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시민 시인 오디세우스: 박흥식, 「미움을 받든 소」
[시민 시인의 얼굴] 시민 시인 오디세우스: 박흥식, 「미움을 받든 소」
  • 이민호 시인
  • 승인 2024.08.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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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정든 소가 되고 싶다

한낮 한복판

술 뙤약에 익어 흩어지거나

발이 네 개나 되어서

한 번씩 쓰러졌으면 좋겠다

바람이 불고

많은 것이 떠나갔고 다시

바람 속에서 나 있을 것이므로

들판을 오롯이 버티다가

미운 소가 되고 싶다

너무 많이 그리워했으니

어쩌면 한낱 티끌에 지나지 않을

사람을 많이 잃어버리고도

외롭지는 않게

미움을 받든 소가 되고 싶다.

- 박흥식, 「미움을 받든 소」

시민 시인 오디세우스

박흥식은 ‘비의와 유폐’의 시인입니다. 첫 시집 『아흐레 민박집』(창비, 1999.) 출판사 소개를 보면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정확히 ‘비의’를 어떤 뜻으로 썼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시가 스쳐 지나간 어떤 비의를 잘 간직하고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비의(悲意)’, 즉 ‘슬픈 뜻’에 가까워 보입니다. 특히 그의 시를 ‘오랜 세월 고독 속에 스스로 유폐’된 자의 정서로 보고 있습니다. 이제 시민 시인으로 그를 호명하며 돌이켜 볼 때 그는 ‘슬픔과 고독’의 시인이 아닙니다. 그의 시는 삶의 기지(奇智)로 풀어낸 서정이며 세상과 끈을 놓지 않으려는 시 정신의 산물입니다.

시 「미움을 받든 소」는 그리스 신화 속 오디세우스의 노래처럼 들립니다. 원래 오디세우스라는 이름은 ‘미움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도둑질과 거짓말’ 때문에 미움받았던 할아버지가 그렇게 지어주었습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이십여 년 동안 온갖 풍상을 겪었던 오디세우스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기도 합니다. 왜 시인은 스스로 미움받길 원했을까요. 왜 오디세우스의 삶은 ‘도둑질과 거짓말’로 점철되었을까요. 왜 할아버지는 자신의 흔적을 손자의 이름 속에 그렇게 남겼을까요. 그건 소처럼 들판에 버티고 선 시인의 사명 때문입니다.

시인의 ‘도둑질’은 인간을 사랑해 불을 훔쳤던 프로메테우스의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의 ‘거짓말’은 청년들을 미혹시켰다는 죄명으로 사형당했던 소크라테스가 받은 신탁이기도 합니다. 욕망으로 가득 찬 세상이 보기에 시인은 그러한 존재입니다. 오디세우스의 또 다른 뜻은 ‘분노하는 자’입니다.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목숨, ‘아무것도 아닌’ 생명을 대신해 최후의 승자가 되었던 오디세우스 신화의 끝이 그 뜻을 증명합니다. 박흥식을 시민 시인의 자리에 놓는 뜻도 그러합니다. 그의 시는 살아남기 위해 커다랗고 어진 적막한 눈을 껌뻑이는 타자의 되새김입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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