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내가 이겨내지 못할 시련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세상이 주는 온갖 시련을 다 이겨낼 정도로 단단하고 강인하다는 오만함이 아니다. 삶의 시련 역시 의외로 내 그릇의 넓이 깊이만큼만 존재한다는 뜻이다. 나의 속도에 맞추어 고난 또한 따라온다. 신은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을 안겨준다는 말도 이런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나의 하루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부정적인 관념들은, 내가 보는 시야에 한정되어 있다. 내 시야 바깥에 즐비해 있는 풍파는 당장 나의 것이 아니기에. 삶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너무나 많고 깊은 시련이 존재하지만, 견뎌내야 하는 시련은 지금 당장 나에게 닥친 것에 제한되므로, 나는 분명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내 세상의 부정은 한철 먹구름처럼 흘러갈 것이다. 내 세계의 크기만큼만 힘들 것이며, 내 세계의 크기만큼만 아프고 고단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기필코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갠 하늘을 맞이할 것이다. <흔들리는 나를 안정시켜 주는 인생관>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는 고무줄과 같아서 끊어지지 않는 한 탄성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언제부터인가 이완된 사이가 다시 수축하기도 하고, 그러다 또 가까워졌을 때 축적한 힘을 받아 이완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나에게 사랑의 성숙이란 ‘촘촘히’가 아닌 ‘틈틈이’이며, 사랑의 완성이란 그 순환을 이해하는 것이다.
성숙한 사랑. 완벽한 사랑.
사랑이 뜸해질 때만 느낄 수 있는 애틋함이 있는데, 그 애틋함만큼은 뜸해질 수 없음을 알게 됨으로써 좀 더 평안한 사랑의 방식이 구축된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는 단순히 시간을 나누고 함께하기만 해서는 회복할 수 없는 피로가 존재한다는 걸 인정함으로써, 틈틈이 그러나 조금 더 빈틈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틈틈이, 사랑>
그나저나, 곧 봄입니다. 올봄은 근 몇 년간 우리가 지나온 봄보다 클래식한 봄이 될 수 있을까요. 가령, 벚꽃 축제에 갔다가 사진 찍는 사람들에 치여 너덜너덜해지는 봄 말고, 꽃이 다 저물어 갈 즈음 우연히 벚나무가 만개한 거리를 걸으며 둘만의 소소한 꽃놀이를 즐기는 봄. 기록하지 않고 기억되는 봄, 예약하지 않고 맞이하는 봄, 정해두지 않고 정해지는 봄.
사람의 마음도 결국 사들이는 거라면, 사람의 마음도 물건처럼 전시되어 있다 치면, 난 조금 더 발전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 팔려 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또는 좀 더 클래식한 사람의 마음을 발견해 사버리고 싶습니다. <클래식>
우리의 생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서 그 어떤 것을 나누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 나눔은 완전히 분리되는 차가운 독립이 아니라 절대적인 총량을 잃지 않는 다정함에 가깝다. 생각해 보면 믿음, 소망, 사랑, 관계, 인연, 업과 시련과 행복까지 삶의 수식은 전부 나눗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 아름다운 것들은 덧셈이나 곱셈으로만 그 총량을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도 결코 줄어들지 않는 법이니까. <삶의 수식>
아직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무난히 살아갈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당신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당신도 나라는 존재로 살아가는 게 처음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나도 나로 살아가는 게 처음이라서. 방금 시작한 이 하루도, 난생처음 겪는 최초의 여행이라서. <나도 나로 살아가는 게 처음이라서>
[정리=이세인 기자]
『결국 해내면 그만이다』
정영욱 지음|놀 펴냄|284쪽|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