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 독서신문
  • 승인 2009.11.1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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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더하기 사랑은 ‘성숙’... 할머니 의사의 입양아 진료 일기
[독서신문] 황정은 기자 = 뇌성마비로 다리를 심하게 절고 말할 때마다 얼굴 근육을 실룩거려 가만히 서 있으면 장애인인지 잘 분간되지 않던 영수.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성숙했던 영수는 미국으로 입양돼 훌륭한 선생님과 부모님 밑에서 자라게 된다. 세월이 흘러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어엿한 의사 선생님이 돼 있었다. 자신이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던 지라 그러한 아이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나누기 위해 여러 봉사활동을 해오던 그는 함께 봉사활동을 해온 여성과 결혼을 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간다. 어느 날 자신들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된 그들 부부. 하지만 그들은 절망의 나날을 사는 것이 아닌 다시 입양을 통해 사랑을 베풀며 살아간다.
 
위의 일화는 소설 속 대목이 아닌 모두 실화다. 실제로 존재했던 어린 영수가 부모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그를 극진히 보살펴 준 것은 ‘국제거지’라는 별명을 가진 할머니 의사 조병국 씨다. 의술의 도움을 받지 못해 두 동생을 잃은 조 할머니는 한국전쟁 동안 처참하게 버려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의과대학 진학을 결심하고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의사라는 말보다 할머니라는 말이 더 친근하게 어울리는 조병국 씨. 그는 일평생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해오면서 열악한 환경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노르웨이와 독일, 미국 등 각국을 돌아다니며 치료에 필요한 의료를 요청하고 다녀 ‘국제거지’라는 별명을 얻기에 이른다.
 
한 때는 국가의 위상이 실추된다 하여 정부의 압박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발품을 판 덕에 아픔에 처한 여러 아이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기도 하고, 죽어갈 수밖에 없던 어린 숨소리를 다시 살리기도 했다.
 
조병국 할머니의 50년 의료일기를 담은『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는 그녀가 진료한 아이들과 관련된 일화 22개를 회상하고 있는 에세이다. 백발이 무성한 할머니가 이제 막 세상에 입문한 갓난아이들을 친 할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진맥을 짚어주고 주사를 놔주고 재활치료를 행한 수많은 일화를 담은 이 작품은 어두운 세상에 비취는 한 줄기 빛과 같다.
 
사랑을 받아야 할 때 사랑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엄마의 품을 제공한 조병국 할머니는 그의 일생을 통해 사랑이 낳는 것은 분명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증시켰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들이 버림을 받고 있고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자라고 있는 사람들도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다. 남들은 귀찮다고 말하는 부모의 간섭을 한 번이라도 받아보고 싶은 아이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식물이 성장하는 데는 물과 기름진 토양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식물이 절대 자랄 수 없다. 반드시 햇볕의 따스함과 밝은 빛을 듬뿍 쫴야만 뚝심 있는 줄기로 곧게 뻗어 나갈 수 있는 것처럼 아이들도 밥과 장난감만으로 절대 자라지 않는다. 여린 숨을 내쉬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많은 밥이 아닌 더욱 많은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황인술 본지 논설위원에 따르면 ‘왕좌에 앉은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불린 신성로마제국 독일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호기심이 넘쳐 당시 과학자들과 다양한 실험을 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는 아기가 태어난 후 자라면서 가장 먼저 어떤 언어로 말하는지 알고 싶어서 유모에게 명하기를,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씻어주긴 하되 단 한 마이도 말을 걸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가장 오래된 언어인 히브리어로 말하는지, 아니면 그리스어 라틴어 아랍어로 말하는지, 또는 부모의 언어로 말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육 받은 아이들은 히브리어로 먼저 말하지도 않았고 아랍어로 말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의 부모의 언어로 말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영원히 말을 할 수 없는 상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필요한 것은 사랑과 애정의 접촉이었던 것이다.
 
세상이 힘들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작지만 큰 힘이 되는 충고를 곁들이고 있다.
 
■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조병국 지음 / 삼성출판사 펴냄 / 320쪽 / 12,000원
 
<chloe@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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