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혀있는 고통, 구경만 하고 있진 않는지
갇혀있는 고통, 구경만 하고 있진 않는지
  • 이세인 기자
  • 승인 2024.04.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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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돌고래를 불법 포획해서 판매한 어민 9명과 돌고래 쇼 업체인 퍼시픽랜드 대표가 해양경찰청에 불구속 입건되는 일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20년 동안 자행되었던 제주 돌고래 무단 포획과 수족관 업체의 불법 거래가 한국사회에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달 핫핑크돌핀스와 동물권 행동 카라 등 10개의 시민사회단체는 돌고래 학대 논란을 빚은 경남 거제씨월드 아쿠아리움의 폐쇄를 촉구하고 나섰다. 2014년 개장 이후 지금까지 총 14마리의 돌고래가 숨졌다는 게 그 이유다. 그리고 여전히 한국에는 돌고래 벨라와 루비가 좁은 수족관에 감금 및 전시되고 있다.

현행법상 고래를 포획·유통·보관하는 일은 불법이다. 그런데 단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동안 동물원과 수족관에서는 법을 위반했다는 것을 알고도 오랫동안 불법 포획과 돌고래를 유통해 가두고, 공연에 이용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포획한 돌고래를 합법적으로 수입해 들여오는 일도 이따금 발생하곤 한다. 책 『향유고래를 훔쳐라』는 이러한 심각성을 알림으로써 좁은 수조에 갇혀 답답하게 생활하고 있는, 홀로 고독하게 견디고 있는 고래를 더 이상 재밌고 즐겁게 구경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임에도 한 페이지를 쉽사리 넘기지 못하는 건, ‘갇혀’ 있는 동물들이 결코 행복해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화 속 수족관에 전시된 향유고래를 보고 어린이들은 각자의 상상력으로 공감한다.

향유고래는 울고 있는 걸까요?
한 친구가 말했어요. “아마 무서운 걸지도 몰라, 나도 유치원에 처음 갔을 때 그랬거든.”
“이 수족관이 너무 작아서일지도 몰라, 봐봐, 몸을 못 움직이잖아.” 다른 친구가 말했어요.
“어쩌면 엄마가 보고 싶은 걸지도 몰라, 나도 혼자 여름 캠프에 갔을 때 울었던 적이 있거든.” 나는 조금 부끄러웠지만 말했어요.
“얘들아, 이 향유고래는 엄마를 다시 만나지 못할 거란다” 아빠가 걸어오시며 말씀하셨어요.
“여기는 여름 캠프가 아니란다. 이 향유고래는 여기서 살게 될 거야.”
나는 다시는 향유고래를 보고 싶지 않아졌어요.
“사진 찍으세요, 한 장에 이천 원, 한 장에 이천 원!”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저자는 향유고래를 훔치자는 어린이들의 말을 빌려 ‘모든 고래는 자유로워야 한다’라는 뜻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떠한가. 동물권과 관련된 영상이나 글을 보면 눈물은 흘리되 땀은 흘리지 않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잔혹함에 놀라지만 자고 일어나면 까마득히 잊고 마는 사람,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고통받고 있는 동물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지만,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 사람. 그 중간쯤 어딘가에 있지는 않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 있는 그런 자리 말이다.

그렇다고 자책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책은 지금부터라도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위한 고민을 시작해 보는 것을 제안한다. 먼저 땀 흘리고 있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공존을 위해서 호기심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가 아끼는 것들이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철학을 바탕으로. “다시는 향유고래를 보고 싶지 않아졌어요”라는 말 속엔 더 나은 사회란,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권리가 동등하게 보장되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띠고 있다. 인간에게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처럼, 비인간 존재들도 서식처를 빼앗기지 않고, 함부로 감금당하거나 죽임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지켜지는 그런 사회. 고통과 행복을 느끼는 모든 존재를 우리가 보호하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까.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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