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책문화생태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태계가 추구해야 할 철학과 가치가 명확해야 한다. 철학과 가치에 따라서 책문화생태계를 추진하는 동력과 정책, 방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제대로 정립된 철학과 가치를 바탕으로 책문화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상호작용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조성되는 것이다. 공공도서관 또한 마찬가지이다. 공공도서관은 저술 및 출판, 서점, 독서 정책을 포용하고 협력함으로써, 지역사회와 국가의 건강한 책문화생태계를 조성해야 할 책임이 있다.
최근 경기도는 ‘도서관 법’에 근거한 광역 대표도서관인 경기도서관의 운영을 민간에 위탁하겠다고 결정하고 ‘경기도서관 민간위탁 동의안’을 지난 8월 22일 경기도의회에 제출했다. 동의안에는 경기도가 정책기능을 담당하고, 민간위탁기관은 도서관 운영을 담당한다며 민간 위탁 예산 73억 원을 동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경기도가 광역 대표도서관인 경기도서관을 민간 위탁하겠다는 정책에는 크게 다섯 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째, 광역 대표도서관으로서의 가장 큰 가치인 공공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동의안에서 민간 위탁의 이유와 필요성으로 ‘효율성’을 꼽았다. 경기도는 “경기도서관 운영의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위해 도서관 운영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민간 전문기관의 위탁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는데, 불행하게도 여기에는 공공성의 가치는 빠져 있다. 다시 말해 경기도는 광역 대표도서관을 경제적 효율성으로만, 즉 경제논리로만 바라본 것이다.
광역 대표도서관이 추구해야 할 가장 큰 가치는 ‘공공성’이다. 도서관은 모든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지적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적 문화기관이다. 그러므로 광역 대표도서관인 경기도서관은 31개 시군의 도서관들이 도서관의 가치인 공공성을 잘 구현하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수행해야 한다.
둘째, 경기도가 결정한 경기도서관 민간 위탁은 국가 도서관 정책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매우 잘못된 정책이다.
‘도서관 법’에 따르면, 17개 시도는 도서관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광역 대표도서관을 지정하여 운영해야 한다. 가령 광역 대표도서관으로 지정된 경기도서관은 경기도 31개 시군의 도서관들과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1400만 명의 경기도민들을 위한 도서관 정책을 재수립하고 추진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민간위탁 기관이 대표도서관을 운영하게 되면 그 자체로 광역 대표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 도서관인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을 민간에 위탁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바로 정책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도서관법에 광역 대표도서관이 중앙정부의 도서관 정책기능을 지방정부에서도 할 수 있도록 책임과 권한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광역 대표도서관은 국회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 못지 않게 국가도서관과 같은 정책기능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민간 위탁이 아닌 공공성의 가치를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경기도가 경기도의회에 제출한 동의안의 근거는 잘못 제시되었다.
경기도는 민간 위탁 근거로 ‘도서관 법’ 제51조(권한의 위임·위탁)와 ‘경기도 사무의 민간 위탁 조례’ 제5조(민간 위탁의 기준)를 들었다. 그러나 17개 광역 중 ‘도서관 법’ 제51조를 근거로 광역 대표도서관을 민간 위탁 하는 사례는 단 한 곳도 없다. 제51조는 도서관 업무 중 일부를 민간 위탁을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지 광역 대표도서관 운영을 통째로 민간 위탁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경기도가 동의안에서 제시한 사례(광진정보도서관, 수성구구립범어도서관, 성남중원도서관)는 모두 기초단체가 민간 위탁하는 구립도서관의 사례들이다. 이는 경기도가 광역 대표도서관과 기초단체 공공도서관의 역할을 혼동하고 있거나 도서관을 모르는 행정직 공무원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광역 대표도서관과 기초단체의 공공도서관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기초단체는 조직 및 예산에 따라서 민간 위탁하는 사례가 있으나 도서관 전문가들은 민간 위탁은 결국 공공도서관 이용자들의 서비스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공공도서관으로 공공이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편 경기도 도서관정책과가 언론에 제시한 다케오시도서관의 사례 또한 광역 대표도서관의 사례가 아니라 소도시의 공공도서관 민간 위탁 사례이다. 그것도 다케오시도서관의 민간 위탁에 따른 문제점들이 일본 시민사회 중심으로 제기되었고, 민간 위탁 결정 과정과 운영상의 문제점들이 다수 드러나 다케오 시 시민들이 히와타시 케이스케 전 시장을 법적으로 고소하기 까지 하였다.
넷째, 경기도가 광역 대표도서관 정책기능과 운영을 따로 하게 되면 이중 행정으로 세금이 이중으로 낭비된다.
대표도서관장이 광역 대표도서관으로서 정책과 운영을 함께 리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경기도는 정책기능을 도서관정책과에서 담당하고 운영을 민간 위탁 기관이 담당한다는, 즉 머리 따로 몸 따로 움직이는 이상한 형태의 도서관 괴물을 탄생시겼다. 현재 도서관정책과에는 과장, 팀장 4명을 포함하여 22명의 직원이 있다. 민간 위탁을 하지 않더라도 도서관정책과장을 개방형임기제로 바꾸어 전문가를 관장으로 영입하고, 도서관정책과를 광역 대표도서관에 맞게 조직체계를 재구성하고, 모자라는 인력은 31개 시군과 협력하여 파견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시설관리 등은 용역을 줄 수도 있다. 정책이 곧 운영이다. 정책 따로 운영 따로는 있을 수 없는 행정 시스템인 것이다.
다섯째, 경기도의 광역 대표도서관 민간 위탁 결정에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빠져있다.
경기도서관이 경기도지사 개인의 것이라면 민간위탁 결정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경기도서관은 몇 년간 도민의 세금 1200억 원이나 들여서 짓는 공공건물이다. 이렇게 많은 세금을 들여서 짓는 광역 대표도서관의 운영 방침에 대해서 경기도지사는 가장 중요한 조직에 대한 논의를 놓쳤다. 경기도는 선행하여 대표도서관 체제를 갖추는 조직으로 전환하고 대표도서관장을 채용하여 지속 가능한 운영 체계를 갖추어야 했다. 그뿐인가. 경기도는 민간 위탁 결정이 있기까지 경기도 31개 시군 도서관 관계자들, 도민들과 어떠한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심지어는 경기도지사가 위촉한 ‘경기도서관 건립운영전문가TF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밀실행정, 졸속행정을 추진한 이유가 무엇이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번 경기도서관 민간 위탁 쟁점의 핵심은, 공공이 책임을 갖고 공공성을 추구해야 할 광역 대표도서관을 바라보는 철학의 문제이다. 효율성만 따져 광역 대표도서관을 민간 위탁하겠다는 결정은 과거 진주의료원을 민영화하겠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의료의 민영화 문제 못지않게 도서관의 민간위탁 문제도 도서관을 이용하는 입장에서 매우 까다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결국 도서관 서비스의 질은 낮아지고 민간위탁금은 계속 늘어날 것이며, 광역 대표도서관 체계는 엉망이 되어버릴 것이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효율성이라는 이유로 가장 쉽게 일하는 방식이 민영화, 민간 위탁이다. 이번 광역 대표도서관이 경기도서관 민간 위탁 결정에 대한 논란의 가장 큰 책임은 경기도지사가 질 수밖에 없다.
경기도가 그동안 1200억 원이나 세금을 들여 광역 대표도서관을 짓고 운영할 능력이 없어 민간에 위탁하는 결정을 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민간 위탁 결정이 있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경기도서관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조직을 꾸리고 정책을 수립했는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도서관계와 도민들의 질타를 받는 광역 대표도서관이 아니라 많은 세금을 들여 짓는 만큼 공공성 가치를 충분히 실현할 수 있도록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경기도는 공공(公共)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공공도서관(公共圖書館)의 책무가 무엇인지, 광역 대표도서관을 운영하는 철학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 그 철학을 바탕으로 광역 대표도서관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를 행정 공급자 중심의 행정 편의가 아닌 행정 수요자 중심에서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