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천국보다 낯선, 산후조리원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천국보다 낯선, 산후조리원
  • 스미레
  • 승인 2024.09.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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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태어나고 조리원에 들어가면 진짜가 시작된다. 내무반이 이런 모습일까?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종일 함께 울고 웃는다. 당연하지만 출산 이야기, 모유 수유와 가슴 이야기가 연일 흥행이다. 실로 오랜만에 단체 생활에 던져졌다.
매일 일정한 에너지와 신경을 조리원 식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데 할애해야 했다. 지속되던 어지러움이 빈혈 때문만은 아니었을 터. 이곳의 단체 생활은 보통 단체 생활이 아닌, 말 그대로 ‘가슴을 열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생활 아닌가. 사적인 영역을 중시하는 내게 최적의 장소는 아니란 느낌이 바로 들었다.

“연진 씨는 친구 안 만들어?”
며칠이 지난 후 남편이 물었다. 엄마들과 몰려다니지 않는 내가 좀 안쓰러웠는지.
“엄마들 커피숍 가던데 같이 안 가?”
“응. 안 간다고 했어.”
“밥은 누구랑 먹어?”
“옆방 엄마랑 먹거나 혼자 먹어.”
혼밥 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는데, 남편은 못내 걱정스러운 눈치다. 사교적이지 못한 내 모습이 부끄러워 슬쩍 웃음을 거뒀다.
“조리원 친구 생기면 좋은 거 아니야? 혜원 씨도 친구 만들라고 그랬잖아.”
그렇지만 나는 조리원에 새 친구 만들러 온 게 아닌데.
조리원 동기가 얼마나 좋은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인터넷엔 그들의 우애가 군대 동기보다 끈끈하다는 증언이 줄을 잇는다. ‘조리원 동기’는 조리원의 효용에 기본적으로 포함되는 항목 같았다. 친구를 사귀지 못하면 부대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이용 못 하는 것처럼, 응당 아까운 마음이 들어야 하는 듯 보였다.

식탁이나 공용 거실 쇼파에 앉으면 자연스레 대화가 시작됐다. 주요 질문은 “언제 출산하셨어요?”, “자연 분만이에요, 제왕 절개예요?”,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등인데 옆자리 상대가 바뀔 때마다 되풀이된다. 어색했지만 최대한 명랑하게 묻고 답했다.
먼저 친해진 이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고 싶지는 않고, 새로 온 사람들끼리는 서먹하다. 혼자 다니는 내 모습이 처량해 보이진 않을지 신경 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그 감정이 그땐 어찌나 크게 느껴지던지.
밥을 먹거나 수유하는 개인적인 순간에도 무해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야 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긴 일생일대의 나날에도 친구를 만들어야 하다니. 왜냐면 다들 그렇게 하니까. ‘나’는 괜찮지만 ‘내 아이의 엄마’는 외톨이이면 안 되니까. 조리원 생활을 했는데 조리원 동기가 없는 사람은 나뿐일지도 모르니까.

방문을 열고 나갈 때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외로워 보이면 안 되겠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익숙한 고민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신경 써야 할 일이 갑자기 너무 많이 생겨버렸다. 아기, 조리원 식구들, 새로운 환경. 태어난 아이도 낯설고, 출산한 나도 낯선데, 주변은 더 낯설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조리원을 택했을까. 내게 조리원은 천국이라기보단 ‘낯선 곳’이었다.
‘조리원 천국’이라는 찬양들을 보며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조리원에 가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더 정확히는 안 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초산인 우리가 조리원을 선택한 기준은 환경과 채광이었다. 산 가깝고 창 넓은 곳을 찾느라 멀리까지 달렸으니, 다른 조건은 생각도 안 했던 것이다.
조금 더 요령이 있었더라면 엄마들끼리의 거리나 온도가 적정히 유지될 수 있는 조리원을 찾았을 터이다. 내가 있던 조리원은 특히나 푸근하고 개방적인 분위기였는데, 조용한 임신 생활을 하던 나에겐 급격한 변화였다. 많은 사람 틈에서 에너지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와중에 수유 호출과 각종 프로그램에 바쁘게 불려 다니며 몸과 마음이 어수선했다.
다들 괜찮은데 나만 수시로 배탈이 났다. 그건 억지스러운 공감 나누기를 멈추고 방으로 들어가라는 몸의 신호였다. 집 생각이 간절하고 가족이 그리웠다.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십중팔구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또는 “뭘 그렇게 신경 써? 그냥 쉬어.”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럴수도.
그러나 모르는 이들과의 생활이 편할 리 없다. 랜덤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환경도, 누군가에게 관찰되는 것도 그리 달갑지는 않다. 관계 개척과 친밀 유지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드는 법이다.
조리원에서 모르는 이들에게 쓴 에너지를 막 태어난 아이에게 나눠줬으면 더 좋았을걸. 남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을 의식했어야 했다.
나 같은 누군가가 있다면 좋은 만남을 기대하되 연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괜찮다. ‘엄마 친구’들은 계속 생기고, 참여할 모임 역시 계속 늘어난다. 출산이라는 큰일을 겪었으니 따뜻한 밥 맛있게 먹고 쉬는 데 집중하는 것이 마땅치 않을까.
출산이라는 인생의 새 장을 좀 더 편안히 맞이하고 싶다면, 조리원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곳을 찾기 바란다. 굳이 조리원에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도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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