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장품]내 書架의 체크포인트, 時調創作法
[나의 애장품]내 書架의 체크포인트, 時調創作法
  • 최오균
  • 승인 2009.05.11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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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창작법(중앙일보)     © 독서신문

 
1966년 5월 나는 군에서 제대를 한 후 한동안 공백 기간을 갖은 적이 있었다. 향후 진로 결정 위해 정리해야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나는 태연자약하게 도하 일간 신문기사를 정독하는 즐거움을 맛보았는데, 그때 창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는 아직도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있다. 당시 여러 가지 기획사업 가운데 민족시가인 시조 중흥을 제창한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나의 직장 생활은 바로 시작되었고, 이른바 ‘별보기 운동’에 돌입해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고, 일요일도 격주로 쉬어야하는 강행군이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 시작활동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새마을 운동기간을 거치고, ‘서울의 봄’ 이 지나가도록 오로지 생산과 수출, 일 일에 파묻혀 살았다. 그러면서도 시조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가 없었던지 중앙일보사에서 발행한 문고판 중앙신서 가운데 ‘시조 창작법’이란 책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이 불씨가 될 줄은 그땐 몰랐다.
  
新羅 鄕歌에서부터 뿌리내려온 유구천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정신의 本鄕인 民族詩歌,  흐름[流]이 있고 굽이[曲] 있고 마디[節]가 있고 풀림[解]이 있는 淵源 깊은 민족의 內在律로 민족정신의 바탕을 찾는 우리 고유의 노래, 時調.  3章 6句에 갈무리되어 있는 時調의 作法을 비롯, 古時調 현대시조 등을, 40여년 時調와 더불어 생활해온 필자의 해박한 해설로 풀이해준 時調의 本流. - 1981년 정완영 편저, 중앙일보사 발행 ‘시조창작법’ 신간안내문 -
 
그 후 여러 차례 이사를 다녔지만, 그때마다 이 책은 꼭 챙겼다. 책이 작아서 까딱하면 다른 책 사이에 휩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항상 가운데에 꼽게 되었다. 다른 책과 나란히 꽂아 놓으면 항상 책꽂이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표시가 났다. 그게 오히려 이 책을 오래 간직하게 된 체크포인트가 된 셈이다. 두꺼운 책이나 하드 양장본 등은 아무데나 놔둬도 잘 찾을 수 있었지만, 이 책은 언젠가는 요긴하게 쓸 것으로 알았는지 서가의 맨 윗줄 가운데에 자리매김하는 버릇이 생긴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나는 회사에서 신입사원 면접을 하면서 시인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시조시인이라고 했다. 입사 이래 수 십 년간 일을 같이한 동료는 대부분 이공계출신 아니면 경영학 계열이었지 문과 계열은 무척 드문 편이었다. 나는 품질관리 부서에 배치된 시인사원과 자주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간 깊이 묻어 두었던 문학에의 꿈을 다시 펼칠 실마리를 찾으려 그리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그에게 보여준 게 바로 이 책이었다. 그는 시작활동과 등단은 어떻게 하는지 현실적인 안내를 내게 해줬다. 그리고는 전공을 살려야겠다며 교직으로 돌아갔다. 

나 홀로 틈나는 대로 이 책을 읽고 또 습작을 해봤다. 당시에는 누구를 찾아가 지도받을 생각을 못했다. 요즈음 다시 읽어도 옷깃을 여미게 하는 대목, 포시법(捕詩法)은 언제나 카랑카랑한 죽비(竹篦)소리를 내며 나를 다그치는 역할을 해주었다.

짐승이나 어별(魚鼈)을 잡는데도 그 포획법(捕獲法)이 따로 있다. 가사 호랑이나 곰이나 멧돼지를 잡는 데는 이놈들이 잘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앉았다가 무심코 어슬렁이며 나타난 놈에게 일발필중(一發必中)의 포화를 쏘아 적중시켜야 명포수라 할 것이다. --중략--
바늘못 하나로 나비나 잠자리의 등을 찔러 꼼짝없이 표본실의 함속에 꽂아 놓듯이, 시인에겐 은바늘[敵中語] 한 개만 가지고도 숨통을 찔러 지구의 자전까지를 멎게 하는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 ‘시조창작법’ 중 포시법 부분 -

 
시작(詩作)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책들을 섭렵하면서도 이 책은 늘 그 중심에 있었다. 묵직하고 우람한 책들이 탑신에 해당한다면 작고 낡아버린 이 책은 그대로 하나의 사리함이라 할만하다.  일 년여의 기간에 두 차례의 추천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은바늘을 찾기 위한 탐사의 길은 항상 진행형이다.

얼마 전 원로시인 백수 정완영 선생님의 시창작 강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지니고 갔던 이 책을 선생님께 넌지시 보여드렸다.
 “아! 이거……참 오랜만이네” 하면서 반색하셨다. 지인을 만난 듯 어루만지며 대견해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르치심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뉘우치면서, 답답할 때마다 펼쳐보며 시창작의 길잡이로 삼고 있는 책이다.

/ 최오균 시인 <한국예술가 애장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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