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이렇게나 다른데, 왜 서로를 찾고 있는 걸까...연극 ‘랑데부’
우린 이렇게나 다른데, 왜 서로를 찾고 있는 걸까...연극 ‘랑데부’
  • 이세인 기자
  • 승인 2024.08.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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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에게 우주에 대해 알려줬다. 그녀는 나에게 영혼에 대해 알려줬다.”
누군가의 아픔을 안아준다는 것, 아름답지만은 않다.

서로 받아준다는 것은, 서로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때 시작된다.

절대로 어떻게든 섞일 수 없을 것만 같은, 자신만의 외딴섬을 가진 남자와 여자, 사람과 사람은 각자의 상처를 지닌 채 때때로 각자의 방식으로 결핍을 갈구한다.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고, 포근한 소통이 이어지다가도 금세 어긋나고 만다. 엠비티아이로 치면 ISTJ와 ENFP의 만남 같달까.

연극 '랑데부' 오픈 리허설에서 배우 박성웅, 문정희. [사진=옐로밤]

연극 ‘랑데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두 남녀가 만나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점차 서로에게 이끌려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정해진 법칙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남자 ‘태섭(배우 박성웅, 최원영)’. 그리고 스스로를 찾고자 떠나온 여정의 끝, 어느새 자신을 가장 괴롭혔던 과거의 장소로 돌아와버린 여자 ‘지희(배우 문정희, 박효주)’. 별나 보이지만 아름답고, 풋풋해 보이지만 성숙한 이 로맨스에 마음이 가는 건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남녀가 어떻게든 관계를 이어가려고 하는 마음이 엿보여서다.

상대방의 마음을 갖지 못했던, 또는 상대방에게 마음을 선뜻 주지 못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다. 마음을 주고받는 게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되돌아보고, 대리 만족을 경험하기도 한다.

김정한 연출은 “우리가 달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데 갈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어 노력하지만 그러지 못한 경험은 살면서 누구나 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작품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 이별 이야기라 규정지을 수 없는, 삶에 대한 고찰이라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마치 펜싱장을 연상케 하는 대형 트레드밀 런웨이 무대는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이러한 두 인물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연극 '랑데부' 오픈 리허설에서 배우 최원영, 문정희. [사진=옐로밤]

표면적으로는 일반적인 로맨스 이야기를 그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남녀 주인공, 예기치 못한 만남, 로맨틱한 몇몇 순간들, 전형적인 요소들이 모두 존재한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는 개개인의 세계관 차이와 성장에 관한 깊이 있는 탐구임을 알 수 있다.

태섭 역의 최원영 배우는 “삶을 살아가면서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이 매번 생겨나고, 불확실성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곤 한다”며 “작품에서 던져지는 문장과 단어들은 곱씹다 보면 앞으로 이어가야 할 삶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연극은 우리를 둘러싼 지극히도 평범한 환경과 평범한 요소들이 만들어낸 단조로운 일상을 통해 삶에 대해, 그 속에서 맺어지는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연극 '랑데부' 오픈 리허설. [사진=옐로밤]

공연은 1시간 30분 동안 오롯이 두 배우의 대사와 몸짓만으로 진행되는 2인극이다. 숏츠가 주류인 시대, 도파민 중독 시대에 ‘랑데부’는 긴 시간 우려내야 하는 차 같기도, 때로는 오랜 시간 숙성해야 그 진가가 드러나는 위스키같은 작품인 듯하다. 두 인물의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연극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의 반짝거림과 서로에 대한 존중에 그 무게를 둔 것을 알 수 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상처에 집중하기보다는, 상처를 보여주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쌓여가는 마음의 무게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모든 것을 회피하려는 태섭의 이야기를 통해 지희는 오해를 풀 수 있었고, 나를 찾고자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지희를 통해 태섭은 내면의 작은 불씨를 틔울 수 있었다. 어쩌면 연극이 말하는 사랑이란 ‘관계를 맺는 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전이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연극 ‘랑데부’는 오는 8월 24일부터 9월 2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약 한 달간 공연된다.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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