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제와 기청제
기우제와 기청제
  • 신금자
  • 승인 2006.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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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자[수필가]



고대 인도신화에 나오는 아수라왕은 호전적인 성품 때문에 툭하면 싸움을 벌였다. 그래서 아수라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싸움이 끊이질 않았으며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 마당을 의미하는 장(場)을 붙여서 아수라장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단다. 즉, 아수라장은 항상 고통과 불안을 주는 싸움이 있을 뿐, 평화와 공존의 의미를 상실한 곳이다.
 많은 비가 내렸다. 아수라왕이라도 다녀간 것인가. 중국대륙을 거쳐서 북한, 그리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 비를 퍼부어 물난리를 안겼다. 가난한 살림이지만 소중하게 붙들고 살던 터전을 삽시간에 쓸어버렸으니 점령군이 따로 없다. 실로 우매한 사람들의 평화를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또 내일 당장 중국을 지나갈 태풍의 영향으로 한반도엔 많은 비가 올 것이란 예보다. 엊그제도 태풍이 지나간 후 중부지방에 머물던 많은 수증기가 비구름을 이끌어 폭우로 변했다. 이에 장마전선이 가세해 전국의 강과 댐이 범람할 위기로 주변 사람들은 뜬 눈으로 지새고 저지대 침수지역은 대피하기도 했다. 속담에 3년 가뭄은 견뎌도 한 달 홍수는 못 견딘다했던가.
 옛날 왕조시대였으면 연거푸 기청제(祈晴祭)를 올려야할 판이다. 장마가 그치고 날씨가 맑아지기를 기원하는 기청제의 의식은 가뭄에 드리던 기우제(祈雨祭)와 비슷했다. 주로 장마철인 7,8월 이후에도 계속 비가 내려 흉년이 예상될 때 지냈다. 왕 이하 당상관들이 4대문에서 먼저 지내고 그 밖의 명산 등에서도 행했다. 그래도 효험이 없으면 사직과 종묘, 성문에서 영제(?祭)를 지내고 경내의 산천에서 만인들이 기도하도록 했다한다.  
 오로지 농경이 생업이었던 시대에 물은 필수적인 것이고 이 물의 원천이 비를 통해서만 이뤄졌으니 기실 ‘비’라는 존재를 단순히 자연현상이 아닌 신에 의해 주관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던 듯하다. 전통문화 뿐 아니라 건국신화에도 왕권이 물과 긴밀히 연계되어 나타난다. 단군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올 때도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왔다. 이들 모두 비를 함의하고 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도 경쟁국인 비류국의 송양왕을 물리치기 위해 기우제를 지냈다. 송양왕의 도읍이 홍수에 잠기자 주몽에게 항복하는 신화가 ‘동명왕편’에 전한다. 이같이 우리 역사의 개국시조인 단군을 비롯한 삼국시대 왕들이 대부분 불가분의 인연으로 물을 관장하면서 신을 대행하거나 위업을 이루어 나간다. 물이 가장 현실적인 삶의 근원이자 기원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제왕들은 가뭄과 홍수로 하늘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혹은 기청제를 통해 백성들의 염원을 전해야했다. 더불어 가뭄과 홍수는 통치자들의 잘못에 대한 하늘의 징벌이라 여겼다. 그 원인을 자신들의 부덕함과 정치에서 찾았다. 다시금 억울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여주고 객사한 시체를 거두어 묻어주고 가축도살을 금지하고 왕의 식찬 가짓수를 줄이고 때론 단식을 하며 종묘에서 기우제를 드렸다한다.
 
 아무렴, 우리는 전적으로 물의 지배를 받지만 물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천재의 수준이라도 우리는 물이 변한 비를 원망할 수 없다. 우리도 이 자연의 일부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적응해서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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