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vs영화 - 『용의자 X의 헌신』
소설vs영화 - 『용의자 X의 헌신』
  • 독서신문
  • 승인 2009.04.1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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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순수한 욕망을 추리소설로 담아내
▲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의 포스터(왼쪽), 소설『용의자 x의 헌신』표지(오른쪽)     © 이뉴스투데이

일본 최고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영화화
선입견의 맹점을 찌르는 반전과 낭만코드 어우러져
 
일본 최고의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이 영화화됐다.

알아볼 수 없게 얼굴이 뭉게지고 손발의 지문이 모두 불타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일대의 소동이 일어난다. 단서는 타다만 피해자의 옷가지와 피해자의 지문이 찍힌 자전거 뿐. 사망자가 ‘도미가시 신지’임이 판명 되자, 형사들은 유력한 용의자로 피해자의 전처인 ‘하나오카 야스코’를 지목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은 ‘야스코’의 알리바이를 깨기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사들. 도미가시 신지가 죽기 며칠전 야스코의 가게를 물어봤다는 점과 그녀의 알리바이가 너무 완벽하다는 점이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추리나 직감만으로 범인을 단정할 수가 없는 법. 형사들이 원하는 것은 이 완벽한 알리바이를 깨고 정확한 증거를 잡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의심 하면 할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그녀의 알리바이는 수사를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결국 수사의 한계에 부딪힌 형사들은 ‘갈릴레오’라 불리는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데…. 과연 그는 이 완벽한 알리바이가 깰 수 있을까?
 


 
일본 최고 권위의 나오키상 수상은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 자신의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는 『용의자 x의 헌신』은 출판이후 일본 뿐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몰고 왔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간결한 문체로 인간의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이 작품은 작가의 뛰어난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문장 곳곳에 숨겨져 있는 사건의 실마리가 하나씩 풀릴때마다 선입견에 갇혀 진실을 보지 못하는 ‘나’를 보게 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일본 추리소설에서 흔히 보여지는 잔혹함이나 엽기적인 요소보다는 '사랑'과 '헌신'이라는 낭만적인 코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돈 때문에 전처에게 집착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뒤틀린 욕망을 가진 도미가시 신지와 같은 인간도 나오지만 한 여자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이시가미와 믿음직스러운 남자 구도, 친구를 지키고 싶은 유카와 같은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등장인물이 주를 이룬다.

이 소설을 접한 독자들이 『용의자 x의 헌신』을 추리소설이기보다는 추리소설의 형체를 띤 연애소설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설을 번역한 양억관씨는 『용의자 x의 헌신』을  ‘순수’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시가미’의 수학을 향한 순수한 열정, ‘야스코’를 향한 순수한 사랑, ‘유가와’의 친구에 대한 순수한 우정. 이 모든 순수는 눈부시도록 깨끗하기에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상징한다. 이 작품은 이시가미가 자신의 순수한 사랑을 완전하게 지키기위해 추악한 댓가를 치루는 모습을 통해 순수를 향한 열망으로 인해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시가미가 사건의 진실에 근접한 유가와에게 “그 문제를 풀어도 아무도 행복하지 않아. 이제 그 문제를 잊어줘”라고 부탁할 때, 유가와가 수긍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시가미의 순수한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고 유가와가 '야스코'에게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이유도 이시가미를 향한 순수한 우정때문이다.



 
소설에서 이시가미는 뚱뚱하고 머리숱 없고 눈 작은 정말 매력없는 중년 아저씨로 묘사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전직 아이돌 그룹 멤버이자 <런치의 여왕>, <플라이 대디 플라이>에 출연했던 ‘츠츠미 신이치’가 무표정한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 역으로 분했다. 이시가미역을 하기에는 츠츠미 신이치가 너무 매력적이라는 평도 있었지만 머리 일부를 백발로 염색하고, 어눌한 말투와 무표정한 얼굴, 눈빛 연기 등을 통해 새로운 이시가미를 탄생시켰다.

영화 속 이시가미는 소위 ‘왕따 선생’으로 묘사된다. 교무실에서도 다른 선생들과 떨어져 점심도 혼자먹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아무도 수업을 안듣고 떠드는데도 뭐라고 하지도 않고, 칠판만보며 수학문제를 푸는 왕따 선생.

그에 반해 소설 속 이시가미는 훨씬 인간적이며 훌륭한 선생이다. “수학은 필요없다. 미적분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시간 낭비다”라며 수업시간에 이시가미를 향해 도전적으로 말하는 학생에게 그는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그 학생이 평소 좋아하는 ‘오토바이 레이스’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그러면서 버릇없는 그 학생에게 기분 나빠하는게 아니라, 그래도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묻는 학생은 났다며 그런 학생에게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거나 그런 학생의 질문을 귀찮아하는 선생들을 질타한다.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구사나기와 기시야(영화에선 우츠미)라는 두 형사에 있다. 소설에서는 유가와의 친구이자 선배형사인 ‘구사나기’의 비중이 크다. 비록 유가와의 도움으로 사건의 진실을 알게되지만 야스코와 이시가미를 의심하며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것도, 친구를 위해 침묵을 지키려는 유가와를 추궁하는 것도 구사나기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구사나기보다 기시야의 비중이 크다. 소설 속 구사나기의 역할을 후배형사인 기시야가 한다. 더군다나 소설속 남형사인 기시야가 여형사 ‘우츠미 카오루’로 탈바꿈한다. <메종 드 히미코>, <일본침몰>, <소림소녀>등에서 활약한 ‘사바사키 코우’가 우츠미 역을 맡았기에 그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형사를 등장시킨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논리보다 형사의 직감을 우선시 하는 열혈 형사’라는 문구를 내걸어 영화에서 뭔가를 보여줄 것 같이 잔뜩 기대하게 해놓고는 막상 영화에서 사건 해결은커녕 선배형사에게 구박만 받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남자들뿐인 강력 형사부에 유일한 여형사인 그녀는 사건 회의때 차나 타는 무기력하고 힘없는 인물이다.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채 시종일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유가와의 추리를 경청하는 우츠미. x파일의 스칼릿 요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신참형사답게 좌충우돌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역 정도는 해줘야하지 않았을까.

흡사 <데스노트>의 천재 대학생 ‘야가미 라이토’와 명탐정 ‘l’의 두뇌 대결을 보는 듯한 이시가미와 유가와. 두 천재들의 대결을 극대화하기 위해 야스코의 딸 ‘미나토’나 ‘구도 구니아키’ 등의 비중을 소설에비해 축소하긴 했지만 비교적 원작에 충실했으며, 나아가 원작에 없는 새로운 요소(첫 장면에 나오는 실험 씬과 눈 덮인 산에 오르며 엎치락 뒷치락 신경전을 벌이는 이시가미와 유가와의 모습)까지 첨가해 영화의 재미와 극적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는 평이다.
 
'전편만한 속편이 없다'는 영화계의 속설처럼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중에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를 찾기란 쉽지 않다. '소설 대 영화' 기사를 준비할때마다 느끼는 것은 "소설을 먼저 읽을 껄"하는 후회다. 영화라는 시각적인 매체를 통해 이미 이미지를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소설이 잘 읽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다. 소설을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먼저 접한 독자들이라면 분명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양미영 기자> myyang@enew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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