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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필자는 서예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기실 나의 문학생활은 그곳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그곳에서 한시를 읽히고 문학과 서예를 배웠다. 그때 필자에게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신 분이 樂汕선생님이다. 몇 년 전 가을 樂汕선생님께서 글을 쓰라고 만년필을 선물로 주셨다.
글을 쓰려면 돌려서 빼야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잡아 빼면 편리하고 빨리 쓸 수 있는 데 쓸 때마다 돌려야 하니 좀 불편한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안 쓰고 생각을 하노라면 잉크가 말라버려서 다른 곳에다 그어 보고 쓰거나 흔들어야 나온다. 선물을 받은 것은 좋은데 이 물건이 바쁜 내 일상과는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방에 넣어두고는 매일 들고만 다니고 있었다. 얼마 후 선생님을 만나 차 한 잔을 마시게 되었다.
“요즘 글 좀 쓰고 있나? 왜 글 안 써?” 하신다.
“아, 그. 저…… 바쁘고 그러네요. 그리고 머릿속엔 많은데 정리가 안 되고 그래서 세월만 가고 그렇습니다” 하니 “바쁘니까 좋은 거지. 그런데 매일 그렇게 바쁘게 사니까 내가 돌려서 빼는 만년필로 선물한 거야” 하신다.
만년필과 함께 온 검정색 잉크를 넣으면서 천천히 돌리다 보니 추사 김정희의 독필(禿筆)이 떠올랐다. 붓을 쓸 때는 글을 살리거나 죽이기도 하고 또 그윽하게 숨기는 비법도 있는데 그것은 봉의 운행을 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하는데서 그 묘미가 난다. 먹의 농담은 글자의 피와 살이 되므로 힘을 쓰는 것은 붓 끝에 있다. 그래서 온전한 중봉을 이루는 데만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앞으로 10년이면 저 붓에서 울려오는 진동이, 나의 의지 저 너머에서 오로라처럼 장막을 치고 있는 진동이 나를 넘어 중봉의 꽃이 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손에 꼭 맞는 특별한 붓이 있는 것처럼 많은 일을 벌이며 정신없이 열정만 앞선 내게 꼭 필요한 일상을 돌아볼 여유를 담아 보낸 만년필. 오늘도 소리 없이 한쪽 벽면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붓을 바라보며 이 만년필의 돌림나사가 무뎌지는 그날이 기다려진다.
/ 황보현 수필가<한국예술가 애장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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