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구도서관 유옥환 관장 - 모두가 높아지려는 세상의 '문턱 낮은 도서관'
동안구도서관 유옥환 관장 - 모두가 높아지려는 세상의 '문턱 낮은 도서관'
  • 유청희 기자
  • 승인 2024.06.25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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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2000년대, 경기도 안양시를 기억하는가. 지금은 모로 가도 서울이지만, 당시 안양은 경기 문화의 중심지였다. 많은 경기도민이 옷을 사거나 학원을 갈 때 안양시로 향했다. 그렇게 ‘안양1번가’와 ‘평촌 학원가’가 탄생했다. 안양시의 문화적 힘은 경기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000년대 청소년 문화를 강타한 작가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 배경이 바로 ‘안양 시내’였다. “인터넷 소설의 수도이자 문명 발원지”(‘안양’의 아이들, 2018.03.07, GQ, 이예지). 안양을 이렇게 일컫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안양시는 공공도서관 인프라도 발 빠르게 조성된 편이다. 안양시에는 1992년 현대적 의미의 최초 공공도서관인 만안도서관이 개관했다. 당시 경기도에 공공도서관 열 두 곳이 있던 시절, 그중 여덟 곳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교육청 산하 도서관이었다고 한다.

안양시 관양도서관 웹툰 특화 자료 서가.
안양시 관양도서관 웹툰 특화 자료 서가.

1992년 공공도서관 개관,
1999년 특성화 서비스 시작
...발 빠른 안양시 도서관

더 주목할 것은 도서관의 ‘소프트웨어’다. 현재 총 열 곳의 공공도서관이 있는 안양시는, 각 도서관을 다문화, 생활과학, 청소년, 웹툰, 문학 등 특화 분야를 설정해 운영 중이다. 일종의 ‘브랜딩’인 셈이다. 지금이야 음악, 미술 전문 도서관이 많아졌지만 안양시가 이 제도를 시작한 건 1999년의 일. 그래서일까? 안양시 도서관은 2022년 기준 도서관 1인당 장서수가 인구 50만 이상 도시 중 최상위다.

“도서관 자료 특성화 사업을 안양시가 빨리했죠. 1992년에 도서관 하나 지을 때는 몰랐는데, 하나둘 더 짓다 보니 차별화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어요. 초반에는 도서나 자료 특성화에 중점을 뒀는데, 2014년부터 특성화 주제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넣기 시작했어요. 이를테면, 지금 관양도서관은 특화된 웹툰창작체험관을 조성했는데 학생이나 중장년층할 것 없이 많이들 배우러 와요. 반응이 정말 좋아요. 다문화 분야를 특화한 석수도서관은 따로 교실을 마련해 한글 배움터를 운영 중이에요.”

안양시 동안구도서관 유옥환 관장.
안양시 동안구도서관 유옥환 관장.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도서관(평촌, 관양, 비산, 호계, 어린이, 벌말 도서관 총칭) 유옥환 관장의 말이다. 그는 안양시 도서관 역사를 시작부터 함께한 인물이다. 만안도서관이 태어난 1992년 안양시에 처음 영입된 뒤, 새 도서관을 건립할 때마다 호출됐다. 안양시 열 개 도서관 중 유 관장의 손이 닿지 않은 도서관이 없을 정도. 그를 만나 30년 넘게 차곡차곡 쌓아온 안양의 도서관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난 해부터 휴관 중인 평촌도서관, 그리고 도서관 속 ‘사람’ 이야기를 들었다.

‘도로변까지 문정성시’ 평촌도서관,
휴관 중인 이유는...

유 관장이 있는 평촌도서관은 지난해 1월부터 휴관 상태다. 재건축을 위해서로, 2026년 재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안양시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 수를 보유한 평촌도서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평촌도서관이 안양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죠. 시민들이 교육적인 관심도 많아 이용자 수도 많고요. 어떤 때는 열람실에 들어가려고 대기한 줄이 길어지다 보니 건물을 따라 흰색 선을 그어 줄 서기를 유도해야 했어요. 그 외에도 도서관의 문화 프로그램 참여도 굉장히 높아요.”

하지만 이 평촌도서관의 시작은 1994년이다. 과천선(지금의 4호선)이 개통할 당시다. 그 이후로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도서관의 역할은 확대됐고, 본래도 교통의 요지에 있던 평촌 도서관의 이용자 수는 더욱 증가해왔다. “공간 및 편의 시설 부족 문제가 계속 제기돼 왔어요. 증축 또는 리모델링 등 개선의 필요성이 있었죠. 그게 실행된 게 지금이에요.”

2010년, 반경 2km가 채 안 되는 비산동에 지금의 비산도서관을 개관하면서 평촌도서관 이용자들이 다소 분산될 수 있을 거라고들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도서관을 새로 짓는다고 기존 도서관 이용자가 줄어드는 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새로 생긴 도서관 주변의 시민들이 잠재적 이용자에서 실제적인 이용자로 바뀌었을 뿐이죠.”

그러니 평촌도서관 재건축은 필연적인 일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도서관 하나가 멈춘다는 건 이용자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유 관장은 “당연히 시민들의 민원이 많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불편을 어떻게해서라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 일”이라고 설명했다.

안양시 동안구도서관 유옥환 관장.

“시민들의 중단 없는 독서를 위해 근거리에 위치한 어린이도서관 내 2층에 평촌도서관 임시자료실을 마련해 평촌도서관 책을 대출하고 있어요. 도서선별에 심혈을 기울였죠. 평촌도서관에서 최근 5년 이내 가장 많이 대출된 책, 교과연계도서, 치매관련도서, 큰활자도서, 그리고 다른 도서관에 없는 평촌도서관에서만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2만 3천 권 가량 추렸습니다. 본래 어린이도서관은 특성상 일반 자료가 10%가 채 안 되는 곳이었거든요. 보호자로서 자녀들과 함께 도서관을 이용하던 분들은 물론, 인근 지역주민들께서도 좋다고 피드백을 해주셨어요. 더 많은 분들이 알고 함께 이용해주면 좋겠어요.”

장서만 23만 권…그 많은 책은 어디로 갔을까?
재건축은 도서관 입장에서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중 하나가 장서 보관이다. 23만 권이 되는 평촌도서관의 장서를 어디에 보관해야하냐는 것. “우리가 이사 갈 때를 생각해봐요. 평소에는 깔끔한 집이었는데, 이사 가려고 막상 짐을 꺼내놓으면 ‘이렇게 많은 짐을 끼고 살았구나’ 하잖아요. 도서관은 오죽하겠어요, 책이 23만 권인데…”

그렇다면 이 책은 어디로 간 걸까. “제일 쉬운 건 경기도 인근에 비교적 싼 땅에 컨테이너 박스 몇 개를 빌려 보관비용을 대는 거예요. 그럼 직원들은 편해요. 하지만 예산이 들죠.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이용할 수 없다는 거죠.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고심했어요.”

그렇게 고민하다가 집단지성의 힘으로 나온 의견이 도서특별대출서비스인 ‘일 년 대출’이다. 1년 동안 한 명에게 50권을 대출해주는데, 만약 4인 가족이 대출할 경우 한 가정에서 200권을 가져갈 수 있는 것. 도서관 입장에서는 예산을 줄이고, 이용자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독서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다시 문을 열 도서관을 기다리며, 시민들이 각자의 집에 책을 보관한다는 의미도 생겼다. 그야말로 ‘함께 만들어가는 도서관’인 것. 반응은 뜨거웠다. 서비스 개시 날 신청자들이 몰렸다. 늦게 신청한 이들은 원하는 책이 없어 아쉬움을 표했다. 평촌도서관 23만 권 장서 중 5만 권 넘는 도서가 이 제도로 반출됐다.

안양시 동안구도서관 북 큐레이션 서가.

시민 위한 문화 공간 주력,
안양시 ‘공동서고’까지

그렇다면 2026년 새로 태어날 평촌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 유 관장은 “처음 의도대로 독서문화복합공간으로서 역할을 강화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주력하는 건 공연할 수 있는 강당과 전시 기획실입니다. 지역 주민들이 그냥 스쳐 가면 모르지만 각자 다 재주가 많아요. 꼭 예술가나 직업적인 타이틀은 없어도, 취미로 서예나 그림을 작업하는 분이 많은데, 그분들이 각자의 것을 꺼내고 공유하는 판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또한, 중간 계층인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 요즘 많이 없는 게 문제잖아요? 도서관들이 이 부분에 많이 신경 쓰고 있는데 평촌도서관도 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합니다.”

유 관장이 추가로 강조한 건 ‘안양시 도서관의 공동서고’다. “제가 도서관 업무가 35년 차잖아요. 각 도서관들마다 지금 장서가 대단히 포화 상태예요. 매년 새 책이 들어오죠.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안 본다고, 낡았다고 책을 버릴 수 없는 데가 도서관이라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안양시 공동서고를 평촌도서관에 만들려고 준비 중입니다. 정말 귀한 책인데 절판될 경우 그걸 어디서 구합니까. 그런 책들을 도서관에서는 볼 수 있어야 해요.”

35년 차인 유 관장은 1989년 교육청에서 공직에 입문했고, 1992년 안양시 첫 도서관의 시작을 함께했다. 도서자료를 대출하는 1차적 의미의 도서관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이 전면화 한 지금의 복합문화시설로서의 변화를 몸소 체험한 세대인 것. 사서로서 그 역할의 스펙트럼도 어마어마하게 넓어졌을 것이었다. 그에게 어떤 프로그램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도서관 직원들의 학습공동체 동아리를 만들어 전국경진대회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기억, 코로나19가 강타했을 때 후배 직원의 발 빠른 아이디어로 ‘장서 구독’ 서비스를 만들고, 다른 시로 전파한 기억 등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졌다.

‘시니어독서클럽’의 기억
하지만 결국 그에게 가장 깊게 남은 건 ‘사람’인 듯 보였다. 그는 실버 세대를 위한 자료를 특화한 석수도서관에 있던 2016년을 떠올렸다. 60세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석수시니어독서클럽’의 일이다. “대부분 도서관 프로그램 참여자 중 시니어들이 잘 없어요. 있다 하더라도 그동안 살아오신 스타일들이 다들 있어서 운영할 때 민원을 챙겨야할 일들도 좀 있고요.”

그렇지만 석수시니어독서클럽의 기억은 따뜻한 것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책 읽는 모임이었는데, 다들 정말 기분 좋게 오셨어요. 도서관에서 사람 만나서 스스로 말을 할 수 있고, 목소리를 낼 때 누가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공감대가 형성된 사람끼리는 식사 한번 하고. 봄이 오면 숲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산책도 나가고. 재주 있는 분들은 영상도 찍어주고, 기사도 쓰고…. 노년층에게 이런 활동이 정말 필요했던 거죠. 각자 글을 쓰면 제가 편집해서 자료집으로도 나눠줬어요.”

유옥환 관장이 소장 중인 '석수시니어클럽 자료집'.
유옥환 관장이 소장 중인 '석수시니어클럽 자료집'.

“사람이요, 나이가 들면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립니다. 시니어 분들에게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선생님, 발표하실 때에는 더 크게 입 벌려서 정확하게 전달하시듯 말씀하시고, 들으실  때는 귀 기울여 상대의 말에 집중해주셔요. 잘 들리지 않으실 때는 자료집을 참조하시면 돼요. 보기 좋으시라고 편집에도 신경 써 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시고 모임에 나오세요’ 이렇게.”

그렇게 운영된 석수시니어독서클럽은 2019년, 독서 동아리 우수사례를 모집하는 ‘한겨레-책읽는 사회문화재단 공동기획 우수 사례’에 선정됐다. 고립되기 쉬운 노년층에게 도서관이 앞장서서 관계를 만들어주고,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마련해 준 셈이다.

치킨보다 싼 책, 돈 없어도 가는 도서관
유 관장은 내년 6월 은퇴를 앞뒀다. 그에게 도서관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다가 가길 바라냐고 물었다. 그는 “사람은 늘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어딜 가도 돈이 들고 그럼 눈치가 보이지 않나”라면서 “눈치 안 보이고 돈 없이 갈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 밖에 없더라. 그리고 전 세대를 아우른다. 소외됨과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도서관”이라고 했다. 그는 “그냥, 정말 문턱이 낮은 도서관. 그런 도서관으로 다가가고 싶고, 그런 도서관이 많아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치킨 한 마리와 도서 한 권 값이 거의 비슷했습니다. 지금 도서 평균 단가가 1만 8천 원이에요. 물론 오르긴 올랐지만, 치킨은 2만 3천원 대로 올랐죠. 그리고 책은 봐도 안 사라져요. 가성비가 높죠. 몽테뉴의 말처럼, ‘책은 가장 싼 값으로 영속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평생 친구처럼 위안도 주고 성찰할 수 있게 해줘요. 책을 매개로 더 많은 사람이 도서관에 왔으면 좋겠습니다. 책도 보고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사람이랑 소통하고. 변화하고 성장하며 삶의 질을 높여 나갈 수 있는 공간, 그게 도서관이라고 생각해요.”

“‘사랑해요. 도서관, 곁에 있어 행복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표현이에요.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주관한 2011년 도서관주간 표어 선정작이기도 합니다. 도서관을 가까이 하고 독서를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히길 바라요.”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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