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충돌하는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을 통해 개인을 억압하고, 우리 사회의 전진을 가로막는 차별들과 부딪힐 수 있죠.”
퀴어를 다룬 예술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는 가운데, 오늘날 대만 문학계에선 성소수자 작가들이 많은 지지를 받으며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천쓰홍은 그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다. 대만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동성혼이 입법화된, 성소수자 인권에서는 선진국인 국가가 되었지만, 아직도 여러 퀴어 이야기들은 많은 억압과 고통의 흔적을 생생하게 전한다. 작가가 “저는 실패한 책을 썼고, 실패한 작가입니다”라고 말한 데에서 그간의 퀴어를 향한 사회적인 시선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 9일 천쓰홍 작가는 서울 중구에서 『67번째 천산갑』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유년 시절에 만나 평생에 걸쳐 우정과 헌신, 상처를 주고받은 한 게이 남성과 헤테로 여성의 관계를 통해 고독과 치유의 다양한 면모를 깊이 있게 탐색하고자 하는 작가의 뜻이 담겨 있다.
한국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천쓰홍의 소설, 『67번째 천산갑』은 1980년대부터 동성혼이 합법화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소수자들이 겪는 고난과 비애, 그리고 여성에게 향한 가부장적인 압박과 고통을 ‘그’와 ‘그녀’를 통해 말하고 있다. 전작 『귀신들의 땅』이 수많은 인물의 입을 빌려 다층적이고 다성적인 목소리를 쏟아냈다면, 이번 신간은 오직 두 사람의 돌고 도는 몇십 년 인연을 축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미스터리와 감춰진 비밀을 탐색한다.
“『귀신들의 땅』은 대만의 백색테러(1949년 대만 계엄령을 기점으로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되는 기간까지의 국민당 독재 시대와 국가에 의한 공포 정치 행위) 당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든 걸 검열했었기에 누구 하나 개인적인 자유를 가질 수 없었죠. 성별 구분이 엄청 강했던 시기에 특히나 억압받는 여성,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겼어야 했고요. 그렇게 그들은 시스템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울고 웃는 등 연기를 해야 했습니다.”
전작이 대만의 아픈 현대사를 담아냈다면, 『67번째 천산갑』은 현재 대만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의 대만은 백색테러가 끝나고, 동성혼이 법제화되고, 여성의 지위도 이전보다 올라간 모습입니다. 훨씬 더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지금, 완전히는 아니지만 자유에 좀 더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죠. 전작에 비해 슬픔이나 비애 같은 개인의 심리묘사를 강조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대적 배경도, 사회적 분위기도, 그리고 그 속에 인물들도 모두 다르지만, 작가는 두 책 모두 ‘자유’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세워 말하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자유로운 모습에 더 가까이 가려는 소설 속 캐릭터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되레 자유로워지라는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유를 다르게 정의하곤 한다. 천쓰홍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 역시 모두 자유를 원하지만, 그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누군가는 자유를 쟁취하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라고 말하며 자유를 갈망하는 반면, 누군가는 인간은 평생 자유를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자유를 포기한다. 하지만 자유에 대한 어떠한 신념이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유롭고 싶은 본능을 갖고 있다. 그게 정신적 자유든, 신체적 자유든, 경제적 자유든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싶고, 무의식적으로 자유를 원한다. 작가 역시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 고향을 벗어나 책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해방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건 그가 성소수자여서, 자신을 실패자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자유를 꿈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