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자연스러움을 배워야
자연에서 자연스러움을 배워야
  • 조완호
  • 승인 2005.11.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완호 (한성디지털대 교수 · 계간 문학마을 발행인)

▲ 조완호     ©독서신문
 내면內面을 숙성시켜 스스로 평상심을 유지하기보다는 외면外面의 치장을 통해 심리적 불안을 극복하려 거의 안달을 부리는 것 같은 작금의 실태를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지만, 모든 물物의 본성이 어느 지경을 통과하고나면 비극悲劇적 상황을 향해 치닫는 열차와 다르지 않은 것이니 이를 어찌 인위적인 힘으로 어찌해볼 수 있겠는가.

 사실 미모나 젊음에 대한 집착은 허상虛像을 쫓는 일과 같은 것이니, 이미 지는 싸움에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는 사람의 경우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의 공통된 운명이다. 이른바 자연自然이라고 하는 것은 억지가 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지상의 모든 것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영역 안의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것이 일체만물, 즉 물의 속성임을 깨닫고 사사로운 것들에 집착하지 않는 것만이 어리석음에서 일탈할 수 있는 현명한 조치다.
 이것은 옛 사람들에게나 적용되는 삶의 지혜가 아니라 오늘에 더 필요한 삶의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오늘의 현실은 스스로 자신을 방비하고 지켜가지 않으면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런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자莊子는 “物之生也, 若驟若馳, 無動而不變, 无時而不移”라고 했는데, 이는 사물은 낳아 마치 뛰고 치달리듯이 움직이나 변치 않는 것이 없고 시시각각 돌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다, 라고 해석할 수 있는 내용으로 밖으로 드러난 일시적 속성에 집착하여 본질을 오도誤導하는 일을 경계하는 경구인 것이다.

 위衛나라 때, ‘미자하彌子瑕’라는 절세의 미인은 그 미모로 인해 영공靈公의 총애를 받았다. 위 영공은 자신의 수레를 너무나 아낀 나머지 임금의 수레를 사적私的인 용무로 쓰는 사람은 처벌을 하겠다고 공표를 했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미자하는 자신의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한 김에 임금의 수레를 타고 궁궐 밖을 나갔다 온 일이 있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임금은
“효성스럽도다. 어머니를 위하여 처벌을 무릅쓰고 수레를 사용하다니!”
라고 하며 오히려 미자하의 효심을 칭찬했다.
그 후, 임금을 모시고 산책을 하다가 잘 익은 복숭아 하나를 따서는 한 입 물어 먹어본 후, 맛이 제대로 들었다고 하며 먹던 것을 임금께 드렸다.
이것을 받아든 임금은,
“제가 먹던 복숭아를 내게 주는 것을 보니, 내 너의 정성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알겠구나” 하며 흡족해 했다.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미색美色이 다 시들자, 그녀에 대한 임금의 애정도 식은지라 이전과 같지 않았다. 
상황이 이럴 때, 그녀가 사소한 일로 임금의 비위를 거스르자 임금은 종전과는 달리 크게 화를 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이전에 감히 나의 수레를 타고 궁궐 문을 나선 일이 있고, 제가 먹던 복숭아를 나에게 먹게 한 일도 있다”며, 이를 죄목으로 하여 그를 처벌했다.
 위영공이 미자하를 사랑했던 것은 그녀의 지혜나 성품 등과 같이 성명性命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난 미모였기에, 그 미모가 퇴색된 이후에는 그런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본질적인 것이 아닌 세속적 속성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인至人의 경지에서는 자의恣意에 의한 미의 창출 자체를 부정하고 대신 탈속脫俗의 순박한 본성을 가치의 척도로 삼는다. 외모가 비록 아름다워도 그 본질이 아름답지 않으면 천하게 여기고, 반대로 외모가 비록 추악할지라도 그 본질이 아름다우면 이를 귀히 여긴다는 말이다. 이는 덕德을 개별적 존재의 본성으로 파악할 때만 가능할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장자는 ‘덕’을 정의해, “천지만물의 본체인 ‘도’로부터 개별적 사물에 전개되어 있는 개체의 본성”이라고 했다. 또 그는 ‘탈속’을 속된 성품에서 일탈하여, 선한 인간의 본성을 회복復其初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자연의 본성과의 합일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경지라고 했다. 이는 심물 합일의 경지로 이른바 ‘물아物我’를 말하는 것이다.
 한때 천하를 흔들 정도로 위세를 떨치던 사람들도 얼마 있다 보면 뒷방늙은이로 전락해 추물醜物로 폐기처분 되어 있는 꼴을 보게 된다. 모두 자연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탓이다. 남의 이런 꼴을 보고도 그 길을 가는 것은 불을 지고 기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더 어리석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독서신문 1374호 [2005.01.0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