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에게 듣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앎과 삶의 균형을 잡으려면 읽고, 걷고, 써야 합니다”
[명사에게 듣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앎과 삶의 균형을 잡으려면 읽고, 걷고, 써야 합니다”
  • 이세인 기자
  • 승인 2024.07.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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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귀하면서도 가장 깊은 학문인 사랑, 그 깊이를 깨닫는 사람은 세상의 지식을 모두 아는 것과 같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한 말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라 불리는, 소위 가방끈이 긴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세상의 지식을 모두 아는 사람을 ‘지식인’이라 한다면, ‘지성인’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식인’은 말 그대로 지식이 많은 사람을 의미한다. 그에 반해 ‘지성인’은 인성이 뒷받침된 지식인을 뜻한다. ‘지식인 중에 소인배가 있을 수는 있지만, 지성인 중에 소인배는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이 그러하듯이.

지금 우리는 정보(지식)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정보를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저마다의 선택에 달렸다. 개인과 사회의 역량을 높이는 데 쓸 것인지, 개인과 집단의 이익에만 이용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걸러내지 않은 정보들을 가만히 묵혀 두기만 할 것인지. 이는 우리가 지성인인가, 지식인가의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여기,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을, 지성인의 덕목을 교육에 들여놓은 곳이 있다. 건강한 신체와 정서 인격을 갖추도록 돕는,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인천이 그곳이다. 인천교육은 앎과 삶이 분리된 교육을 해결하기 위해 ‘읽걷쓰(읽기-걷기-쓰기)’ 운동을 시행하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작해 학부모, 교사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까지 그 영역이 점차 확대되어 하나의 시민문화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읽고, 걷고, 쓰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돌보며 건강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지,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사진=인천교육청]

Q. ‘읽걷쓰’는 ‘읽기-걷기-쓰기’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책 읽는 도시, 인천’ 사업에 걷기와 쓰기를 넣어 확장한 시민문화 운동입니다. ‘읽걷쓰’를 시작하게 된 배경과 정책을 점차 체계화시킨 이유가 궁금합니다.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 교육에서 인간의 의미를 되돌아볼 필요성 또한 여실히 느끼는 중이기도 하죠.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교육 역시 변모하고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삶을 위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저 변별하기 위한 공부를 시키는 것은 아닌지, 학교교육은 지식을 쌓는 것에만 급급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오가다 보면 결국,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인천교육은 텍스트를 넘어 자연과 인공지능, 나아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역량이 시민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즐겁게 읽고, 온전하게 경험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읽걷쓰’를 시작하게 되었죠. 세상을 거닐며 다양한 경험을 몸으로 깨닫고, 세상과 소통·공감·연대·협업하며 세상을 써가는 것. 겉으로는 단순해 보일지 몰라도 ‘읽걷쓰’는 우리 교육이 추구해야 하는 모습과 꽤나 닮아있습니다.

읽는 행위에서 걷고, 쓰는 행위까지 확장하긴 했지만, ‘읽기-걷기-쓰기’의 순서에 따로 의미를 두진 않았습니다. 걷기를 먼저 할 수도, 쓰기를 먼저 할 수도, 또 읽기를 마지막으로 할 수도 있죠. 한 지붕 세 가족처럼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행위가 모두 융·복합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읽걷쓰’라는 한 단어로 정의함으로써 ‘통합교육’의 의미를 더욱 견고히 나타낼 수 있었고요.

Q. ‘시민저자학교’, ‘밤샘출판’, ‘가족독서캠프’ 등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읽걷쓰’ 프로그램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인프라를 통해 시민들, 나아가 지역사회에 생겨난 크고 작은 변화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읽걷쓰’는 교육을 통해 먼저 접하게 되지만, 그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지역이 함께할 때 가능합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동을 진행했을 때는 학교의 변화를 가져왔다면, 그 영역을 넓혀 일반 시민들까지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을 전개했을 때는 인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죠. 학생과 시민이 모여 책을 읽고, 직접 만들고, 그 결과물들이 학교도서관과 공공도서관에 비치되고, 다시 학생과 시민에게 열람되는, 배움의 선순환이 인천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책이라고 해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만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읽걷쓰’는 시간, 공간 제약 없이 일상 어느 순간에서 할 수 있죠. 지금 인천에서는 ‘읽걷쓰’로 그림책을 만들며 공동육아를 하는 아빠들, 매일 새벽 5시 30분마다 논어를 ‘읽걷쓰’하는 시민들, 인천의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 시민들과 ‘읽걷쓰’하는 연구소 등 다양한 색깔의 ‘읽걷쓰’ 운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학교를 넘어 지역으로 점점 보폭을 넓혀가고 있는 지금, 앞으로 더 다채로운 시민문화 운동을 만들어 갈 계획입니다.

[사진=인천교육청]

Q. 공공도서관과 지역 복합문화기관 등 독서문화 관계기관과 연계한 사업도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 독서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AI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지금, 인천교육이 ‘책 읽는 문화’를 강조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읽걷쓰’에서 말하는 ‘읽기’란 활자를 넘어 사람의 마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무한한 애정을 쏟아야 하는 자연, 그리고 AI까지 포함하는 읽기입니다. 읽음으로써 무언가를 이해하는 행위라 할 수 있죠. 그러므로 AI의 범위가 점차 확장되고 우리의 일상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읽는 행위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어야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AI의 노예라는 말이 종종 쓰이는 걸 볼 수 있는데, 지금의 AI는 오직 인간만의 영역이라 여겼던 창작도, 심지어 거짓말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AI의 노예가 될 수 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실과 가상 세계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죠. AI가 주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을 것이 아니라, 읽어내고 걸러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가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아가 ‘인간다움’,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는 역량까지 기를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 바로 ‘독서’이고요. 세상을 읽는 행위인 독서는 인간만의 능력이라 일컫는 여유와 사색,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이러한 시간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타인과 소통하는 힘이 생기곤 합니다. 다른 사람의 세상을 들여다보고, 내 세상을 보여주는 과정을 통해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이 결국 책의 궁극적인 역할이니까요. 인천교육이 끊임없이 ‘책 읽는 문화’, ‘글 쓰는 문화’, ‘일상이 배움이 되는 문화’를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Q. ‘현장형 교육감’이 되겠다는 공약에 걸맞게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신다고 들었습니다. ‘읽걷쓰’를 통해 그간 만났던 현장이나, 시민들의 피드백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책 출간기념회에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글을 써서 책을 만들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읽걷쓰’를 통해 일상에, 삶에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게 놀라운 일이었죠. 많은 피드백을 받았지만 그중, 아버지에 대한 왜곡된 기억을 안고 살다가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오해를 바로잡게 되었다는 일화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그제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씀하시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도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교사 생활 30년을 돌아보니 처음에 가졌던 의욕을 잃어버린 것 같고, 거기에 교권 추락 문제들도 얽혀 마음이 안 좋다고 하셨죠. 무언가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하게 된 것이 동화책이었고요.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의욕도 되찾고, 매사에 임하는 자세를 적극적으로 바꾸고, 그렇게 삶의 태도가 변했다고 고백을 하셨던 선생님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들이 만든 동화책을 영어로 번역해 케냐로 보내는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책을 만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과정에서 어느 하나 어려움 없이 쉽게 진행된 적이 없었는데, 완성까지 가보니 자신감이 생기고, 성취감도 느끼는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었죠. 만들어진 책이 도서관에 비치되고, 그 책을 읽으려고 대기하는 학생들, 학교들을 보면 그 영향력이 실로 대단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나아가 공공도서관을 통해 책이 출판되고, 몇백 명에 달하는 저자들이 생기는 일도 있었고요. 이러한 도서관의 기능도 ‘읽걷쓰’를 통해 생긴 변화 중 하나입니다. 이전의 도서관은 정보의 유통 기능을 중심으로 운영됐다면, 지금은 주민들의 삶의 경험이 책이 되는, 지식의 생산 기능 또한 가능하게 됐죠.

[사진=인천교육청]
[사진=인천교육청]

Q. 인천교육의 슬로건은 ‘학생성공시대’입니다. 학생중심교육을 꾸준히 강조해오셨는데, ‘읽걷쓰’ 외에 인천교육이 학생들의 성공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나 교육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인천교육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 중 하나가, ‘결대로 성장 교육’입니다. 학생들이 저마다의 잠재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이죠. 이를 위해 다양한 학교와 교육과정, 그리고 그걸 뒷받침하는 다양한 지원에 힘쓰고 있고요. 지난 코로나19 때 대중예술고, 글로벌셰프고, 바이오과학고, 소방고 등 시대변화에 맞는 학교를 세웠습니다. 이에 더해 작년에는 창업교육학교인 글로벌스타트업학교까지 만들어지게 됐죠. 현재로서는 예술중, 대중예술중, 체육중, 특수학교 등 다양한 학교의 신설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 확대와 개별 맞춤형 교육을 위해 1백여 개 기관과 협력하는 꿈이음대학 교육과정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천사이버진로교육원은 온라인으로 언제든지 진로체험과 상담을 할 수 있으며, 부족하다 느끼시는 분들을 위해 오프라인으로도 진로상담을 제공하고 있죠. 특히 올해부터는 권역별 진로체험 및 상담센터인 결대로진로센터를 구축하기 시작해, 이전보다 더 촘촘한 진로·진학·직업교육망을 만들 예정입니다.

Q. 최근 가장 관심을 두고 추진 중인 정책 사업이나 올해 추진할 주요 현안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읽걷쓰’ 교육입니다. 모든 현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죠. ‘읽기-걷기-쓰기’를 교육의 본질 삼아, 이를 바탕으로 교육을 확대하고 체계화할 계획입니다. 돌봄, 기초학력, 회복적 생활교육 등 다양한 교육영역에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사례를 계속해서 발굴하고, 적용하며, 이후 학교의 변화를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읽걷쓰’를 재구조화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인천의 시민문화 운동’이라는 수식어에 그치지 않고, 전국의 시민문화로 만들어 학생들이 시민들과 함께하며 시야를 넓히고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고요.

Q. 끝으로 앞으로의 인천교육에 대해 간단히 말씀 부탁드리며, 학생들과 인천시민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인천시민분들께서 교육감 역할을 맡겨주신 지 2년이 지났습니다. 진짜 교육의 의미를 되새기며 ‘학생중심교육’,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 ‘결대로 성장하는 교육’이라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물론 중간에 어려운 일도, 안타까운 일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무너지지 않고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 교육계 관계자들, 선생님들, 그리고 인천시민분들이 저마다 작은 수고도 아끼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렇게 인천교육은 ‘학생성공시대’의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인천교육은 지난 성과에 안주하거나 과거의 정책을 답습하지 않고, 평범에 머물지 않으며, 늘 새롭게 변모하고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학생들이 학교라는 세상에서 앎과 삶을 연결하고, 세상이라는 학교에서 자신들의 삶의 힘을 스스로 키워 나갈 수 있도록 ‘학교를 삶으로! 일상을 배움으로!’ 만드는 교육에 힘을 모을 것이고요. 그러니 앞으로도 인천시교육청이 내딛는 발걸음에 여러분의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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