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대의 선비풍류
경포대의 선비풍류
  • 신금자
  • 승인 2006.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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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자[수필가]
 


 경포대는 산중턱에 날아갈 듯 당실하게 얹혔다.
경포호수를 건너는 강문다리, 백사장을 따라 멀리 동해 해돋이까지 볼 수가 있다. 이 곳은 혹, 나그네의 시름을 읽고 시상(詩想)을 일으키게도 하지만 제 아무리 낚아채도 그대로인 못 속의 달처럼 동요가 없기를 더 바란다.
 그러니 해변에 파도가 와 닿으면 먼 바다에 높새바람이 불 것이라는 것과 경포호수에 오종종 점으로 일렁이는 것이 청둥오리거나 쇠기러기라는 것 정도만 안다. 그저 멀리 내다보는 빛이 경계를 놓쳐 은은할수록 좋다. 무언가를 애써 말하려하면 사라져버릴 때가 있다. 분명 있기는 한데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시상(詩想)일 것이다. 그 정도로 족하다. 우리가 자연에게 어찌 따지며 선을 긋겠는가. 자, 오늘 하루 선비가 되어 보는 것이다. 이슬을 걷으며 떠오는 해와 붉은 노을이 말을 걸어올 것이기에 사뭇 설렌다. 어쩜, 바다도 모처럼 들바람 맞을 채비를 하나보다. 흑백의 농담만으로 눈길을 끄는 ‘겸재’의 동양화처럼 고요하다.
 예로부터 경포호에서 맛보는 달은 다섯이라는데 눈을 감고 그려보니 취한다. 구름사이로 나타난 하늘의 달, 바다 위에 비친달, 하뿔사, 호수에 빠진달, 초저녁 선비가 경포대에 오를 때 허리춤에 꿰찼던 호리병에서 술잔으로 퐁당 빠진달, 그 달을 보고 놀라 동그래진 임의 맑은 눈동자에 비친 달이 정녕 그렇다. 이왕 선비가 되어보기로 했으니 품위유지를 해야겠다.
 강원도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면 절경이 많다. 그 아름다운 경치를 가장 여러 각도로 조망할 수 있는 지점에 정자(亭子)를 지었다. 그 정자가 어가(御駕)를 멈추게도 하였고 시인 묵객들은 시절을 읊고 쉬어갔다.
 그런데 이 정자도 이름이 여럿 있었다. 루, 대, 정으로 나뉘는데 쓰임에 따라 멋과 운치를 달리 하였다. 반드시 그렇다는 규정은 없으나 제작기법에서 은밀히 구별해 놓았다. 배경과 위치 그리고 정자에서 바라볼 경치를 가장 많이 배려했다.
 경포대, 낙성대, 의상대 등 ‘대’는 자연지형이 높은 해안가 절벽 위나 지대를 높여서 그 위에 동두럿히 정자를 올려놓았다. 이와 비슷한 형태가 ‘루’였다. 누는 정자 위에 다락을 올린 2층 누각으로 누구나 고고하게 펼친 지붕 아래로 들고 싶어진다. 촉석루, 광한루, 경회루 등이 그러하다. 이는 평면적 경치를 즐기기보다 먼 곳의 풍경까지 감상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러나 ‘정’은 자연 그대로 볼 수 있게 했다. 가까운 곳의 경물을 내다보거나 끌어들여 여럿이서 담소하기에도 좋다. 자연, 터가 좋아야 한다. 주로 관이나 저택, 궁궐 안에다 지어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다. 초간정, 백화정, 백운정 등 무수히 많지만 갤러리나 정원의 운치를 더하기위해 요즘도 더러 짓는다.
 중요한 사실은 모두 안팎 개념이 없는 열린 공간이다. 오롯이 지붕과 기둥만 있는 형태로 문이나 벽이 없다. 이는 자연의 풍광을 맘껏 즐기자는 의도로 해석된다. 반대로 적절히 경계하여 방종을 부르지 않으려는 뜻도 있었으리라. 만약 막힌 공간이었다면 비밀스럽고 다소 어려운 곳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하였을 터이다. 우리선조들의 지혜는 삼복더위에도 모시바람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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