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 역사 속으로…
'바보 노무현' 역사 속으로…
  • 독서신문
  • 승인 2009.05.2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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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과 인생
 
 노 전 대통령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인권 변호사, 대통령에 이르는 그야말로 극적인 삶을 살아간 인물로 남을 전망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그만의 '원칙'과 지역주의에 항거했다가 번번이 좌절한 '소신'을 무기로 최고 권좌에 올랐지만 퇴임 후 짧았던 삶은 불행했던 전직 대통령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초라했다.
 
 정치개혁을 외치며 현실정치의 벽과 온몸으로 맞섰지만 역설적이게도 '깨끗한 정치'를 향한 부르짖음은 그의 명예를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참담한 마지막 길을 걷게 한 족쇄가 됐다.
인권 변호사로 부산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대통령에 당선돼 재임할 때까지 그는 늘 한국정치의 이단아였다.
 
 호남에 지역기반을 둔 민주당의 영남 출신 대선후보, 국회 탄핵소추안이 의결되고 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 헌정사상 첫 대통령 등 그의 정치역정은 그야말로 파격과 기록, 그 자체였다.
 
 그래서 세간에서 불리는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칭이 늘 따라붙었고 또한 친숙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46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3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지독했던 가난 때문에 부산상고에 진학한 노 전 대통령은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판사를 거쳐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1년 부림사건 변론 이후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우조선 노사 분규 때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될 만큼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듬해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권유로 13대 총선에 나서 5공 실세였던 허삼수 후보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정계에 입문했다.
 
 노 전 대통령은 88년 5공 청문회 스타로 부각되면서 대중 정치인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 힘있는 증인들을 정연한 논리와 송곳 질문으로 몰아세워 tv를 시청하던 국민을 열광시키면서 '청문회 스타'가 된 것.
 
 그러나 이후 정치인으로서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90년 1월 3당 합당 때 김영삼 총재의 손을 뿌리치고 합류를 거부한 뒤 지역주의의 벽에 막혀 낙선을 거듭하는 등 비주류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동시에 영남 출신임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뜻을 함께한 그의 '소신'은 대통령의 길로 이끈 최대의 정치적 자산이 됐다.
 
 98년 보선에서 '김대중 깃발' 아래 종로에 도전, 금배지를 달았지만 2000년 총선에서 지역주의 극복을 내세워 고향 부산에 내려갔다가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에게 고배를 들었다. 하지만 이 선거는 '대통령 노무현'을 있게 한 소중한 패배였다.
 
 그의 무모함은 '바보 노무현'이란 이름으로 인터넷을 타고 대중, 특히 영.호남 지역주의에 지친 표심을 파고들면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바람과 2002년 대선을 휘감은 '노풍'을 일으킨 기폭제가 됐다.
 
 노풍의 진원은 호남이었다. 민주당 대선후보 광주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고, 이는 '이인제 대세론'을 함몰시키면서 전라도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경상도 출신 후보로 나서는 발판으로 작용했다.
 
 그는 대선날 새벽 국민통합 21 정몽준 대표가 후보단일화를 철회했지만 마지막 순간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정면돌파를 택했고, 정치 인생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그 특유의 승부수는 청와대 입성의 '기적'을 이뤄냈다.
 
 '정치인 노무현'의 승부사적 기질은 대통령 재임 중에도 옛 정치의 반동에 맞서며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2004년 3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여소야대 구도에서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 등 선거법 위반 혐의를 걸어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지만, 되레 메가톤급 역풍을 불렀고, 결국 제3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의회 독주에 제동을 걸며 과반을 차지하는 제2의 기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격정적이고 급진적이라는 이미지가 임기 내내 걸림돌로 작용했고, 대연정 제안을 비롯한 잇따른 정치 실험과 파격적인 발언도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남북 화해협력 관계 정립에 매진, 8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한 것이 대북관계에서 큰 업적으로 남았다.
 
 퇴임 후엔 고향에 내려가 '성공한 전직 대통령'이 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박연차 게이트'에 휘말려 난관에 봉착했다.
 
 특히 친형 건평 씨가 구속되고 가족들까지 수사대상에 올라 마지막 자산이었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다.

 풍운의 정치인, 노 전 대통령은 오늘(23일) 새벽 고향 마을 뒷산에서 스스로 몸을 던짐으로써 63년의 파란 만장했던 삶을 비극으로 마무리했다.

<양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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