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과 정년을 넘어 시인으로 빛나다”
“불운과 정년을 넘어 시인으로 빛나다”
  • 안재동
  • 승인 2009.10.26 13: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아 출신 아나운서’ 김병래의 『떠남의 의미』

▲ 김병래 시인     © 독서신문
[독서신문]  안재동 시인·평론가 = 덧없이 세월이 흘러가는 소릴 / 들어본 적이 있는가. // 인생사 알게 모르게 늙어가는 소릴 들어본 적이 있는가. // 없다 없다. // 아무도 보고 들은 사람이 없다. //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이련가. / 무엇이련가.

 ― 김병래, 「없는데도」 부분
 
“시와 인연을 맺은 지 45년여 만에 첫 시집을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길고도 긴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1969년 한국방송(kbs)에 공채로 입사하여 수년 전 정년을 마칠 때까지 줄곧 아나운서로 맹활약한 김병래 시인이 그의 첫 시집 『떠남의 의미』에 올린 일성(一聲)이다. kookje(국제신문)사에서 출간된 이 시집의 머리글 ‘시집을 내면서’의 첫 문장이기도 하다. 이번 시집을 내기까지 그의 내면에 오랫동안 쌓여왔을 그 무엇인가를 직감케 함과 동시에 관심을 사로잡는 대목이다.

kbs 부산방송총국 아나운서부장까지 지낸 바 있는 김병래 시인은 그의 표현대로 오래전부터 시와 수필을 써 왔으며, 1999년에는 그동안 몇몇 신문과 동인지 등에 발표했던 글들을 중심으로 수필 50편과 시 21편을 함께 엮어 『아나운서와 술』(대원 刊)이란 저서를 상재하기도 했다. 근래에 접어들어 시(詩)로는 계간 《문예시대》에서, 수필로는 계간 《문예운동》에서 정식으로 등단절차까지 밟았다. 그는 현재 신라大, 경성大, 부산大에서는 ‘스피치’ 지도교수로, 부경보건高에서는 ‘스피치’ 전담강사로 활동하는 등 ‘스피치’ 관련 전문가로 명성이 높다. 뿐 아니라, 틈날 때마다 화폭에 자연과 인생을 담아내는 화가이기도 하다. ‘정년 이후의 빛나는 새 인생’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45년여 만에 시집을 내게 되었을까? 사뭇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책 머리글을 자세히 읽어보았더니, 그는 고아 출신이란다.

“가난했던 학창시절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방 한 구석에서 시(詩)가 뭔지도 모르며 손수 쓰고 삽화를 그려 시(詩) 장사를 한 후로 힘들고 어렵고 험난했던 삶의 역경과 아울러 방송인으로서 눈에 비친 사회의 이모저모를 비판과 풍자, 해학으로 평소 원고지에 담아 왔노라”고 설명한다.
 
열매는 꽃잎을 / 밀어내고 / 맺는 것이 아니라 // 꽃잎이 화려함을 접고 / 스스로 아픔을 향해 떠날 때 / 이뤄지는 것이니라. // 다음 세대를 위해 / 스스로 자리를 떠난다는 것은 / 얼마나 아름다운 향기이런가. 

 

― 「떠남의 의미」 전문
 

▲ 시집 『떠남의 의미』     © 독서신문
시인이자 수필가 김병래. 그는 참으로 용기 있고 떳떳한 사람이다. 자신이 고아이면서도 그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든 어디서든 숨김없이 자연스럽게 밝히기 때문이다. 그의 첫 저서 『아나운서와 술』에서 “한국전쟁(6·25) 때 고아가 돼 청주, 충주의 고아원 등지에서 고학으로 공부했다”고 (프로필란에) 적었으며 또 이번 시집에서도 그러하다.

정영자 시인(문학평론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은 본 시집의 해설에서 “서러움 시학의 주인공 김병래 시인은 대한민국에서 고아출신의 아나운서라는 유일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문인이다. 거리로 밀려난 그는 그때부터 세상과의 서럽고 고달픈 사연을 시작했다. 때문에 그의 시는 주제나 분위기로는 비장(悲壯)과 비창(悲愴)이 있고 애잔한 서러움이 서려 있다”고 평하면서 “서러운 사연을 김병래는 시적 형상화를 통하여 고백적 성찰과 신명의 생명 추구를 시도하면서 지성인다운 비판 의식을 바탕으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김 시인의 시 세계를 정리하고 있다.
 

아침햇살은 / 눈이 부시다. // 눈이 부신 것은 /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 생명력이 있는 것은 / 활기찬 것이다. //  활기찬 것은 / 오로지 첫걸음에서 / 나오는 것이다. // 아침 / 햇살처럼.

 

 ― 「아침햇살」 전문

 
총 3장으로 구성된 본 시집은 114페이지(해설 포함 131페이지)에 걸쳐 「세월」, 「비문」, 「나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들꽃」, 「빗소리」, 「이어도」, 「겨울국화」, 「한심지고」, 「걸레」, 「욕바람」 등 63편의 시를 담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