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 배경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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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술
  • 승인 2009.08.0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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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아케나텐과 아마르나 문화의 영향
▲ 황인술 교수     ©독서신문
[독서신문] 황인술 논설위원 =  아크나톤(akhnaton, 아케나텐, 아크헤나텐)
아케나텐(아멘호테프 4세)은 이집트 18왕조 중 제10대 왕(재위 bc 1379∼bc 1362)으로 아멘호테프 3세의 아들이다. 왕비는 네페르티티이다. 아멘호테프는 만족한 아문이라는 뜻으로 아문(amun)은 아몬(amon), 암몬(ammon)으로도 불리며 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이다.

아케나텐은 이집트의 파라오(신의 아들/국가 통치자)로 이집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종교개혁을 통해 이집트 전통 종교들을 단 하나의 신(一神論)인 아텐(태양신) 아래 통폐합하여 태양 상징 유일신 아텐(학자들은 이것을 유일신 신앙의 초기 형태로 생각한다)을 믿고 받들게 하였다. 하지만 하나의 신을 믿는다고 해서 일신론은 아니다. 이후 전국의 신전들이 폐쇄되고 기념비·무덤의 비문과 신상들을 파괴하여 아몬의 이름을 지웠다. 모든 예배는 왕, 왕비 그리고 아텐에게 집중되었으며 이로 인해 신이 하나냐 여럿이냐를 놓고 논쟁하는 가운데 이집트 신권정치(神權政治)는 흔들리게 된다. 왕은 명상에 빠지고 아텐 찬가의 제작과 예술 활동에 전념하였으나 왕이 생각한 이상적인 사회에 대해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튼 아케나텐의 종교개혁은 아문 제사장들의 정치적 기득권을 빼앗아 보다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왕이 된지 5년이 되던 해 아멘호테프 4세는 자신의 이름을 아케나텐으로 바꾼다. 아케나텐은 ‘여기 아텐에 봉사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그는 새로운 사제를 육성하고 수도를 테베에서 이집트 중부에 있는 아마르나로 옮긴다. 때문에 그의 시대를 ‘아마르나문화’라고 부른다. 아마르나에서 태양숭배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아름다운 아내 네페르티티와 생활했다. 그러나 아케나텐의 종교개혁은 이집트 사회를 통합하는데 실패하고 이집트는 그 후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가 죽은 후, 아문 신앙은 부활하였으며, 수도는 다시 테베로 옮겨졌다. 그러나 자연과 진실을 중시하는 아텐의 가르침은 사실적이고 명쾌한 성격의 아마르나 예술을 탄생시켰으며, 문학과 미술의 사실주의·자연주의 경향은 다음 시대에까지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아케나텐에 대한 평가
브레스테드는 ‘인류 최초의 개인적 인물’로 보았고,  토인비는 태양제의를 3세기 로마제국의 ‘sol invictus’의 원형, 프로이드는 ‘히브리 입법자의 멘토(mento)’, 그 외 평가로는 ‘그리스도의 선구자’, ‘위대한 신비주의자’ 등이 있다. 특히 레드포드는 유일신론자, 단일신론자, 통치자, 미학자, 평화주의자 등 다양한 호칭을 부여하고 있다.
 
아케나텐 통치와 혁명의 세 가지 특징
1) 세계 최초의 유일신론 등장과 태양신 아텐(aten)에 대한 독특한 숭배관

2) 그의 독자적인 통치이념을 구현할 영역으로서 아마르나 신도시 건설

3) 이 신도시를 중심으로 독창적인 예술양식을 산출
 
아케나텐 통치 내용에 대한 평가
아케나텐에 대한 평가로 웨이갈은 ‘이교적인 왕(heretic king)’이라 부르면서 인류역사 중 가장 ‘위대한 교사(a great teacher)’, 앤데스(r. anthes)는 ‘인간중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신에게로의 길을 연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보겔린(eric voegelin)도 아케나텐을 ‘인류 최초의 종교 개혁자’로 보고 인류역사상 ‘탁윌한 개인’ 혹은 ‘뛰어난 개성을 가진 인물’(dearly distinguishable as an individual, extraordinary personality of man)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아마르나 혁명은 정치적 종교적 혁명이었다고 정의한다.
 
신(神)에 대한 인식
1) 다신론(多神論) : 많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한 낱 미물(微物)에게서도 신성(神性)을 느낀다.

2) 범신론(汎神論) : 신(神)과 전우주(全宇宙)를 동일시하는 종교적·철학적 혹은 예술적인 사상체계로 도처(到處)에 신성(神性)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다.

3) 일신론(一神論) : 유일신 존재만을 인정하고, 그것을 만물 근원이라고 여기는 이론으로 모든 존재에 대한 근원(根源)으로 신성(神性)을 느낀다.
 
파라오(pharaoh)
파라오는 고대 이집트의 정치적·종교적 최고 통치자로서 ‘두 땅의 주인(lord of the two lands)’이라는 칭호와 ‘모든 사원의 수장(high priest of every temple)’이라는 칭호를 겸하고 있었다. 이 때 ‘두 땅의 주인’이란 파라오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 전체의 통치자라는 의미로, 파라오는 두 지역의 모든 토지에 대한 소유권, 법률집행권, 조세의 권리와 함께 두 지역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한편 ‘모든 신전의 수장’은 파라오가 지상에서 신을 대신한다는 의미로, 파라오는 제사의식을 주관하고 신전을 건설했다.
 
신권정치(神權政治, theocracy)
지배자가 신 또는 신의 대리인으로 간주되고, 절대적인 권력으로써 인민을 지배하는 정치체제로 신정정치(神政政治)라고도 한다.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력이 분리되지 않고 융합되어 있으며, 권력자의 명령은 곧 법이고, 피지배자의 외부적 행동뿐만 아니라 내면적 심정(心情)까지도 지배한다.
 
생각해보기
고대 왕국 이래 히로이즘(heroism)적 전통을 깨고 자연주의·사실주의의 정신을 도입한 것이 아마르나 예술의 특징이다. 신전건축에서는 신비적이고 어두운 다주실(多柱室)과 내진(內陣)이 없어지고 태양광선을 충분히 이용한 내정(內庭)·복도 등을 설치하는 새로운 설계가 채택되었다. 조각에도 새로운 수법이 보이며, 왕 자신의 상(像)이나 부조(浮彫)는 인간적인 나약성과 선병질적(腺病質的 : 이질적인 것들의 틈입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인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베를린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왕비 네페르티티의 흉상(胸像)의 얼굴은 우아하고 개성적이다. 회화에서는 전통적인 얼굴의 측면수법(側面手法)을 깨고 정면의 것과 자유스럽고 동적인 표현이 나타났다. 종교개혁은 1대에서 끝났으나 예술상의 새로운 작풍은 다음 시대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그것은 투탕카멘의 여러 유물에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아마르나문화는 문학과 미술의 사실주의·자연주의 경향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문학과 미술에서 사실주의·자연주의 경향과 이집트 문명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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