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을 가지고 있는 몸
주관을 가지고 있는 몸
  • 황인술
  • 승인 2008.07.2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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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퐁티

(maurice merleau-ponty, 1908~1961)

▲ 메를로-퐁티     ©독서신문
메를로-퐁티는 전후 프랑스 지성계에 큰 획을 긋는 철학자로 라로셸 부근의 로슈프르에서 출생하였다. 프랑스 인문학 천재들을 배출해온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고등사범학교 재학 중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등을 알게 되어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이론가가 되었다. 후에 마르크스주의 정치 노선을 가던 사르트르와 사상적으로 관계를 완전히 끊게 된다. 1945년 리옹, 1949년 소르본대학을 거쳐 베르그송, 라벨의 뒤를 이어 1952년에 콜레주 드 철학교수가 되었다.

메를로-퐁티의 첫 번째 저서인 『행동에 대한 구조』는 1942년 프랑스대학출판사에 의해 출판되며, 대표적 저서인 『지각의 現象學』은 1945년 파리에서 출판된다. 이 책은 후기 후설의 현실세계와 관계된 현상학에 영향을 받아 자기 나름의 현상학을 계발하여, 신체·지각을 중심으로 주체와 객체, 인간과 세계, 나와 남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논하였으며, 사르트르와 같이 자기의식을 가진 인간의 존재, 즉 자기에 대해서 있는 존재인 대자(對自)·지각하는 대상인 탁자, 의자, 나무, 책들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즉 자신을 상대화할 수 없는 물질적인 것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즉자(卽自)를 분명히 구별하지 않고 양자를 나누려 하여도 나눌 수 없다는 생각아래 이 둘의 통일 속에서 문제·의미·단서를 발견하기 위한 실존주의적 양의성(兩義性)을 내세웠다.

1945년 이후, 사르트르와 잡지 『현대』를 편집하는 동안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동의하면서 공산주의자에게 사르트르보다 더 호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사회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중에 발생하는 폭력을 강하게 비난하지만 사실을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자본 그 자체가 일상적인 폭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휴머니즘과 테러』(1947)를 쓰게 된다. 이렇게 마르크스주의에 희망을 걸었으나, 한국전쟁을 계기로 충격을 받게 된다. 이상사회 건설이라고 믿었던 마르크스주의가 공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어 비공산주의 좌익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또한 한층 더 마르크스주의 정치 태도를 가지게 된 사르트르의 철학을 울트라볼셰비즘이라고 냉정하게 결정, 새롭게 정리된 정치사상서인『변증법에 대한 모험』(1955)을 통해 사르트르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이에 대해 보부아르는 격렬하게 메를로-퐁티를 비판했으나 사르트르는 내내 침묵을 지켰다.

1961년 메를로-퐁티는 심장병으로 갑작스럽게 53세로 세상을 뜨게 된다. 메를로-퐁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르트르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살아 있는 메를로-퐁티」글을 발표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완성되지 못했지만 연구 비망록과 초고들을 모아 유고집으로 발간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세계의 살’(la chair)이라는 개념을 들어 근원이라고 여겨졌던 인간 중심주의를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존재론을 펼쳐 보인다. 메를로-퐁티는 ‘살’은 신체의 모양을 나타내지만 모든 존재자에게 모양을 부여하는 ‘존재의 원소’라고 말한다. 즉, ‘살’은 어떤 사물의 본체(本體)인 실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살은 존재의 원소’로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 그 자신이며, 지금 여기에 있는 신체의 감각능력이 존재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원론과 메를로-퐁티

데카르트부터 시작된 주체와 객체, 정신과 육체에 대한 이원론은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주체와 객체의 문제에서 관념론은 객체 인식에 대한 근본이 되는 사실로 순수주체의 존재를 주장하였다. 이와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실재론은 주체 없는 순수객체를 주장하였다. 주체 없이 세계 인식에 대한 근본이 되는 사실을 객체 자체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에서 주체와 객체의 대립은 형이상학적으로 정신과 물질(육체)의 대립을 발생시킨다. 만약 객체와 다르게 주체의 힘이 옳고 확실하다고 여긴다면, 물질세계의 인과관계를 벗어나게 될 수밖에 없고 그런 인과관계의 바탕이 되는 정신영역을 인정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세계에 대한 근본이 되는 사실이 객체에 있다고 한다면, 주체는 객체로, 정신은 육체인 외적 사물인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이다.

퐁티는 인식론 측면에서 실재론과 관념론을, 형이상학 측면에서는 유물론과 정신실재론에 대한 이원론 대립 문제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의 초기 저작부터 남긴 원고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의식은 지속적으로 탐구된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목적은 의식과 자연의 관계들을 이해하는 것이다”는 말로 시작되는 첫 저서 『행동에 대한 구조』 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의 주요 저서인 『지각의 현상학』에서는 경험론과 지성론의 두 부분을 서로 상응하는 관계로 놓고 끝까지 비판을 전개해 나간다.

그가 남긴 원고를 정리하여 출판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지각하는 것과 지각되는 것의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관계를 뒷문장의 어순을 앞문장의 어순과 반대로 배열하는 방식인 교차대구법(交叉對句法 chiasmus)인 a속에 b가 있고 b속에 다시 a가 있다는 용어로 해석하려고 했다. 『지각의 현상학』에서의 현상학에 대한 정의이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의 존재에 대한 정의이든, 퐁티가 가장 크게 마음을 두고 생각한 것은 이원론에 대한 사유, 이분법에 대한 사유방식을 어떻게 극복 하는가에 있었다.

퐁티는 지각 문제에 있어 실재론, 경험론, 관념론, 지성론도 모두 틀린 이론이라고 비판한다. 지각경험의 근본이 되는 사실로 순수한 주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각된 대상의 경험에 대한 근본이 되는 사실이 전체에 걸쳐 대상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니다. 정신-신체에 관한 이원론의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관계에 대해서도 퐁티는 부분 밖의 부분으로 대상적인 신체도, 그런 물질 공간성을 완전히 빼버린 순수정신도 인정하지 않는다. 퐁티는 이원론을 두고 대립하는 두 이론 모두 객관적 사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지각도 신체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두 경우 모두 객관적 대상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지각의 현상학』

퐁티의 저작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지각의 현상학』이다. 이 책은 문학과지성사(2003)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해설서는 조광제에 의해 『몸의 세계, 세계의 몸』으로 이학사(2004)에 의해 출간되었다. 19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에 의해 예전의 정신과 이성 중심의 사유에서 몸과 욕망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 중심이 옮겨지게 된다. 몸이 담론의 중심으로 등장하였던 것이다. ‘남성=정신/여성=몸’이라는 사유에 의해 페미니즘이 몸을 강조하고, 인간과 함께 지구상 모든 동식물의 생명유지에 필수인 몸을 위협하는 환경오염에 대항하기 위한 생태주의는 필연적으로 몸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몸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몸에 관한 철학적인 분석과 성찰로 체계적인 철학을 전개한 철학자 퐁티의 몸 철학은 자연스럽게 중요한 담론으로 거론되었다. 퐁티의 몸 철학을 이해하는 데는 『지각의 현상학』이 기본서로 제시된다. 

 

『지각의 현상학』, 제1부 신체, 2. 신체의 문제

나는 나의 신체를 세계의 대상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한다. 나는 인식 수단으로서 나의 시선에 대한 인식을 억압하고 나의 눈을 물질 조각으로 취급한다. 이때부터 눈은 내가 외부 대상을 위치 짓고자 하는 객관적 공간에 자리 잡고, 나는 대상이 망막에 투영됨으로 지각적 조망이 발생한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나는 나의 고유한 지각적 역사를 나와 객관적 세계와의 관계의 결과로 취급한다. … 그래서 온전한 의미에서 단일 대상의 정립은 모든 경험을 단일한 행위 안에서 끌어 모을 것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단일 대상의 정립은 지각적 경험과 지평의 종합을 초월한다―마치, 관계들이 상호 규정적인, 완결된 명시적 전체성, 즉 우주의 개념이 상호 함축적인 관계들의 열린, 끝없는 다양성, 즉 세계의 개념을 초월하듯이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나의 경험에서 분리시키고, 이념으로 넘어간다. … 이념으로서 신체, 이념으로서 세계, 공간의 이념, 시간의 이념. … 의식의 모든 삶은 대상을 정립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한 대상의 정체가 확립되는 데서 의식이 자기 자신을 되찾고 자기 자신에 전념하는 한에서만 의식이 의식, 즉 자기에 대한 앎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일 대상의 절대적 정립은 의식의 죽음이다.

▲ 황인술 교수     ©독서신문

논제

정체성은 하나로 규정된 것이 아니고 동일성과 차이의 관계 속에서 주체의 구성에 의해 잠정적으로 드러난다. 이때 변함없는 기초는 우리 몸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둘러싸고 있는 동일시들은 다양하지만 이러한 규정들의 최종 목적지는 “지금 여기 있는 몸”이다. 때문에 몸은 단순히 정신에 지배되고 통제되는 하위 개념이 아니다. 정신은 지속적이지 않고 도량이 좁고 문제 상황이 발생되어야만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는 국한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주체는 구조화되고 습관화된 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의 몸이야말로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실질적 선험성’을 가진다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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