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죽음으로 빚은 삶: 김분홍, 「항아리를 추모하다」
[시민 시인의 얼굴] 죽음으로 빚은 삶: 김분홍, 「항아리를 추모하다」
  • 이민호 시인
  • 승인 2024.05.27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엉덩이가 사라졌다. 매끄러운 엉덩이는 어느 별로 여행을 떠났기에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엉덩이를 구름으로 생각하면 비가 내렸고, 무지개로 생각하면 누군가 훌라후프를 돌렸다.

영정사진을 닦으며 돌아오지 않는 엉덩이를 생각했다.

엉덩이는 상자 속에 갇혀 있고 허리는 매듭으로 묶여 있다. 포장되기 직전 엉덩이에 얼굴을 갖다 대면 섬뜩한 냉기가 전해진다.

엉덩이 속엔 엉덩이가 없다.

추모공원 화장터, 가마에 불이 붙는다.
가마는 국화꽃 향기를 태우고, 길 고양이 울음을 태우고, 죽은 자의 발소리까지 태운다. 이제 죽은 자의 발소리는 어느 곳에서도 형체를 찾을 수 없다.

뼈가 이탈하고 생이 소각된다.
뚜껑 열린 죽음이 굴뚝을 통해 흩어졌다. 날아가는 연기를 바라본다.

몸이 먼저 영혼을 떠났는지, 영혼이 먼저 몸을 떠났는지 사망진단서에 나와 있지 않지만,
뚜껑을 닫아 놓아도 죽음은 엉덩이 모습으로 빛난다.

-김분홍,「항아리를 추모하다」

죽음으로 빚은 삶

이 시를 읽으며 두 가지 광경이 떠오릅니다. 흙으로 빚은 옹기 항아리가 가마에서 구워져 나오는 순간과 어린아이의 죽음이 겹칩니다. 죽음이 삶을 빚은 것인지 삶이 죽음에 앞서 달려가 옹기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삶과 죽음의 오묘한 현실이 숨긴 듯합니다. 죽은 아이는 옹기 항아리에 담겨 영원한 세계로 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옹기로 무덤을 삼았습니다. 『예기(禮記)』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하대(夏代)부터 독무덤이 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체를 큰 독이나 항아리 따위의 토기에 넣어 묻는 무덤, 즉 옹관묘(甕棺墓)라 부릅니다. 특히 주대(周代)에 와서는 일곱 살 아래 어린이를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시인은 어쩌면 아기 놓친 엄마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엉덩이는 무엇의 환유일까요? 엉덩이는 몸이 말간 어린아이의 몸은 아닐까요. 그래서 ‘엉덩이’를 어린아이로 대체하면 어떨까요. 그러니 “아이가 사라졌다. 매끄러운 아이는 어느 별로 여행을 떠났기에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첫머리에서 ‘엉덩이’를 ‘아이’로 바꿔도 괜찮아 보입니다.

그랬군요. 아이는 구름으로, 무지개로 은유해 변주되었습니다. 지상을 떠난 별의 모습입니다. 자유롭게 훌라후프를 돌리던 생전 아이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엉덩이는 다시 옹기 항아리의 둥근 머리와 겹칩니다. 평소 시인은 옹기 항아리를 닦으며 아이 엉덩이의 촉감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영정사진을 쓰다듬으며 살아생전 아이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던 기억이 되살아 난 듯합니다. 이처럼 시적 상상력을 통해 죽음이 어떻게 새롭게 변주되는지 시인은 잘 보여줍니다.

흙으로 빚은 옹기 항아리를 가마 속에 넣고 불 지펴 달구는 순간에 시적 상상력은 다시금 극한으로 치닫습니다. 세상은 어느새 추모 공원 화장터로 바뀝니다. 아이는 몸을 잃고 한 줄기 연기로 산화하여 이제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습니다. 슬픔은 가루가 되어 납골 항아리에 담겼는지도 모릅니다. “뚜껑을 닫아 놓아도 죽음은 엉덩이 모습으로 빛난다.”는 말이 선합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