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돌판도 그에겐 가슴 저리는 사랑의 편지다”
“평범한 돌판도 그에겐 가슴 저리는 사랑의 편지다”
  • 안재동
  • 승인 2009.05.1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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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작가 이재원의『千年의 香氣 편지로 남다』
▲ 이재원 작가     © 독서신문
타인의 일이지만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 자신의 이야기지만 타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 그 중 가장 가슴 저리게 하거나 애태우는 것. 그것은 아마도 ‘사랑’ 아닐까 한다. ‘사랑’이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우리네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공통분모이기도 할지니.

그런데, 몇 년도 아니고, 수십 년도 아니고, 무려 수백 년, 더 나아가 천 년의 세월동안이나 이어 온 그런 사랑이야기가 있다면…. 그래서 그 뒤안길에 숨은 절절한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좀 소상히 들어볼 수 있다면…. 어쩌면 동화와도 같고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피부로 생생히 느껴볼 수 있다면…. 

실제로, 수백여 년 전, 더 오래는 천 년 가까운 옛날에 있었던 연인 간의 또는 가족 간의 사랑 이야기를 사실에 입각해 당시 상황을 흥미롭게 재현해낸 책이 나왔다. 『千年의 香氣 편지로 남다』(도서출판 답게 刊)가 바로 그 것. kbs 춘천방송총국의 총무팀장을 맡고 있는 이재원 씨가 오랜 기간 준비 끝에 펴낸 역저(力著)다.

이 책의 키워드는 ‘편지’이다. 저자는 화제(話題)의 대상을 독자에게 풀어내기 위한 도구로 ‘편지’를 사용한다. 관련 이야기들이 생생하면서도 논리적이다. 흥미도 진진하다. 고서(문집)를 비롯해 인용 문헌과 사진 등 자료들이 풍부하게 동원되어 사실성(事實性)이 짙다. 고전(古典) 해설서에 가까우리만큼 전문적이기도 하며, 사랑의 감성도 전편에 넘쳐흐른다. 그래서인지 초판을 낸 지 불과 몇 달 만에 3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 밤비에 새잎 나거든 / 나인가도 여기소서 커다란 바위를 품어 산이 되는 껴안음은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연문(戀文)일 수도 있다. 이 문장에 더할 수 있는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 이 짧은 문장에서 뺄 수 있는 내용은 더더욱 없다. - 「피 같은 사랑 - 기생 홍낭과 고죽 최경창」 중에서

저자는 300여 쪽에 이르는 이 책에서, 기생 ‘홍낭’과 선비 ‘고죽 최경창’ 사이의 헌신적 사랑을 「피 같은 사랑」으로, ‘원’이란 아이의 어머니가 그 지아비에게 전하는 애틋한 사랑을 「사모곡(思慕曲)」으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가족 간에 펼쳐진 교훈적 사랑을 「가족 사랑」으로, ‘김지수’란 사람이 그의 사돈댁에 갖은 정성과 예를 갖추며 보낸 편지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딸자식 사랑 이야기를 「끝없는 사랑」으로, ‘최루백’이란 사람이 그의 아내 ‘엄경애’의 묘비명에 남긴 뜨거운 사랑의 기록을 「낡은 돌판 위의 편지」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가 보여주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랑의 소통을 「사제의 情」으로 각각 흥미롭고도 생생하게 정리하고 있다.

다산은 아버지의 빈자리로 인해 아들들이 학문을 게을리 할세라, 그릇될세라, 남에게 주눅 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자식들을 훈계하고 다독거리면서 엄격한 가르침이 녹아 있는 편지를 보냈다.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정과 사랑이 담긴 한마디 한마디는 단순한 가족 사랑의 원상회복을 뛰어넘어 정신적 심리적으로도 한 단계 성숙시키는 좋은 약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귀양살이 중임에도 편지로 집안을 다스리고 챙기는 가르침이 참으로 아름답고 크다. 스승으로 삼기에 충분한 모습이다. - 「가족사랑 -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중에서

저자는 책머리에 부친 「책을 내며」에서, ‘빨간 우체통이 있는 동네에서 살고 싶다’를 제목으로 걸고, “사랑이 슬프면 영혼이 아프다. 빨간 우체통이 있는 동네에서 살고 싶다.”를 끝말로 적고 있다. 그만의 짙은 감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또 “수백 수천 년 뒤에도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으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 편지다. 편지가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이유는 글쓴이의 마음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느낄 수 있고, 말로는 다 담아내지 못하는 심연의 언어들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항상 사용하는 말에는 없는 지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편지의 가장 큰 덕목이다.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편지만 한 것이 없다.”고 편지의 장점과 개성을 역설한다.

이재원 작가는 860여 년 전 ‘최루백’이란 사람이 ‘경애’란 이름을 지닌 그의 아내의 묘비명에서도 애틋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내 아내의 이름은 경애(境愛)다.’라고 시작하는 돌판에 새겨진 글을 보고, “최루백은 졸지에 아내를 잃은 슬픔을 두 손으로 받아 내고 있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훔치고 있는 것이다. 권세 있는 집안의 딸인데 자신에게 시집와서 고생만 하고 마흔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부인을 생각하며 애절하게 써 내려간 편지는 아내의 이름을 시작으로 한 고려시대의 여인이 접시꽃 당신으로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죽은 아내에게 자신의 슬픔을 전하려는 남편의 몸부림이 아름답다.”라고 풀이한다.

놀라운 투시(透視)와 이해력이 아닐 수 없다. 보통사람들에겐 그저 평범하기만 한 존재일 수 있는 돌판. 그러나 그에겐 가슴 저리는 사랑의 ‘편지’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듯, 문헌이면 문헌, 묘비명이면 묘비명, 그 속에 담긴 내용들이 이재원 작가의 눈에 닿자마자 금세 반짝거리는 ‘편지’로 치환되곤 한 것이다.

오늘날엔 그저 평범한 사실에 불과하겠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이 발표될 때까지만 해도 ‘뉴턴’이 아니고선 아무도 그것을 발견해내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렇듯, 이재원 작가만의 특출한 관찰력과 발군의 식견이 아니었으면 이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책 한 권 『천년의 향기 편지로 남다』도 세상 빛을 보지 못했으리라.

/ 안재동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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