설정하여 헌재의 결정을 패러디하고 있다.

“커닝은 인정되지만 성적은 유효하다. 물건은 훔쳤지만 절도죄는 아니다. 출근은 안했지만 결근은 아니다. 물건은 훔쳤지만 절도죄는 아니다. 베끼긴 했지만 표절은 아니다. 회사 자금을 횡령했지만 소유권은 인정된다. 선거에 졌지만 패배는 아니다. 강간은 했지만 임신은 유효하다. 시험은 대리지만 합격은 유효하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기원전 플라톤에 의해 이야기 되고 있으니 전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닌 듯싶다. 다음은 플라톤 「국가」론 제1권에서 ‘올바름(正義)이란 무엇인가?’라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대한 대화내용이다. 소크라테스는 피레우스 항구 축제를 구경한 뒤 폴레마르코스 집에 초청받아 ‘올바름(정의正義, justice)’의 본질에 대해 대화를 하게 된다.

트라시마쿠스:“강자(통치자)의 이익’이며, 가장 강한 자가 정하는 것이다. 강한 자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법률을 만들어 약자(통치 받는 자)에게 자신의 결정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에 따라야 한다고 하는 것은 올바른 행위이다.”

소크라테스 : “진실하고 애틋한 마음이 있는 의사는 환자를 먼저 생각하고, 선장은 선원을 먼저 생각하듯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보다 통치 받는 사람들의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즉, 강한 자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며, 올바름이란 좋은 것이므로 이러한 일은 정의롭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 속에 들어있는 결론은 올바름이 올바르지 못함보다(불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올바름이 올바르지 못함보다 이익이며, 올바른 사람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트라시마쿠스처럼 자기 자신의 이익과 힘을 내세워 이익을 먼저 따진다면 처음에는 이익이 보장되는 듯싶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약육강식을 피해갈 수 없게 된다. 정의에 대한 기준이 없게 되면 자의적 판단이 난무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혼란과 무질서만 남게 될 것이다. 사회가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장치가 법이다. 법의 안전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 법 안정성이 무너지면 법의 합목적성은 힘을 잃고 만다. 이렇게 되면 사회전체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위험하게 된다. 정치는 올바름(정의)을 실현시키는 일이며, 이상적인 국가(the ideal republic)는 ‘유토피아적 사유(utopian thinking)’가 가능한 국가여야 한다. 

헌재의 판단과 결정에 대해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쿠스의 견해 중 무엇이 옳은지, 올바름의 가치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어린 아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일반 상식에 반하는 결정을 한 헌법재판소는 스스로 불신과 냉소를 만들어냈다. 국민 10명 중 6명은 미디어법의 입법절차상 위법성이 지적된 만큼 국회가 다시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의(올바름)란 강자의 이익일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신앙과 양심의 이름으로 국민 불복종을 선언할 결정적인 때가 닥쳤다”는 선언은 우리에게 한 가닥 희망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 패러디(parody)는 익살과 풍자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희작(戱作, 글 따위를 실없이 장난삼아 지음. 또는 그 글)이라고도 한다. 오마주(hommage)와 구별하여 쓴다. 전자는 익살 내지 풍자가 주된 목적인 반면, 후자는 그 작품의 원작자를 존경하는 차원에서 원작의 요소를 차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조순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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