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수치심을 벗어던지십시오” 낭만적 사랑의 탄생 『루친데』
“그릇된 수치심을 벗어던지십시오” 낭만적 사랑의 탄생 『루친데』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4.03.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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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을 담은 이 작은 소설이 그대에게는 너무 분방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을 어린아이라고 생각하여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운 마음으로 소설의 순진한 방종을 참아주시고 소설의 애무에 당신을 맡겨보십시오.”

율리우스와 루친데의 사랑을 편지, 대화, 격언, 에세이 등 여러 형식으로 그려낸 이 소설이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철학, 수사학, 시, 산문, 비평 등 모든 장르를 융합해 너무 분방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먼저 낭만주의 문학을 이해해야 한다. 낭만주의 문학은 모든 문학적 갈래를 통합하고, 다양한 구성 요소를 섞어 세계를 시화詩化하는 문학이다. 그래서 낭만주의 문학에서 소설은 장르 개념으로서의 소설이 아니다. 다양한 구성 요소를 섞고 용해시키는 것으로, 장르 국한이 없는 것이다.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역사가,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된 변혁의 시기에 문학 역시 미학적 혁명이 필요하다며 초기 낭만주의 문학운동을 이끌었다. 기존의 문학 형식으로는 앞서 말한 낭만 정신을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장편소설을 택했다. 마침내 장르의 한계를 초월한 새로운 문학 형식을 구현함으로써 자신의 낭만주의 이념을 체현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루친데』다.

『루친데』는 발표 당시 실험적인 형식보다는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내용으로 더 많은 반발을 샀다. 주인공 율리우스는 루친데와의 교제를 통해 알게 된 모든 것을 아우르는 낭만적 사랑,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통찰을 공유하는데 그것은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 것이었다.

“오, 그렇게 부러울 정도로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다니! 사랑하는 여인이여, 내가 때때로 그대에게서 저주스러운 의복을 찢어내어 아름다운 무질서 상태로 흩뿌렸듯이, 그대 또한 그러한 선입견을 벗어던지고 그릇된 수치심의 모든 찌꺼기를 버리십시오.”

합리적 사고의 전통과 계몽주의적 진보를 중시하던 사회에서 슐레겔은 노력과 진보, 근면과 유용성을 배척하며 식물적인 삶, 무위, 게으름을 찬양하는가 하면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 오랜 이원론적 전통을 깨고 본능에 충실한 사랑, 관능적인 쾌락을 진정한 사랑의 요소라고 주장한다.

“사랑은 그 자체로 영원히 새롭고 영원히 젊으면 좋겠지만, 사랑의 언어는 예전의 고전적인 풍속대로 자유롭고 대담하기를 바랍니다. 로마의 비가나 가장 위대한 국가의 가장 고귀한 자들보다 덜 정숙하고, 위대한 플라톤과 성스러운 사포보다 덜 이성적이기를 바랍니다.”

슐레겔은 사랑은 도덕과 관습의 규제를 벗어나 자연스러워야 하며, 연인들 사이에서 우선적으로 추방되어야 할 것은 “얌전한 척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전통적인 도덕심 때문에 진정한 “사랑의 불꽃”인 관능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릇된 수치심”을 비웃는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지배를 받으며, 수치심을 벗어던진 사랑은 자연 상태의 사랑이며 가장 자유로운 사랑이라고 말한다.

“여인에게 얌전한 척하는 것보다 더 부자연스러운 것은 분명히 명백하게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떤 내적인 분노 없이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일종의 악습입니다. (…) 그것은 단지 겉모습일 뿐입니다. 사랑의 불꽃은 결코 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깊은 잿더미 속에서도 불씨는 타고 있습니다.”

『루친데』는 발표 당시 슐레겔과 이혼녀 도로테아의 관계와 연관되어 읽히며, 외설적인 작품이라고 비난받았다. 하지만 현재는 유럽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담론에서 낭만적이고 혁신적인 사랑의 시초로 평가받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불같고 꿈같은 사랑을 꿈꾼다. 그리고 이런 사랑을 할 때 우리는 시인이 된다. 실제로 낭만주의에서는 ‘올바른 방법의 헌신적 사랑’은 인간의 시적 측면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 『루친데』는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호수에 돌을 던지고 가라앉아 있던 감정을 일으킬 강렬하고 뜨거운 책이다.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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