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
정든 소가 되고 싶다
한낮 한복판
술 뙤약에 익어 흩어지거나
발이 네 개나 되어서
한 번씩 쓰러졌으면 좋겠다
바람이 불고
많은 것이 떠나갔고 다시
바람 속에서 나 있을 것이므로
들판을 오롯이 버티다가
미운 소가 되고 싶다
너무 많이 그리워했으니
어쩌면 한낱 티끌에 지나지 않을
사람을 많이 잃어버리고도
외롭지는 않게
미움을 받든 소가 되고 싶다.
- 박흥식, 「미움을 받든 소」
시민 시인 오디세우스
박흥식은 ‘비의와 유폐’의 시인입니다. 첫 시집 『아흐레 민박집』(창비, 1999.) 출판사 소개를 보면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정확히 ‘비의’를 어떤 뜻으로 썼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시가 스쳐 지나간 어떤 비의를 잘 간직하고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비의(悲意)’, 즉 ‘슬픈 뜻’에 가까워 보입니다. 특히 그의 시를 ‘오랜 세월 고독 속에 스스로 유폐’된 자의 정서로 보고 있습니다. 이제 시민 시인으로 그를 호명하며 돌이켜 볼 때 그는 ‘슬픔과 고독’의 시인이 아닙니다. 그의 시는 삶의 기지(奇智)로 풀어낸 서정이며 세상과 끈을 놓지 않으려는 시 정신의 산물입니다.
시 「미움을 받든 소」는 그리스 신화 속 오디세우스의 노래처럼 들립니다. 원래 오디세우스라는 이름은 ‘미움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도둑질과 거짓말’ 때문에 미움받았던 할아버지가 그렇게 지어주었습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이십여 년 동안 온갖 풍상을 겪었던 오디세우스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기도 합니다. 왜 시인은 스스로 미움받길 원했을까요. 왜 오디세우스의 삶은 ‘도둑질과 거짓말’로 점철되었을까요. 왜 할아버지는 자신의 흔적을 손자의 이름 속에 그렇게 남겼을까요. 그건 소처럼 들판에 버티고 선 시인의 사명 때문입니다.
시인의 ‘도둑질’은 인간을 사랑해 불을 훔쳤던 프로메테우스의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의 ‘거짓말’은 청년들을 미혹시켰다는 죄명으로 사형당했던 소크라테스가 받은 신탁이기도 합니다. 욕망으로 가득 찬 세상이 보기에 시인은 그러한 존재입니다. 오디세우스의 또 다른 뜻은 ‘분노하는 자’입니다.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목숨, ‘아무것도 아닌’ 생명을 대신해 최후의 승자가 되었던 오디세우스 신화의 끝이 그 뜻을 증명합니다. 박흥식을 시민 시인의 자리에 놓는 뜻도 그러합니다. 그의 시는 살아남기 위해 커다랗고 어진 적막한 눈을 껌뻑이는 타자의 되새김입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