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과 비움
채움과 비움
  • 황인술
  • 승인 2008.07.2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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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득지

▲     © 독서신문
 
“장마 끝, 살인적인 더위 시작”, “살인적 고유가 200달러 시대를 열 수도”, “살인적으로 치솟는 물가와 등록금”, “ 살인적인 훈련량” 등 살인적인 용어가 낯설지 않게 다가오고 있다. 살인적이라는 말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은 또는 그런 것을 나타내는 말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정도로 몹시 가혹한 것을 말한다.

메를로-퐁티는 우리의 몸은 세계에 걸려 있는 몸으로 이미 존재하는 세계와 그 속에서 작용을 주고받는 몸과의 관계를 ‘세계에의-존재’(être-au-monde)라고 말한다. 이는 몸의 근본적인 모습을 말하면서 아울러 정신 및 의식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에의-존재’는 몸과 세계 혹은 세계와 몸이 서로 구조를 교환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 몸이 세계와 구조를 교환하면서 발생되고 있는 것이 살인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 몸 속에 들어 와 있는 세계, 우리가 몸을 통해 그 속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세계 속에 나 자신이 존재 한다고 봤을 때 닥쳐오고 있는 생활고는 몸이 궁핍을 참고 견뎌야 함을 뜻한다.

장자는 허심(虛心:마음 비움)을 포정해우(소 잡는 사람이 살과 뼈를 분리하는 신기神技에 가까운 솜씨를 비유하거나 기술의 묘妙를 칭찬할 때 비유하여 이르는 말)의 우화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 그 신기는 두께 없는 칼날을 가지고 허심(虛心:마음을 비움)으로 뼈 사이의 빈틈, 즉 사물의 자연스런 결(天理:하늘 또는 자연의 이치, 理는 玉의 무늬결) 속에 있는 틈에 접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욕심과 욕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우리를 구속하고, 남김없이 비우면 비울수록 우리의 참자유를 실현해 준다고 본 것이다.

물질만능에 대한 맹목적 추구는 가난을 혐오하게 만들고 부자 되기를 권한다. 그러나 “복권당첨은 타락의 출발이었다… 음주운전 도박에 불행 겹쳐”라는 뉴스에서 보듯, 많은 경우 부는 방종과 타락을 낳고 결국에는 불행에 빠지게 된다.

몸이 편하고 몸이 우선되고 외형적인 세계가 앞서 존재한다고 하지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를 궁리窮理라고 한다. 궁리에는 한 가지 실마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으로는 자신에게 있는 理를 궁구하여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 필요한 각각의 법칙을 찾아야 한다. 밖으로는 만물에 있는 理를 궁구해야 한다.

풀과 나무와 새와 짐승들이 어우러진 자연은 각각 마땅한 쓰임새에 따라 존재한다. 부모에게는 효도, 아내에게는 모범을 보여 은혜를 쌓고 인간의 도리를 바르게 하는 理를 마땅히 살펴야 하며, 사람들을 만날 때는 현명함과 어리석음, 악함과 올바름, 순수함과 추함, 교묘함과 치졸함의 차이를 마땅히 구별해야 하며, 일을 처리함에는 옳은 것과 그른 것, 얻음과 잃음, 편안함과 위태로움,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의 기미를 마땅히 살펴야 한다고 율곡 이이는 『栗谷全書』 권5, 『萬言封事』에서 말하고 있다.

『논어』에는 “孔子는 사양하여 얻으셨다(讓以得之)”고 했다. 얻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닌데도 결과적으로는 얻게 되었다는 말이다. 사양한다는 것은 자신을 비우는 것이며, 비운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나의 것을 준다는 것을 말한다. 몸이 앞서지만 몸을 비우면, 손해가 아니라 되로 주었던 것이 말로 돌아온다는 것이 양이득지다.

비움을 통한 채움의 역설을 통해 살인적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물질적 욕망도 중요하지만 채움에 끌려 다니지 않고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사는 것”이라는 소포클레스 말처럼 자신이 참으로 원하는 참자유를 찾아 ‘세계에의-존재’인 몸이 세계 속에 있지만 세계와 하나 되기 위해 세계를 향해 가는 방식으로 비워지는 몸이 존재할 이유도 있다고 본다.

즉, 몸이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이 세계를 향해 가는 것과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몸이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은 세계에 의해 몸도 영향을 받아 구조화되고 형태화되어 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 또한 궁핍을 참을 수 있도록 궁리함을 멈추지 말아야 하겠다.

/ 황인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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