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
『돈키호테』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시공사
『화씨 451』 – 레이 브레드버리, 황금가지
여러분은 책이 단 한 권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학교와 학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나 학습지부터 취미로 읽는 소설에 이르기까지 책은 생각보다 우리 생활 속의 많은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요즘에는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비교적 줄어들고, 영상 매체들이 책의 자리를 대신하는 경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아직까지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레이 브레드버리의 소설 『화씨 451』에서 이러한 책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을 마주합니다. 주인공 몬태그가 사는 세상은 책을 소지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고, 보이는 족족 책을 다 태워버리는 방화수들이 있는 세상입니다. 방화수들은 누군가가 책을 가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으면 집으로 출동하여 책의 소지자를 체포하고 책을 불태우는 일을 합니다. 몬태그도 그런 방화수들 중 한 명이죠. 이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단순화된 교육을 받고, 일을 거의 하지 않으며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오락을 즐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책을 태우는 일을 하던 중, 몬태그는 한 노파가 불타는 집 속에서 도망치지 않고 자신의 책들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커다란 충격을 받습니다.
“책 속에는 뭔가 우리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게 들어 있어. 그 여자로 하여금 불타는 집 속에서도 빠져 나오지 않고 남아 있도록 만드는, 분명히 뭐가 있어. 그저 불타는 집에 남아 있었을 리가 없어.”
『화씨 451』 – 레이 브레드버리
“책 안에 도대체 무슨 내용이 들어있길래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려 한 것일까?” 노파의 사건 이후로 이 질문은 몬태그를 계속 따라다닙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몬태그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왜 책이 금지되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위해서는 안정되고 평화로운 사회가 필요하죠.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통제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사람들이 쓸데없는 생각들을 멈추고 걱정 없이 즐거움만을 추구하며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질문할 필요가 없는 세상, 이것이 바로 몬태그가 사는 사회의 지도자들이 생각했던 행복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책은 정말 쓸모없는 도구입니다. 책은 우리에게 계속 생각하고, 고민할 거리들을 던져 주기 때문이죠.
“우리 전부가 똑같은 인간이 되어야 했거든. 헌법에도 나와 있듯 사람들은 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는 거지. 그리고 또 사람들은 전부 똑같은 인간이 되도록 길들여지지. 우린 모두 서로의 거울이야. 그렇게 되면 행복해지는 거지.”
『화씨 451』 – 레이 브레드버리
우리는 독서를 통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거나,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들이 모두 뒤바뀔 정도의 큰 생각의 변화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말들이 존재하는 것이죠. 분명히 책은 우리의 사고를 넓혀주고,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것은 맞지만, 자칫하면 책이라는 물건 자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고,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삶에서 활용할 것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책이 아무런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면, 단순히 종이 위에 글자에 불과할 겁니다. 불타는 집 속에서 노파가 지키려 했던 것은 책 그 자체가 아니라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이었을 것입니다.
“자연 속에서, 그리고 당신 자신 속에서 찾아보시오. 책이란 단지 많은 것들을 담아 둘 수 있는 그릇의 한 종류일 따름이니까. 우리가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것들을 담아 두는 것이지. 책 자체에는 전혀 신비스럽거나 마술적인 매력이 없소. 그 매력은 오로지 책이 말하는 내용에 있는 거요”
『화씨 451』 – 레이 브레드버리
그런데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하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한 건가?” “어떤 책들의 내용은 우리에게 도움이 전혀 되지 않을 때도 있는데, 책을 읽고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되어 오히려 자신과 사회에 해가 되는 행동들을 하게 되면 어떡하지?” “내가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꽤나 일리가 있는 질문들입니다. 소설 『돈키호테』를 보면, 이에 대한 재미있는 예시를 하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시골에 사는 귀족인 돈키호테는 중세 기사에 관한 책들을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기사들에 관한 모험담이 담긴 책에 중독되어 너무나도 많이 읽은 나머지 정신이 이상해져서 급기야는 자신이 기사이고, 책에 나온 다른 기사들처럼 모험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그는 책을 읽는 데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몇 날 밤을 한숨도 안 자고 말똥말똥한 상태로 지새우고 낮에는 완전히 비몽사몽이었다. 이렇게 잠도 안 자고 책만 읽다 보니, 머릿속이 말라 결국은 이성을 잃어버리기에 이르렀다. 머릿속이 책에서 읽은 마법 같은 이야기들, 즉 고통과 전투, 도전, 상처, 사랑의 밀어들과 연애, 가능치도 않은 갖가지 일들로 가득 차버린 것이다. 그는 책에서 읽은 몽환적인 이야기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했으며,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확실한 이야기는 없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돈키호테』 - 시공사
돈키호테는 기사 모험담에 나온 마법과 괴물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소동을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누군가에게 가서 결투 신청을 한다던가, 풍차를 괴물이라고 생각하여 창을 들고 돌진하는 일들이 있었죠. 돈키호테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선으로 볼 때 자신의 이상한 사상을 바탕으로 남들에게 피해만 끼치는 ‘미친 사람’이었을 겁니다.
이처럼 독서가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돈키호테의 예시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경우에는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요? 책을 최대한 많이 읽고, 또 돈키호테처럼 편협한 사고에 빠지지 않도록 최대한 다양하게 읽는 게 좋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완벽한 정답은 사실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화씨 451』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책 자체에 많은 중심을 두기보다는 그 안의 내용을 통해 내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질문들을 던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찾고 싶어서 행복에 관한 100권의 책을 읽었지만 삶 안에서 아무런 질문도,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 5권 밖에 읽지는 않았어도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행복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독서는 개인적이기만 한 활동이 아닙니다. 책 안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다른 사람은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책을 통해 타인과, 그리고 세상과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책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결국, 책은 우리의 삶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책 속에서 발견한 고민과 깨달음들을 토대로 더 행복한 삶, 더욱 인간다운 삶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기를 바라겠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발견할 것이오. 끊임없이 넘쳐 나는 이야기와 깨달음을 발견할 것이오.”
『화씨 451』 – 레이 브레드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