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역사를 움직인 이사벨 1세 여왕
스페인의 역사를 움직인 이사벨 1세 여왕
  • 신금자
  • 승인 2009.09.14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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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지중해 푸른 바람의 간지럼에도 알함브라 궁전은 입을 굳게 다문 듯했다. 그러나 희끗희끗한 궁전의 외벽이 주는 느낌은 사뭇 의미심장했다. 수많은 총포와 대적했을 흙벽돌, 보초병이 불침번을 서며 감시의 끈을 조였을 높은 망루들, 그리고 미로속의 미로로 요새화된 궁전의 내부까지 종교뿐 아니라 군사적 관점에서 보아도 아득히 바라보이는 알함브라 궁전은 이 도시의 수호신이었음을 대번 알 수 있었다. 사실 이사벨 1세에게 함락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곳이 이슬람의 신전이나 다름없었으리라. 현재 궁전 안팎에 남아있는 그 자취, 그러니까 도통 해득할 수 없는 아라비아 문양만큼이나 이슬람 성지의 영광과 좌절은 크고도 절절했으리라는 짐작이다.

붉은 성벽을 따라 걷다 유도화가 둥그렇게 엮인 꽃길 터널 속에 잠시 들었다. 꽃길에 문득 아랍풍의 기타반주가 섞였다. 나나무스꾸리의 곱고 애잔한 목소리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다. 이 노래는 사뭇 작자가 떠난 연인을 못잊어 방황하던 때에 이 곳에 왔다가 작곡한 탓에 한층 더 슬프게 와 닿는다. 아무리그래도 알함브라 궁전을 탐하고 사랑하다 이 곳에 묻히기를 소원한, 결국 이 곳에 조용히 묻힌 이사벨 1세 여왕의 애착이 어쩌면 더 애절했으리란 생각이다.
 
 
카스티야의 날개 잃은 천사

15세기 이베리아 반도는 포르투갈, 카스티야, 아라곤, 그라나다 등 분할된 왕국이었다. 그 중 가장 큰 나라가 카스티야였다. 이사벨 공주는 카스티야 왕 후안 2세와 그의 두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국왕 후안 2세는 나약하고 무능해 백성들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었으니 나라 또한 그 수하의 권력에 휘청거렸다. 이즈음 포르투갈에서 시집온 이사벨 왕후가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려고 첫 왕비가 낳은 엔리케 왕자와 힘을 합쳐 안하무인으로 부정부패한 수상을 처단하기에 이른다.

이 일로 후안 국왕은 자신이 저격 당한 듯 충격을 받고 시름시름 앓다 죽고 엔리케 4세가 카스티야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카스티야 왕국은 엔리케 4세에게도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차라리 이사벨 왕후가 나라를 다스려주길 바랬다. 따라서 불안해진 엔리케 4세가 이사벨 왕후를 이사벨 1세 공주와 갓난쟁이 알폰소 왕자와 함께  어느 시골마을로 보내버렸다. 그 곳에서 어린 이사벨 공주는 어머니와 교회에 나가 오직 천주를 의지하며 기도로 소일했다. 이는 훗날 그녀가 종교재판이란 것을 만들어 이교도를 무참히 처단했던 빗나간 믿음이 되기도 한다.
 

그녀가 꿈꾸는 왕국

북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온 무어족이 절대적인 영향권을 확대하며 유럽 대부분을 이슬람교로 지배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로마가 군을 파견하고 기독교도들까지 총 합세했다. 이렇게 불을 지핀 스페인의 국토회복운동은 15세기엔 이르러 스페인의 그라나다만 남기고 모든 영지를 되찾았다. 문제는 엔리케 4세에게까지까지 흘러온 그라나다의 이슬람 최대 요새 알함브라 궁전이었다. 무능한 엔리케 4세가 그 성을 칠 힘은커녕 관심조차 없다는 사실이 참 답답한 형국이었다. 그래서 귀족들과 천주교 사제단마저 국왕을 알게 모르게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러니 엔리케 4세에게 후사가 없어도 걱정은커녕 즉위 후 17년이 지난 때에 왕후가 후아나 공주를 낳았다는데도 모두들 시큰둥하였다.  외려 친딸이 아니라는 소문만 무성했다. 그녀가 신하와 내통하여 낳은 딸이라며 귀족들과 영주들은 인정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자기들의 이권에 따라 이사벨 1세 공주와 엔리케 4세에게 줄을 서는 등,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기만 했다. 이를 이사벨 공주가 나서서 불을 껐다. “오빠가 살아있는 한 오빠의 폐위를 단호히 거부한다”고 공표를 하자 그제야  이복오빠이면서 국왕인 엔리케가 그녀를 기꺼이 궁으로 불러주었다.

때가 이르매 1474년 엔리케 4세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이사벨공주는 상복을 입은 채 말을 달려 단숨에 세고비아 성으로 갔다. 강력한 스페인을 위한 그녀의 기도는 이제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인가. 조용히 정치적 꿈을 키운 그녀이기에 엔리케가 정해논 후계자 후아나 공주의 세력에 한발 앞서 완벽하게 왕의 계승자로서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야 했다. 절벽 위의 세고비아 성은 이미 그녀가 점찍어 두었던 바, 여왕 등극의 때가 온 것이다. 즉 이사벨 1세로 여왕의 즉위식을 서둘러 끝냈다. 그리고 은밀히 이웃나라 아라곤의 후계자인 페르디난도 왕자에게 청혼을 했다. 그것은 곧 두 왕국의 연합을 의미한다. 동시에 역대 왕들이 주저했던 알함브라 궁전을 함락시키고 말겠다는 포부를 다졌다. 
                        
                                                                            - 다음호에 계속 -

                                                      / 신금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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