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혹은 메타소설의 운명
이야기 혹은 메타소설의 운명
  • 최용석
  • 승인 2009.09.2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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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아랑은 왜』를 논하다
▲ 김영하 작가     © 독서신문

김영하의 장편 『아랑은 왜』는 한마디로 소설의 창작 과정을 일러주는 실험적 소설로 규정할 수 있다. 작가는 자문자답의 방식으로 소설의 창작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스토리를 전개한다. 따라서 이 작품의 미덕은 무엇보다 서사 양식의 획기적 변모를 이끌어낸 작가의 실험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사 양식의 근본적 변화는 작중 화자의 독특한 진술에서 우선 발견된다. 가상 독자를 향해 질문을 던진 작중 화자가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방식, 이른바 ‘문답식 진술’이 그것이다. 가령, 작가는 시종일관 화자로 등장하여 “이런 도입부는 어떨까, 아무개라는 인물에게 이런 성격을 부여해 볼까, 아니면 말까, 이런 전개는 너무 상투적이 아닌가” 등과 같이 가상 독자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스스로 마련한다.

서사 전략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문답식 진술’은 수동적 입장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독자에게 스토리텔링에 동참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다양한 문학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 효과는 독자의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서 뚜렷이 확인된다. 작가적 입장에 놓여 있다는 독자의 착각은, 작중 상황의 연출에 다각적으로 개입하는 ‘편집자적 논평’에서 유발되기도 한다.

‘문답식 진술’은 완결된 텍스트란 존재하지 않으며, 독자의 의도에 의해서도 작품 내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진술은 시청자의 의견을 스토리에 반영하는 드라마나 인터넷을 매개로 독자와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양방향 소설(interactive novel)로서의 ‘하이퍼텍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하이퍼텍스트의 존재는 창작 활동이 특정인의 독점적 행위에서 일반인의 보편적 활동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작가와 독자가 대등한 위치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하이퍼텍스트는 21세기 서사의 주류일 수 있다. 

또 ‘문답식 진술’은 ‘소설에 대한 소설’, ‘소설 위의 소설’, ‘소설 밖의 소설’ 등으로 불리는 메타소설의 존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 이유는 메타적 서사 문법으로서의 ‘문답식 진술’이 기존 서사 양식의 해체는 물론, 타자와의 몸 섞기를 주저하지 않는 현대 예술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현대 예술은 개별 영역의 엄격한 경계와 구분에 기초하는 근대적 예술의 장르적 통념을 여지없이 허물어뜨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영역의 예술을 재창조한다. 이런 흐름에서 『아랑은 왜』가 선보이는 ‘문답식 진술’은 침체 일로에 있는 현 소설계의 참신한 서사 문법으로, 또 예술 장르의 미래적 도구로서 한껏 기대를 갖게 한다.

서사 양식의 실험적 모색과 관련한 ‘문답식 진술’ 외에 ‘설화의 창조적 차용’을 빼놓을 수 없다. ‘설화의 창조적 차용’은 이중 구조의 스토리 라인을 구축함으로써 다양한 복선과 암시, 독특한 캐릭터의 연출에 이바지한다. 게다가 친숙한 내용의 설화는 실험적인 서사 문법의 생소함에서 연유하는 한계인 독자와 작품의 간격을 좁혀주며, 상상력에 힘입어 스토리텔링에 탄력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아랑 설화의 창조적 차용’은 ‘문답식 진술’과의 병행을 통해 독자의 흥미와 관심을 가일층 증폭시키는 데 기여함은 물론이다.

정작 ‘문답식 진술’과 ‘설화의 창조적 차용’이 작가 특유의 상상력이 작품 전반에 발휘될 경우, 그 문학적 의의가 확보될 수 있다. 알려진 대로 ‘문학적 상상력’은 베일에 가려진 현실의 실체를 흥미롭고 생동감 있게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추리 소설 형식의 이 작품에서 작가적 상상력은 스토리텔링을 자연스레 이끌어가는 핵심이다. 작가적 상상력은 현대와 과거의 상이한 두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개별 장면 상호간에 개연성과 사실성과 긴박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작가적 상상력’은 이런 역할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읽는 내내 흥미와 재미를 제공함으로써 작품 세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만든다.

다만 서사 과정에 보이는 작가의 지나친 개입이나 역사 자료의 과도한 활용은 작품의 진정성을 훼손하고 작품 감상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또 서사의 진행이 결국 작가의 몫일 수밖에 없기에 ‘문답식 진술’의 신선함은 도리어 틀에 박힌 진부함으로 다가설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서사 문법의 정착에는 일정한 노력으로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시간이 요구되기에 김영하의 『아랑은 왜』의 새로운 장르로서의 성공 여부는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할 문제로 남는다.

 / 최용석 문학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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