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로이(표광배)
피츠로이(표광배)
  • 표광배
  • 승인 2008.10.1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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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신인문학당선작 - 소설부문
1.
멀리 정박해 있는 비글호가 보였다.
큰 바다의 커다란 풍랑을 많이 경험한 중견 전함이었다. 아직 건장해 보이는 선체를 따라 벨트 액세서리를 연상케 하는 포신(砲身)들이 인상적이었다. 다리통 두께의 묵직한 밧줄들이 돛과 선체를 연결시켰고 닻과 연결된 육중한 쇠사슬은 다시는 끌어올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저 배는 장장 몇 년 동안 지내야 할 내 집이었다.
선원들은 분주했다. 식량과 물 그리고 필요한 군수품 등을 배에 싣고 있었다. 선원들은 전함을 움직여야하는 군인이기도 했다. 근해를 도는 항해가 아니었다. 지구를 돌아야 하는 만큼 배에 실리는 식재료 등을 포함한 물품은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정적인 존재들이 있었다. 소위 장교로 불리는 그들은 갑판에 모여 중요한 논의를 하는 듯 엄숙한 표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원양항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적국 함정과의 교전일까? 아니면 집채만 한 파도일까? 하지만 그것들은 분명 아니라고 했다. 기약할 수 없는 일정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파도뿐이다. 선원들의 불만은 쌓이고 결국은 그것이 폭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선내폭동, 그것이 원양의 항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바다 한 가운데서는 장교의 명령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다.
나의 이름은 찰스 로버트 다윈으로 당년 22살이다.1)
난 에딘버러 대학에서 수학했다. 이번 여행은 캠브리지대학의 식물학자인 j. 핸슬로우 교수님의 도움으로 성사되었다. 덕분에 해군 측량선 비이글호의 함장인 피츠로이와 만날 수 있었다. 한 달 전 나는 영국 왕 찰스 2세와 혈통이 같은 26살의 귀족청년을 처음 만났다. 말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말을 자제하도록 교육을 받은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가끔 던지는 그의 말은 깊은 숙고 뒤에 조심스럽게 이뤄졌고 그것은 일종의 절도(節度)처럼 느껴졌다.
“내 배는 남아메리카 해안선과 도서지역을 측량하고 세계일주 항로의 경도측정사업을 맡아서 할 것이요. 당신은 함장의 동반자로서 함께 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단순한 일 같지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장기간의 항해는 사람을 병들게 하거든요. 지루함은 조울증과 같은 정신증을 만들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의 삶을 지속하기 힘든 법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하겠소.”
그는 보통의 다른 귀족들처럼 보수정당인 토리당의 지지자였다. 그는 토리당이 변질되는 것을 슬퍼하는 것 같았다. 당내 개혁을 주장하였던 조지 캐닝이 1827년 병사한 사건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하느님의 뜻입니다.”
조지 캐닝은 토리당 우파대표인 육군 장관 r.s. 캐슬레이와 대립하면서 빈체제에 반대했고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정책을 폈으며 많은 나라의 독립을 도왔던 인물이었다. 빈체제란 자유주의나 민족주의에 반하여 절대왕정으로 돌아가려는 귀족들의 모임이었다. 피츠로이의 입장에서 캐닝의 죽음은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보수 쪽으로의 편향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병적인 속물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교회의 눈치를 보는 기득권의 과학자들은 변화를 생각하는 젊은 과학자의 생각을 밟기 마련이다. 이러한 학풍이 존재하는 한 학문적 성과는 쉽게 얻어지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 자신들이 천 년 이상이나 누려왔던 권위와 유전이 과학으로 인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운 것이다. 교회의 개입은 단지 학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경건하면서도 보수적인 전쟁 영웅 웰링턴이 자신들을 잘 지켜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캐닝은 죽었으면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토리당의 캐닝 추종자들과 진보당인 휘그당이 연합노선을 채택한 것이다. 그들은 <선거권 확대>라는 성과물을 얻기 위해 달릴 것이고 나는 그것을 또 다른 변화의 모습이라 결론 내렸다. 변화는 하나의 숙명과 같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세상은 너무 한 곳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변화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군인들을 따라 선내로 들어섰다. 깡마르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로버트 매코믹이라는 선의(船醫)로 박물학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는 세계의 유수한 오지를 돌면서 장차 수집하게 될 막대한 박물(博物)들에 흥분한 얼굴이었다. 그는 선내 박물학자의 임무도 겸해서 승선한 것이다. 사감 때문일까? 나는 그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서 사감이란 일종의 경쟁의식이랄 수 있다. 나는 일반사병이나 선원들과 어울릴 수 없는 귀족 함장의 대화상대로 승선했지만 사실 목적은 따로 있었다. 나 역시 매코믹처럼 박물을 수집을 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서 매코믹은 나의 경쟁자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매코믹은 자신의 경쟁자가 승선했다는 사실을 당분간 알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매코믹은 내가 자신의 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유치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훨씬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고 생각했다.
“아, 다윈씨로군요.” 매코믹은 불만에 찬 자신의 표정을 고치며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나와 잘 지내기를 바라는 얼굴이었다. 어쨌거나 함장과 같이 지낼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경험이 많으시다 들었습니다.” 내가 말한 것은 박물학과 채집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는 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박물학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경력에 대해 그렇게 말한 줄 알았다.
“많이 돌아다녔지요. 아픈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윈씨는 제 도움이 없었으면 합니다. 저는 필요한 존재지만 가능하다면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죠.”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초행길이니까요.”
“에딘버러에서 수학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뱃길은 험하고 선원들은 무식하고 사납지요. 약한 모습을 보이면 끝장입니다. 그 놈들이 기어오를 테니까요.”
어쩌면 그의 이야기가 맞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선원들은 무식하고 사나울지 모르지만 그들도 감정을 가진 인간들이었다. 소위 인텔리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세상이 분명 있는 것이다. 외견상으로는 그들이 거칠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만의 진실이 존재할지도 몰랐던 것이다. 어쨌거나 매코믹은 귀족혈통도 부유한 부르조아도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함장의 대화상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함장주변에 있을 수도 없었고 선원들과도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있었다.
함장인 로버트 피츠로이는 찰스 2세와 유연한 혈통관계에 있는 귀족으로 일반 장병이나 선원들과는 함께 대화를 하거나 식사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저명하고 부유한 의사를 아버지로 둔 내가 피츠로이의 대화상대로 선발될 수 있었다. 장기간의 항해에서 귀족출신의 고독한 함장에게 대화상대는 매우 절실한 것이었다. 내가 탑승한 비글호의 전임 함장만 하더라도 고독에 시달리다가 자살했었다. 더군다나 피츠로이의 집안에 자살에 대한 유전적 경향이 있었다. 로버트 피츠로이의 아저씨인 케슬레이 자작은 유명한 전쟁영웅이었지만 8년 전 자살했었다. 자살의 피가 피츠로이 가문의 혈관을 흐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장기간의 항해는 자칫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내가 비이글호에 승선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드디어 배는 거대한 바다로 진격하고 있었다. 인간이 자연에게 대해왔던 그 건방진 모습으로 말이다. 바다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배의 재롱에 부응하는 듯 순풍을 던져주었다. 시원한 갑판에서는 함장을 보기 힘들었다. 그는 가끔 장교들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꼼짝하지 않았다. 매코믹은 갑판을 오가며 선원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는 항해와는 무관했지만 자신이 경험이 많은 존재임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았다. 선원들이 쉽게 볼까봐 수선을 떠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기분은 좋았다. 초반의 대양은 일종의 희망이었다.
“바다 냄새가 좋소. 좀 춥긴 하지만 말이요.”
누군가 뒤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놀라서 돌아보았다. 한참 동안 집무실에 처박혀 있던 피츠로이였다.
“시작은 사람을 들뜨게 하는 법이요. 하지만 미래를 알 수 없으니 두렵기도 하지요. 난 많은 것을 들었소. 거대한 풍랑, 정체모를 선단, 폭동 같은 것 말이요.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외로움이라 했소. 나는 많은 시간을 기도하고 나오는 길이요. 어쨌든 당신과 함께하게 되어서 기쁘오.”
“이 신선한 바다냄새가 언젠가는 구토를 일으킬 수도 있겠지요. 저도 함장님과 함께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그는 나의 답변을 듣고는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나는 고상한 척하려는 그에게 작은 농담을 던진 것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가슴에 담아두는 것 같았다.
내 말이 씨가 된 것일까? 시간이 흘러감에 나는 견딜 수 없는 구토를 느끼기 시작했다. 파도의 높이가 먼 바다에 접어들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선원들은 그런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함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파도를 견디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는 그의 생각을 나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웨스트민스트의 수호자였다.
 

2.
나는 그렇게 며칠을 멀미로 고생했다. 먹고 마시는 것 모두 확인한 나머지 탈진했고 침대신세를 져야했다. 때문에 함장과의 식사는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하도록 해 주었다. 드디어 내 몸이 파도의 리듬을 깨달은 것일까?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것은 함장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그와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멀미 대신 다른 구토가 찾아왔다. 함장은 식사를 하면서 캐닝파와 휘그당이 연정하는 것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의식의 차이가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그것을 견뎌내는 것이 내 임무였다. 나는 식사에 제공되는 몇 잔의 스카치위스키로 마음을 너그럽게 다스렸다. 피츠로이는 향기로운 스카치도 두 잔 이상은 삼갔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귀족이었던 것이다. 내가 동석하지 않았을 때 그는 더 많은 스카치를 마셨다. 그가 스카치를 좋아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그는 내 앞에서 그것을 참아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마시는 스카치 잔 수는 조금씩 늘었다. 더불어 그의 말 수도 늘었다. 나는 그것을 통해서 그와의 종교적 차이도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만찬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는 그날 다섯 잔 이상의 스카치를 마셨다. 그런 그가 입을 열었다.
“하나님의 영역을 범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개탄할 노릇입니다.”
그의 주제는 성경의 과학성이었다.
“무엄하게도 인간의 몸을 물질이나 기계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도를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교도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 넣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창조되었던 그렇지 않건 그 몸이 물질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과 그 움직임이 기계적인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는 유물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하나님을 부인하는 이교적 행위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물론 유물론자들 가운데 무신론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난 모세를 존경하오. 그의 역사적 서술은 매우 객관적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으니까요. 그것을 어셔 대주교께서 증명하셨소. 그는 모세 오경을 통해 당대의 우주의 역사를 6006년으로 확실히 계산했으니 말이요.”
나는 그의 말에 답변할 수 없었지만 그의 두서없는 말들을 통해서 자신이 속물임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감옥에 가두는 간수였고 멈추어 있는 과거라는 현재에 살고 있는 옛사람 같았다.
“변화를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었소. 변화는 딱 한 번 있었다고. 노아의 시대에 그랬지. 난 화석을 본 적이 있었소. 큰 감동을 받았소. 거대한 홍수의 증거였소. 높은 산 정상의 두터운 암반 속에 묻혀있는 조개가 말하는 것이 무엇이겠소?”
난 그의 무지한 말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함장께선 확고한 신념을 소유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함장님의 의견에 공감하는 것이 약간은 있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츠로이는 내가 자신을 인정하는 줄 알고 기뻐했다.
“다윈씨 내가 주책입니다. 당신은 신학을 전공하신 분인데 말이요.”
그는 내가 신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자신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는 것이 확실했다. 함장과의 성경과 신학논의는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니까 말이다. 상대방을 확실히 인정할 경우 질문을 하지만 대등하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법이다. 그는 노아의 방주가 얼마나 컸는지 또는 성경적인 지질학적 연대에 대해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였다. 그가 말이 많아지면서 그와 보내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와 떨어지려면 배에서 내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대서양을 건너야했다.
어쨌거나 함장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1차 목적지는 케이프벨데 제도의 세인트샤고 섬이라고 했다. 지금은 1월이었지만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덥고 습윤한 날씨가 우리를 괴롭혔다. 선원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바닷물을 퍼서 샤워를 했다. 가끔 비가 내리면 식수에 이용하려고 그것을 받았고 덕분에 가져온 물까지 해서 식수는 넉넉했다. 밤이 되면 선원들은 업무가 끝났고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어왔던 무용담을 늘어놨다. 나는 함장과 함께 있는 것보다 그들과 있는 것이 즐거웠다. 그들은 점차적으로 나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이 함장에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참고 있는 함장이 식사시간에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저 천한 술주정뱅이들은 거짓말쟁이들이요. 어디서 들은 얘기를 마치 경험한 것처럼 지껄이지. 저들은 계집질에 노름이나 하며 인생을 허비했던 쓰레기들이란 말이요.”
고상한 귀족은 자신의 부하들을 그렇게 폄하했다.
하지만 나는 선원들이 쓰레기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내가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들은 배고픈 가족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원양항해를 감수하고 있었고 내게 그들을 위한 기도를 부탁했다. 문맹이었던 그들은 고민 끝에 다가와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내가 편지 대필을 시작하자 선원들은 줄을 섰고 나는 원양항해의 무료함을 그것으로 달랠 수 있었다. 덕분에 선원들의 사생활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내 생각을 그들에게 전했고 따라서 우리는 서로를 잘 아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똑같은 이 사람들은 배고파서 선원이 되었지만 결국 충분치 않은 배식으로 여전히 불만이 있었다. 이들은 사람이었지만 아직 선거권도 없었다. 사실 배우지 못한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거권이 아닌 충분한 식량이겠지만 말이다.
“선원들 말에 의하면 목적지가 다 왔다는데 배식을 충분히 해 주시지요.”
나의 제안에 함장은 참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다윈씨, 그것은 당신이 잘 몰라서 하는 소리요. 만약 배식을 충분히 했다가 날씨 등의 기상이변으로 인해 도착시간이 늦어진다면 큰일이요. 그들은 당장 폭동을 일으킬 것이요.”
갓 27살의 함장의 말은 선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서양을 열 번도 더 항해한 선원이 이런 말을 했다.
“식량은 일종의 권한입니다. 배식 양을 조절해서 선원들을 길들이는 것이 함장들의 고유권한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함장은 다윈씨의 생각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함장에게 있어서 선원들은 무법자요, 천한 버러지 같은 존재였다. 결국 배식양이 늘지 않았다. 그것은 장교들에게도 불만이었다.
대양을 바라봤다. 수많은 돌고래 떼들이 마치 하늘에 몸을 던지듯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매코믹이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설레는 마음을 지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는 항상 말할 때 “잘 아시겠지만”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내가 명문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주눅이 든 것 같았다.
“잘 아시겠지만 이번 기항지는 열대의 정글입니다. 얼핏 들었는데 선생께서도 박물학에 관심이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 천연의 보고에서 서로 도움을 주었으면 합니다.”
그는 내가 선원들에게 한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내가 경쟁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의 말속에는 취미삼아 채집을 할 것이라면 자신이 도움을 주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딱정벌레를 열심히 잡던 나는 양손에 그것들을 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더 멋진 딱정벌레가 나타났고 나는 그것을 포기할 수 없어서 손에 쥐고 있던 한 마리의 딱정벌레를 입에 물었었다. 갑자기 딱정벌레가 이상하고 쓴 액체를 뿜어냈고 나는 모든 딱정벌레를 놓치고 말았었다. 채집에 대한 나의 욕심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수집과 채집에 관한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호의에 감사합니다. 아셨으니 드리는 말씀인데 저도 채집을 많이 할 생각입니다. 선생의 도움은 별로 필요치 않을 것 같습니다.”
나는 매코믹과 같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원주민을 이용하는 것이다. 원주민들은 적당한 급료를 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할 것이다.
매코믹은 나의 은근한 거부에 자리를 떴다.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3.
드디어 육지가 나타났다. 나는 내가 딛고 살아온 땅이 이토록 소중한 것 인줄 이제야 알았다. 비글호가 육지에 다가 갈수록 매혹적인 초록의 바다가 자태를 드러냈다. 나는 하늘이 설계한 천연의 미인을 보면서 넋을 잃고 말았다. 도대체 무엇으로 이 아름다움을 형용할 수 있단 말인가! 육지에 접근하면서 수심이 얕아지자 보트를 이용하게 되었다. 아직 배가 정박할 항구까지는 거리가 있었으므로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매코믹과 함께 육지에 도착했다. 영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빽빽한 숲에서는 신선한 산소가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고 곳곳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생물들이 가득했다. 햇볕은 아주 뜨거웠지만 숲이 만들어주는 그늘은 더 할 나위 없이 시원했다.
“이렇게 육지가 좋은지 정말 몰랐어!”
“여긴 섬이요!”
나의 중얼거림을 듣던 매코믹이 그렇게 쏘아붙이고는 사라졌다. 나는 배에서 준비한 현물들을 풀어놓으며 섬의 원주민들에게 채집을 부탁했다. 현지인과 말이 통하는 선원이 그들과의 통역을 도왔다. 선원은 글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이 지역에서 살아봤던 경험으로 나를 도와줬다. 덕분에 적지 않은 수집물들이 비글호의 내 방을 채우게 되었다. 매코믹의 말대로 이곳이 섬이라면 본토에는 더 많은 보물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었다. 박물학자 매코믹은 첫 번째 승부에서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수집품만을 배로 가져왔다. 그는 나의 채집물들을 보며 한 숨을 쉬었다. 그는 박봉에 고용된 박물학자였지만 나는 달랐다. 그가 볼 때 막대한 자금이 있었던 것이다.
세인트 샤고 섬의 단꿈을 뒤로 하고 우리 배는 몬테비데오로 향했다. 나는 오랜만에 핸슬로우 교수님께 편지를 썼다. 비글호를 탈 수 있도록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사실과 지금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쓴 뒤에는 함장을 만났다. 세인트 샤고 섬에서 휴식 없이 바로 다시 항해를 시작한 것에 대한 불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원양의 항해로 고생한 선원들은 휴가가 필요했었다. 물론 더 많은 생물표본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선원들은 긴 항해 동안 휴가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좀 더 휴식을 주셨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나는 대영제국 해군의 함장이요. 여왕폐하의 명을 받들어 항해를 하고 있는 것이요.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일 따름이요. 우리는 우선 몬테비데오로 가는 것이 급선무였소.”
“선원들 말에 따르면 일정은 많이 줄었다고 들었는데요?”
“내가 알기로 다윈씨는 원하는 만큼의 채집물을 수집했다고 들었소만?”
함장은 나의 사적인 채집욕심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지. 다윈씨는 무엇 때문에 이 배에 승선했는지를 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소. 어쨌거나 이 배는 내 배고 내 명령에 움직이는 것이요.”
이후 그와 사이가 벌어졌다. 그와 함께하는 식사가 전혀 즐겁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점점 고통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하지만 본토에서 얻을 막대한 채집품들을 생각하면서 그 고통을 견뎌냈다.
어느 날 함장과 식사를 하는데 밖에서 선원들의 함성이 들렸다.
“와, 육지다! 본토다!”
나는 식사를 중단하고 함장에게 양해를 구한 뒤 밖으로 나갔다. 피츠로이 함장은 천박하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썼지만 나는 그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나는 선원들과 함께 남아메리카 대륙을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서인도제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것처럼 남아메리카는 에스파니아와 포르투갈의 속지였다. 하지만 제해권이 넬슨제독에 의해 영국으로 넘어온 이후 남아메리카는 위축되고 있었다. 영국은 1772년 맨스필드 경에 의해 법적인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이것은 중상주의를 지향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타격이었다. 아직도 식민지는 구습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휘그당의 선거법 개정안도 남아있는 이런 관행과 상관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몬테비데오에 머물면서 두 가지 일을 더 정하여 진행시켰다. 물론 박물을 채집하는 것은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자료수집과 사건 정황에 대한 기록을 시작했고 다른 하나는 찰스 라이엘 교수의 저서인 <지질학의 원리>를 탐독하는 것이었다.
라이엘 교수의 책은 남아메리카의 처녀림만큼이나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흥밋거리였다. 난 신학부를 졸업했지만 조르쥬 큐비에의 <천변지이설(天變地異說)>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이었다. 그는 전에 피츠로이 함장이 주장했던 것처럼 세상에 단 한 번의 대단한 변동을 노아의 홍수라 생각했다. 산 정상의 조개껍데기 화석을 증거로 주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라이엘 교수의 주장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동일 과정설>을 주장했다. 그것은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아주 작은 지각의 변화가 과거에도 동일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억겁의 시간동안 바다였던 땅이 융기하여 산 정상에서도 조개의 화석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천변지이설은 성서의 창조설화를 토대로 한 <불변설>이었고 동일과정설은 지속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변화설>이었다. 두 학설은 대조적이었다. 천변지이설은 큰 변화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변화가 없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던 반면 동일과정설은 작은 변화를 통한 지속적인 진화를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전에 시즈위크 교수와 북아일랜드에서 지질탐사를 하던 중 중요한 경험을 했었다. 그곳에는 두 개의 상이한 지층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하나에서는 육지 식물의 화석이 하나에서는 조개의 화석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 지역에서는 반만 홍수가 났다는 뜻인가? 간단히 결론을 정하자면 조개 화석이 포함되어 있는 지층이 융기한 것이 맞는 것이었다. 큐비에의 생각을 앵무새처럼 지껄이는 피츠로이는 분명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셔 대주교가 주장한 지구역사 6천년설도 버려야 한다. 동일과정설이 맞는다면 지구의 역사는 수 천 만년에서 수 억 년에 이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창조이후 그것이 아니라면 지구 탄생이후 지구는 지속적으로 변해 왔다는 사실이다.
“전에 변화가 한 번밖에 없다고 하셨죠?”
식사 중에 나는 그렇게 말을 던졌다.
“그렇소. 노아의 홍수 때 한 번만 천변지이가 있었소. 사실 그 외의 변화는 의미가 없으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의 치밀한 구상 속에서 설계된 걸작이요. 그러니 하나님의 생각이 달라지기 전에는 변화란 있을 수 없는 것이요.”
나는 꽤 많은 채집물들을 수집했는데 그로인해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현존하지 않는 생물들의 화석이었다. 난 그 의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노아의 홍수 때 많은 생물들이 절멸했겠지요?”
스테이크를 씹던 피츠로이가 이빨을 보였다. 그는 고급 브랜디를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지 않소. 성경에 따르면 모든 생물들을 몇 쌍씩 구원했다고 했으니 말이요.”
나는 그렇게 말하는 피츠로이에게 화석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것 좀 보십시오. 이것을 삼엽충이라는 갑각류 화석인데 지금은 현존하지 않습니다. 특히 주목 할 만탄 것은 바다 생물이라는 것이지요.”
“다윈씨, 당신은 신학자로서 쓸데없는 질문을 하십니다. 아마도 그 생물은 넓은 바다 어딘가에 존재해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얘기가 맞는지도 몰랐다. 그는 변화를 싫어했고 현재의 것을 지키는 것을 좋아했다. 당연한 것이 성공하고 있는 그의 위치에서 무엇인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실패를 뜻하는 것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확실해진 것은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 나와 그의 생각은 완전 반대라는 사실이었다.
 

4.
매코믹은 자신의 자료수집이 나의 것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나 있었다. 그는 박물학자였지만 의사였던 관계로 비글호에서 멀리 떨어질 수 없었다. 그것이 나보다 훨씬 불리한 이유였다. 나는 자유롭게 배를 떠나 많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필요한 채집물들을 사들였다. 무엇보다도 내륙쪽의 진귀한 생물들이나 화석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였다.
1833년 4월,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라플라타 강 기슭에서 동식물 채집을 했고, 5개월 후에는 바리아 브렌카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답사를 했다. 산타페와 파레나 강기슭에서는 거대한 코끼리 화석도 발견했다. 그 거대한 코끼리의 이름은 마스토돈으로 분명 멸종된 것이었다. 피츠로이의 말대로라면 하나님이 아마도 그들을 다른 코끼리와 구분하지 못한 나머지 대 홍수 때 그렇게 멸종시킨 것일까? 피츠로이는 아마도 그것이 코끼리 뼈라고 우길 것이다. 아무튼 나의 생각은 점점 더 모양을 갖추어 갔다. 변화에 대한 나의 신념 말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였다. 함장과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매코믹이 찾아왔다. 함장은 그가 무례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매우 화가나 있었다.
“저는 영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뭔가?”
“저의 공식적인 임무인 박물채집이 다윈씨의 사적인 취미의 성과를 못 따라가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입니다. 이 배의 박물학자는 하나로 족합니다.”
“그렇다면 자네의 요구를 승낙하지. 자네는 불명예스럽게 배를 떠나는 것이야.”
“이 배에서의 일이 제겐 더 불명예스럽습니다. 굉장히 수치스럽죠.”
함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매코믹의 요구를 승낙했다. 그가 무례했으므로 해고한 것인지도 몰랐다. 결국 매코믹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박해 있던 복귀전함 타인 호에 승선해서 귀국했다. 그는 상이제대 형식을 들어 귀국할 수 있었다. 난 하나도 섭섭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인격적인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가를 고민했다. 내게 전혀 해를 주지 않았던 특정한 사람을 망가트렸으니 말이다.
신대륙의 생물들은 우리 영국의 생물들과 많이 달랐다. 거대한 대양이 양쪽의 생물을 격리시켰던 것은 아닐까? 오랜 시간동안 그들은 다른 환경에서 조금씩 변화하여 오늘날의 차이를 만든 것은 아닐까? 그것을 증명하자면 더 많은 자료들을 수집해야 했다.
나는 요즘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서 고국의 소식을 듣고 있었다. 고국에서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세상이 변화했듯이 말이다. 내가 영국에 있을 때 선거법 개정운동이 일고 있었는데 그 법의 통과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50년간의 토리당 집권을 격파하고 그레이 경을 중심으로 한 휘그당 연립내각이 그 난항의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었다. 이 개정안은 1832년 6월 4일 반수 이상이 공석인 회의장에서 106표 대 27표로 가결되었다. 이로서 도시 중심으로 투표권이 주어졌던 관례가 깨어지고 농촌의 소작인들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휘그당이 집권을 연장하는데도 유리했다. 농민들은 귀족과 토리당을 싫어했으니 말이다. 이 사실은 함장도 알고 있었다. 나는 이 시점에서 꺼려지는 식사를 피 할 수 없었다.
“캐닝 이후 영국에 불온한 움직임이 있소. 천민들이나 신이 났지. 폭동이나 일으키고 말이요.”
“변화는 캐닝이 죽은 이후에 시작되었습니다. 토리당과 더불어 내각을 책임졌던 웰링턴 공은 군인일 뿐이지요. 그는 정치에 수완이 없어요. 결국 그레이 경이 다시 내각을 결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말씀하셨듯이 그레이 경은 능력이 없어 일선에서 물러섰던 사람이었소. 그런 그가 폭도들의 지지에 힘입어 다시 내각을 이끌고 선거법까지 개정한 것은 매우 유감이요. 그는 이제 농민에게 칼을 주었소. 정신병자들이 무기를 들었다고 생각해 보시오.”
“농민들은 정신병자들이 아닙니다. 본국의 백성들이지요. 그들은 세금을 내고 있고 따라서 권리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투표권은 당연한 권한인 것입니다.”
“당신의 분위기로 보아 곧 노예제도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 같군. 그들도 사람이니까 그들도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이요.”
“글쎄요?”
나는 일부러 돌려서 답변했다.
“다윈씨는 식민지의 상황을 몰라요. 국내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고는 하나 이곳 식민지의 거대한 농장은 막대한 노동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요. 만약 노예가 없다면 커피나 설탕은 끝이란 말이요. 당신도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물론입니다.”
“브라질 최대 노예 소유주 하나가 자신의 노예들을 모아놓고 해방시켜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소. 노예들은 의식주를 모두 제공하는 주인에게 감사한 나머지 아니요 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소. 노예들도 자신의 자리를 바꾸는 걸 바라지 않아요. 변하는 것이 싫으니까 말이요.”
겨우 참으며 피츠로이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참았던 울분을 터트리듯 격앙된 말로 답변했다.
“함장님! 참으로 답답한 말씀만 하십니다. 어떤 노예가 주인 앞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소? 더군다나 일할 수 있는 곳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묻는다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후에 찾아올 불이익도 두려웠을 것이요. 그들은 변하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두려웠던 것이요.”
나의 말에 피츠로이도 참았던 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다윈씨! 지금까지 지켜 본 당신의 모습은 신앙인도 아니요, 저 무지랭이 선원들만을 옹호하는 멍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캐닝주의자는 나와 식사를 할 자격이 없소.”
함장의 말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5.
철옹성 같던 피츠로이 함장, 그는 토리당 50년 독재의 아성처럼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변화라는 무서운 적 앞에서 자신의 신앙과 정치적 신념을 지켜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꽤 많은 시간을 혼자서 식사를 했지만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해야 했으며 결국 그것을 해결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선원들과 식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함장과 함께하는 고리타분한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나는 함장이 귀국을 명령한다면 그렇게 할 결심이었지만 그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제 그의 눈빛은 내가 스스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었지만 난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간절히 부탁하기 전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내가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이 정의롭거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공익을 편다거나 하는 것과는 상관없다는 것도 잘 안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까지 규정된 틀 속의 삶을 빠져나와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이 거대한 바다는 분노하기도 자상해지기도 하며 기뻐하는 법과 사랑하는 것도 안다. 바다는 항상 멈춰있지 않는다. 계속 변화하는 것이다. 나는 규범이라는 막연한 관념 아래 규정된 쓰레기 같은 넝마에 싸여 호흡을 잃어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그 규범의 틀 안에 있던 신학(神學)도 저 도도한 피츠로이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기쁘기 그지없었다. 나는 과거 이후로 변화무쌍했던 세상의 자유 함을 들이키며 마치 새 술에 취한 초대교회의 신도들처럼 마냥 신명이 나 있었다. 아, 아름답도다. 해안을 날아다니는 물새의 힘과 신선한 공기를 세상에 풀어놓는 숲의 자비로움이 나를 이렇게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 잘난 귀족들의 속물근성을 벗어 던질 경우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피츠로이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바다를 즐기고 있을 때 함장의 비서관이 나를 찾았다. 함장이 부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함장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이야기 좀 하고 싶었소.”
나는 미소를 보였다.
“지난번의 일은 내가 사과하겠소.”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능청을 떨었다. 선원들에게 배운 유머였다.
“나와 식사할 사람의 자격에 대해 운운한 것 말이요.”
그가 던진 타협은 변화를 인정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날의 무례만을 내게 사과했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굴욕을 느꼈을 테지만 말이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어쨌거나 그는 전함 비글호의 함장이었고 나는 그의 부하였다.
“감사합니다. 다시 함께 식사할 영광을 주셔서요.”
피츠로이도 내가 비아냥거리는 것을 알았지만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고독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나는 그와의 짧은 만남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 자유가 느껴졌고 변화가 보였다.
지금에서야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나는 나의 신념에 대한 확신을 갈라파고스군도에서 가지게 되었다. 각 섬에 분포하는 핀치 새들은 분명 지역적인 격리에 의해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지역적 격리와 그에 따른 환경의 다양성이 낳은 변이였다. 창조 이후- 지금은 그것을 의심하지만-지질학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생물에게도 변화가 있었던 이다. 적응하기 힘든 환경에서 그들은 분명 진화했다. 나는 나의 확신을 책으로 옮겨 출판했다. <종의 기원>의 초고는 사실 일찍 정리되었지만 그 서책이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책이 세상 사람들에게 줄 충격과 파장이 마음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의 책은 1860년 단두대 위에서 처형될 위기를 맞았었다. 영국협회회의의 윌버포스 주교가 이의를 제기했고 출판 정지의 위기에 놓였던 것이다. 그것은 아직까지 남아있던 유일한 화형식이었다. 그 때 나의 대변자를 자처한 토마스 헉슬리가 회의에서 윌버포스와의 대결해서 승리했다. 그의 달변과 과학적 지식이 화형장에서 쏟아진 비와 같은 역할을 했다.
얼마 전 피츠로이 함장의 신상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윌버포스가 헉슬리에게 무너졌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미쳐버렸고 얼마 전에 권총자살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변화를 끝까지 부정하던 피츠로이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그 소식은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지금 나의 신앙은 많이 흔들리고 있다. 나의 아내가 나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만약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그는 변화하는 자유로운 세상을 창조했을 것이다. 창조 이후 계시가 이어졌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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