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결혼했던 베스 여왕②
영국과 결혼했던 베스 여왕②
  • 신금자
  • 승인 2008.05.3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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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

▲ 신금자[수필가·본지 편집위원]     ©독서신문
종교문제와 정책적 줄다리기


오로지 엘리자베스 여왕은 강력한 스페인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펠리페 2세의 청혼을 거절하고 네덜란드의 독립을 도와주어 우방국으로 만들었다. 유럽의 골칫거리는 구교인 가톨릭과 개신교인 기독교의 대립이었다. 우선, 엘리자베스는 이 신구 두 파의 대치상황을 풀기위해 양쪽을 다 압박하여 국교 확립을 꾀했다. 종교를 통일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유럽의 종교문제는 여차하면 나라간 전쟁도 불사했으므로 국제적인 외교와 맞물려 돌아갔다.

그녀의 부왕인 헨리 8세의 왕비 캐서린도 원래 친형과 정략결혼을 한 사이였다. 그러나 5개월 만에 형이 죽고 헨리가 즉위하자 영국은 스페인과 맺어진 끈이 끊길세라 캐서린이 그 때까지 처녀였다는 어이없는 명분을 내세워 헨리 8세를 형수인 캐서린과 결혼을 시켰다. 이처럼 영국의 신세는 볼품없이 작았다. 거기다 부계서열이 끊기고 서녀였던 엘리자베스 1세가 등극하자 스페인과 프랑스는 영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하여 스페인의 펠리페 2세와 프랑스의 앙리 2세가 동시에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하였다.

참으로 결정하기 힘든 요구다. 어느 나라를 택하든 그 나라의 그늘에서 벗어나긴 글렀으니 말이다. 결국 엘리자베스 1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청혼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나라를 선택하였다는 뜻이다.

 

이룰 수 없었던 여왕의 사랑

아무렴, 여인 엘리자베스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없었겠는가. 이유야 어찌되었건 주변의 권유도 많았고 청혼도 많았다. 실제 여러 명의 애인도 있었다고 한다. 다만 그녀 특유의 엄격한 잣대로 가깝고도 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다. 한 예로 권력욕이 지나친 애인을 런던탑에 가두거나 단두대로 보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한때는 그녀 스스로 아이를 낳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같은 시기에 불같은 사랑으로 세 번이나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낳은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왕의 딸로 태어나고도 서출이라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 이복 남동생과 언니가 왕으로 군림할 때는 목숨만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숨죽여서 살아야했다. 누가 봐도 한 개인으로서의 그녀 일생은 참 불운하다. 다소 우유부단한 듯한 사생활은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어머니를 잃은 후 줄곧 사랑을 주고받지 못한 경직된 정서, 불안, 이것이 진짜 그녀의 내면일지도 모른다. 이 모두 그녀가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겪지 않았을 노여움이어서 더욱 그렇다.

 

장점은 약점이 될 수 있다

당시 스페인의 무역선을, 이른 바 대적할 배가 없으니 ‘무적함대’ 라 불렀다. 스페인은 그 무적함대를 믿고 지중해를 낀 유럽대륙, 더 나아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 어떤 나라도 스페인을 맞서지 못했다. 하나 엘리자베스 1세는 달랐다. 누구의 힘도 아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고 자부했다.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의 청혼을 거절한 것도 스페인의 그늘에 안주하기 싫어서였다. 역병과 약한 병력으로 홀로서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속국의 설움은 이제 끝내야 한다. 정면승부로 담판을 지을 계획을 짰다.

그야말로 해적인 드레이크와 호킨스를 시켜 스페인의 무역선이 영국 해안에 접근하기 전에 요소요소에서 기습 공격을 퍼부었다. 군대도 군함도 다 열세였으나 주변국들의 우려를 잠재우고 전쟁을 보란 듯이 승리로 이끌었다. 하나님도 그녀의 편에 섰던 것일까. 때마침 폭풍우까지 가세하여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 앞바다에 수장되고 쩔쩔매다 퇴각하고 말았다. 완전히 당한 펠리페는 엘리자베스에게 드레이크의 처형을 요구했다. 설마 영국이 어제의 그 영국이 아니란 것을 잊었을까. 여유가 생긴 엘리자베스 여왕은 펠리페에게 형식적인 사과를 하고 해적 드레이크를 선장, 더 나아가 귀족의 기사작위를 수여하고 공로를 치하했다.

몹시 자존심이 상한 펠리페는 그녀를 폐위시키고 가톨릭파의 메리 스튜어트를 옹립하려 했다. 그러나 실패 했다. 양국의 관계는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치달았다. 천하의 펠리페라지만 무모하게 공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딱 한 번 패했지만 무적함대가 패했다는 사실만도 스페인의 사기는 의기소침해 있었다. 반면에 영국은 사방으로 숨통을 죄던 주변국들로부터 해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해 지중해를 장악해 나갔다. 조그만 섬나라에 불과하던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뻗을 수 있는 저력을 키운 여인이다.

 

그 올곧은 치세 덕분인가. 자의든 타의든 그녀는 결혼마저 손사래치며 영국을 황금시대로 이끈 탁월한 지도자로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새삼 그녀의 카리스마가 그립기도 하고, 당시 프랑스와 스페인의 눈치를 보며 지내던 영국이 유럽의 중심에서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누렸기에 국민들은 그녀를 일컬어 훌륭한 여왕 ‘베스’ 라고 칭했다.

 

“그대들은 나보다 좋은 리더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나, 나보다 그대들을 더 사랑하는 리더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화답했다. 엘리자베스 여왕만이 남길 수 있는 명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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