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간은 각자의 기억과 역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수많은 기억과 역사가 새겨진 책들이 모여있는 공간이니, 기억들의 기억 집합소라 말해도 무리는 아닐 터다. 그리고 여기, 의왕시 주민들에게 도서관이란 ‘공간 중의 공간’, ‘쉼터 중의 쉼터’로 여겨지고 있다. 도서관이 어떻게 의왕시 주민들의 ‘최애’ 장소가 될 수 있었는지 의왕시중앙도서관 송은아 과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올해로 개관 18주년을 맞았습니다. 의왕시중앙도서관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의왕시에는 공공도서관 5곳, 공립 작은도서관 7곳, 그리고 사립 작은도서관 31곳이 있는데, 그 도서관들을 아우르는 중심 역할을 중앙도서관이 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의 중심이자 지역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여러모로 ‘중앙’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이라 할 수 있죠. 의왕시 같은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문화적으로 열악한 편에 속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은 꾸준히 지역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왔죠. 의왕시 인구가 16만 명인데, 공공도서관은 5곳인 걸 보면 인프라가 굉장히 훌륭한 도시라 할 수 있고요. 중요한 건 시민들이 요구하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도서관이 하나둘씩 지어질 수 있었다는 거예요. 저는 시민들이 직접 나서 쟁취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 있었는데, 도서관이 제일 먼저 들어서길 바라는 답변이 98%로 압도적이었죠. 의왕시에 도서관이 들어선 지 30여 년 정도 됐는데, 이런 순환이 잘 이루어지는 곳은 정말 흔치 않아요. 시민들이 계속해서 도서관에 애정을 드러내는 건 도서관이 주는 느낌과 장소에 대한 추억이 지금까지 좋게 이어져 오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의왕시에서 도서관은 대표적인 문화인프라의 역할을 해오고 있는데, 이러한 문화인프라가 이용자들, 나아가 지역사회에 어떠한 변화들을 가져왔나요.
우선 도서관을 계속 조성해 달라고 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은 일상 안에서 문화를 누리려고 하고, 도서관이 해줬으면 하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무엇보다 도서관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요. 30여 년간 시민들에게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꾸준히 제공했기 때문에 그러한 요청들이 계속해서 들어올 수 있었죠.
다른 시도 진행하고 있는 사업인데, 의왕시에서도 도서관 방문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찾아가는 이동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500세대 이하의 공동주택을 우선적으로 선정해 찾아가고 있죠. 인구가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은 공공도서관, 집 근처 작은도서관을 방문하면 되는데, 세대 수가 적은 곳은 이동도서관이 가장 쉽게 문화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이에요. 도서관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이동도서관이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여전히 이동도서관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죠. 사람이 있는 곳에 책이 가는 게 아니라, 독서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될 때 책을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요구하는 사람이 없어도 이렇게 조금씩 가다 보면 한 사람 한 사람 읽게 되잖아요. 이것 또한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동도서관이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는 이유죠.
Q. 평소에도 시민분들의 의견을 많이 참고하고 반영한다고 들었어요.
프로그램이 끝나면 만족도 조사를 통해 얻은 요구사항, 개선할 점들을 다음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반영하곤 합니다.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도서관 공간활용에 대해서도 시민분들의 의견을 많이 수용하려고 하고요. 중앙도서관의 경우 근처에 노인복지관과 청소년 수련관이 있는데 그분들이 도서관에 방문할 수 있게 맞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끔 조성했죠. 실제로 2층 리모델링 이후 학생분들과 청년분들이 많이 찾아주셔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연령대가 좀 낮아졌어요. 이전에는 도서관이 특정 연령에 한해서만 운영되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지금은 다양한 연령대 분들이 이용하고 계세요. 덕분에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고요.
Q. 단순히 ‘책’이 아닌 문화공간으로서 역할이 강조되는 지금, 공공도서관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이제는 작은도서관, 그리고 민간인이 운영하는 도서관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공공도서관이 중심이 되어 그들의 뒷받침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서관 정책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이전에는 공공도서관 운영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거기서 좀 더 나아가 주민들이 사랑하는 도서관이 됐으면 했죠. 그런데 지금은 도서관 안에 머무르는 인구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그 안에는 책을 보러 오시는 분들, 독서 동아리에 참여하기 위해 오시는 분들, 또 도서관 운영에 궁금증을 안고 오시는 분들이 있을 거고요. 도서관에 있을 때 안정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도서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지금 현시점에서 공공도서관이 지녀야 하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루 일정 중 도서관 방문이 중요한 스케줄이라 한다면, 그걸로 도서관의 역할은 200% 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냥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닌, 장소와 장소 사이에 잠깐 거쳐 가는 것이 아닌 ‘나 오늘 도서관에 갈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도서관을 찾아주신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아요. 이용자분들이 도서관 가는 일을 행복해하는 것, 그게 공공도서관이 제일 꿈꾸는 일 아닐까요?
Q. 이용자분들이 부담 없이 도서관에 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시민으로서 내가 받을 권리는 누려야 하잖아요. 이런 생각을 가지고 부담 없이 방문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서분들뿐만 아니라 아침에 도서관 문을 여는 분들, 청소하시는 분들, 자료실에서 이용자분들께 편의를 제공해주시는 분들, 모두 주민을 환대하려는 마음을 갖고 출근 준비를 해요. 그런 마음 없이는 도서관 일을 오래 할 수 없으니까요.
흔히들 도서관의 주인은 사서라고 하잖아요. 그 말은 사서가 위에 있다는 뜻이 아니에요. 사서가 도서관의 주인이라 한다면, 도서관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은 손님이 되죠. 손님이 눈치 보고 부담 가지면, 되려 주인이 불편할 거고요. 이런 의미로 도서관의 실질적인 주인은 사서라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도서관에서 하는 모든 활동을 부담 없이, 최대한 많이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끝으로 의왕시 도서관을 통해 기대하거나 바라는 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앞서 말한 것처럼 의왕시에서는 도서관 인프라를 늘리고 확산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공공도서관 5곳이라는 자랑스러운 성과도 내게 됐고요. 이제는 독서 정책의 본래 목적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독서 인구를 늘리는 일이죠. 도서관이 늘어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독서 인구의 확산’, 도서관이 존재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도서관은 그에 맞춰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책을 1년에 몇 권 읽냐고 물어보면 한 권도 안 읽는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제는 똑같은 질문에 적어도 한 달에 한두 권 정도 읽는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아마 저를 포함한 도서관에 종사하시는 모든 분들의 로망이지 않을까요? (웃음)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