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바꿀 힘이 있다면 세상은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우주를 바꿀 힘이 있다면 세상은 더 좋아질 수 있을까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4.03.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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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피부색은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배워 왔고,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와 ‘문제가 아니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몰라보는 게 바로 특권이다.”

우리는 평소에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마치 매일 들이마시는 공기와 같이 자연스럽게 삶 속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뉴스 어딘가에서 다뤄진 듯도 하지만, 자신에게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모르는 척하기 십상이다. 아니, 조금이라도 불편을 감수해야 하거나 내게 돌아오지 않을 혜택을 누가 받는다 하면 오히려 기를 쓰고 반대한다.

이 책의 주인공 애시 또한 그렇다. 애시는 전형적인 미국 백인 남자애라 할 수 있는 잘나가는 고등학생으로, 머릿속엔 미식축구와 여자 생각뿐 골치 아픈 건 딱 질색이다. 조금만 눈을 제대로 떠도 보이는 온갖 문제를 골치 아프다며 외면하기 일쑤였고, 사회적 약자 문제는 깊이 생각해 보려 하지 않았다. 장애가 없기에, 백인이기에, 이성애자이기에, 자신이 누리고 있는 특권이 특권인 줄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런 그의 세상이 백팔십도 바뀌는 사건이 일어난다.

“엄마,” 나는 신중히 말을 고르며 물었다. “정지 신호가 정확히 무슨 색이지?”
엄마는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더니, 딱 노리스처럼, 무슨 말장난인지 가늠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파란색, 그냥…… 평범한 파란색.”
“다른 색도 있지 않아?” 내가 유도했다. “뭐…… 빨간색이라든지?”
엄마는 눈썹을 치켜들더니 문득 불길한 징조를 읽은 것처럼 헛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노트북을 닫았다. “어디 안 좋니, 애시?”

고등학교 미식축구 선수인 애시는 경기를 치르다가 뇌진탕을 일으키고는 평소와 다른 어딘가 이상한 감각을 느낀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 하마터면 차에 치일 뻔하고는 교통 신호등의 정지 신호가 파란색이 된 걸 알게 된다. 그 다음 미식축구 경기, 애시는 또다시 뇌진탕을 일으킨 뒤 부모님이 부자가 된 걸 보고는 자신이 들이받기를 해 뇌진탕을 당할 때마다 세상이 달라진다는 걸 깨닫는다. 흑인이며 라티노 친구들이 몽땅 사라지는가 하면 남자였던 자신이 여자로 변하기도, 이성애자였던 자신이 동성애자로 변하기도 한다.

“쿼트가 널 현재 우주의 중심이라고 지목했어.” 에드가 말했다. “전문 용어로는 주관적 중심부. 줄여서 주심. 넌 주심인 동안 현실을 재정의하고 ‘그런’ 것을 ‘그렇지 않은’ 것으로 만들지. 아니면 적어도 네가 그렇게 만들기까지는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말이야.”

이처럼 혼란에 빠진 애시에게 쌍둥이처럼 보이는 똑같이 생긴 남자 셋이 나타나더니 충격적인 말을 던진다. 그가 모종의 이유로 ‘우주의 중심’으로 지목됐으며, 미식축구 경기에서 태클을 걸고 뇌진탕을 일으킬 때마다 우주가 재편된다는 이야기다. 애시는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현실과 자신의 정체성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세상의 대우 또한 달라진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며 이제껏 몰랐던 차별과 혐오 문제에 서서히 눈을 떠간다. 그리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들 방법을 궁리하게 된다.

이 책은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머러스한 전개로 웃음을 선사하며, 독자들 가슴 한 편에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또한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날카로운 질문을 숨기고 독자로 하여금 철학적 문제에 직면하도록 만든다. 누군가에게 우주를 바꿀 힘이 있다면 세상은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애시의 다중 우주 모험에 함께하며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본다면 갈수록 차별과 혐오가 심각해져 가는 한국이 나아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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