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不惑)에 대하여
불혹(不惑)에 대하여
  • 신금자
  • 승인 2009.10.2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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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신금자 수필가
흔히 마흔의 나이를 불혹(不惑)이라 한다. 이는 나이 사십이면 사물의 이치와 세상일에 어느 정도 깨달음이 있어 미혹되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 공자도 사십에 이르러서야 불혹을 체험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사실 40세가 되기 전에 이미 세상에 이름을 떨친 위인들이 참 많다. 따라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와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이 나이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항변한다면 마땅히 할 말은 없다. 일례로 우리가 잘 아는 프란츠 카프카(1883~1924)만 보아도 그렇다. 40년이라는 짧은 생을 통해 가장 치열한 사고와 고뇌로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그는 체코 프라하에서 가난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낮에는 보험관련 일을 하고 주로 밤에 글을 쓰다가 폐결핵에다 영양부족까지 겹쳐 4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그가 쓴 글은 오랜 삶의 경험이라기보다 카프카 자신이 처한 현재의 방대한 고뇌였을 법하다. 그의 작품은 주로 사회 부조리와 그로 인한 인간의 불안 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결국 현대 인간의 실존적 체험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통찰해 놓은 그의 작품들은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았다. 사후 출판된 카프카의 소설 가운데 특히 『심판 der prozess』, 『성 das schloss』 등은 20세기 인간의 불안과 소외를 그린 작품이며 그의 소설 『변신』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니 불혹, 혹은 세상살이 사십 년이면 직접 또는 간접적인 체득만으로도 바른 판단과 정좌된 마음가짐이 가능해진다는 말일 터이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이다. 이 가을더러 ‘남자의 계절이다’, ‘남자들이 가을을 더 많이 탄다’는 등 마치 남자들이 단풍든 가을나무라도 되는 양 마구 흔들어대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이것이 혹여 더 이상 차분하지 않은 요즘 세대의 중년인 불혹의 정물화일까? 세상살이가 한결 복잡다단해져서인지 이제 중년, 아니 불혹은 원숙해진 나이라기보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이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는 우리 주변의 중년 남성들에게서 무시로 읽히는 자화상이라 할 수도 있다. 당장 아이들의 학비가 최고조에 이르는 나이인 탓에 그들은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의 어정쩡한 직책에서 벗어나기 위해 격무에 시달리나 언제 고가에서 밀려날지 항상 조마조마하다. 그런데다 예전같지 않은 건강에 대한 불안감까지 겹치니 어찌 태연하고도 유연해진 사고를 기대할 수 있으리오! 오히려 문풍지 바람에도 흔들리고 마는 초조한 중년을 속절없이 겪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불혹이 되었다한들 저절로 두루뭉술해질 재간이 있는가 말이다.

우리가 이렇게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동안,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대처는 좀 달랐다. 그들은 그깟 나이에 휘둘리지 않고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이즈음에 하기 시작한다. 분명, 또다시 그들은 범인(凡人)인 우리들의 사고를 앞질러가고 있음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 ‘안철수 연구소’의 안철수 씨도 불혹을 넘긴 나이에 공부를 더 하기 위해 과감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훌쩍 유학을 떠났다. 얼핏 우리는 ‘그에게 더 이상 무슨 공부가 필요할까?’란 생각이 들지만 그는 그곳에서 종일 책을 본다고 한다. 그래도 저녁에 보면 공부한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절망하곤 한다며 다시금 초조해하며 준비하는 50대였다. 그리고 지난 달 내한한 <퐁네프의 연인들>에 나왔던 프랑스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도 언젠가 하리라고 미뤄뒀던 현대무용에 푹 빠져 지낸다. 비로소 40이 넘은 나이에 ‘세계15대 대도시순회공연’을 하며 내면을 지켜내는 모습의 그녀가 참 인상 깊었다. 
 
불혹은 쉽게 미혹당하진 않을지 몰라도 가끔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인생무상을 느낄 때가 많은 나이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진정한 불혹의 경험은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삶이어야 한다. 불혹은 나이로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는 신념이 중요하겠다.  설사 불혹을 넘겼더라도 진짜 불혹을 누려볼 수 있는 나만의 불혹, 아니 불후의 명작을 준비해야 한다. 그 불후의 명작은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몇 명을 거느리고 무엇을 하고 얼마를 벌고  하는 식의 기록 카드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과 시간을 유용하는 데에 온 마음을 쏟아야 할 것이다. 소박하고 쉬운 것부터 시작하여 바로 자신과 그 주변의 돌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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