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 익는 이육사 문학관
청포도 익는 이육사 문학관
  • 신금자
  • 승인 2006.06.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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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자[수필가]




 눈보라가 몰아쳤다.
이육사는 저기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던 시절의 뒤안길로 총총 사라졌다. 아직도 민족을 위해 울분이 남은 그를 거친 들바람이 이제 좀 쉴 곳으로 인도라도 하는 것일까. 선생이 흰 도포자락 휘날리던 광야를 따라가며 눈발에 쓸리듯 마음이 얼어붙었다.
 
 이육사 생애를 단편적으로 엮은 영상관에서 그의 시 “광야”의 자막이 슬라이드로 오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적잖이 가슴이 저몄다.
 이육사문학관은 탄신 100주년인 2년 전(2004년)에 새로 단장한 현대식 건물이었다. 이육사의 소쇄한 목소리를 담기보다 도시문명의 우수로 건물이 무미건조했다. 어차피 사업을 벌였으면 안동 선비마을에 어울릴 와룡무늬라도 입혔더라면 좀 좋았을까. 솔직히 아쉬웠다. 어째 문학관 내부도 형식이고 건성이려니 하고 김이 샜다.

 그리 성급하였을꼬? 들어서길 참 잘했다. 유서 깊은 선비집안에서 태어나 시와 더불어 한시, 수필, 소설, 평론이며 그 서체를 비롯하여 내용면에서 압도하였다. 우리 주변의 사물에서 얻은 서정성과 독립운동을 하며 여러 나라를 다닌 견문으로 인간과 세계를 노래한 선 굵은 유작들이어서 다시금 우리를 일깨웠다. 작품들도 이국정취를 밑바탕으로 동·서양의 이미지가 혼곤히 묻어 있다. 시사평론도 눈에 확 들어왔다. 시대를 앞지른 냉철한 삶과 문학, 항일 독립투사로써 위업이 워낙 커서인지 건물 겉모습만 보고 느낀 선입견은 아랑곳없이 가벼이 넘길 면이 없다. 그 시대에 성큼 세계를 바라본 선생의 큰 족적을 확인했다.

특별히 인간과 세계 여러 현상에 관심을 둔 예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해조사’ 등은 어리둥절하다. 그리고 암울한 일제시대에는  ‘절정’, ‘광야’, ‘꽃’ 등 반제, 저항의지를 의식화해서 노래하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찬란하다. 즉 시간과 공간을 꿰뚫어보고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수난을 겪는 민족을 해방시키고자하는 염원과 예언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선인처럼 맑고 냉철한 도량은 늘 죽음을 곁에 두고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광야에서 백마를 탄 초인을 기다린다 하였으나 스스로 초인으로 살다갔다. 더불어 그의 문학은 현실의 행동배경에서 승화하여 폭넓은 서정시로서도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 시대의 유행(모더니즘)을 쫓아간 것이 아니라 한국의 고유한 전통을 복원하고 살려나가는데 마음을 쏟았다. 결국 후대까지 고전적 문학사로 이어주는 가교를 톡톡히 했다.
 그러구러 행동하는 문단생활은 일본 총독부의 끊임없는 검열과 간섭으로 고난과 좌절도 컸으리라. 그럴수록 뼛속 깊이 파고드는 역사의식과 그에 따른 끈질긴 저항과 굽히지 않은 문필활동, 이것이 조국의 살 길이고 세계를 향한 외침이라 여겼으니 독립을 위해서 몸을 돌보지 않고 외국으로 혹은, 감옥을 숱하게 드나들었다. 
 마침내 감옥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야 늘 품속에 있던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 곳(일본총영사관 중국 베이징감옥)에서 고초를 겪고 쇠약해져 40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쳤다. 해방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이육사가 떠난 지 1년 만이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던 조국의 독립! 이 눈물어린 기쁨을 전할 길 없겠느뇨?
 이리 경사스러운 일에는 청포를 입고 찾아오던 그 손님을 보내면 두 손 함뿍 적셔 맞을 것이로되, 그간의 두루 전치 못한 다정인양 이리저리 떠도는 황엽들을 낙동강에 모두 띄워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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