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이까짓 것쯤이야 문제없다: 박세영, 「양자강(揚子江)」
[시민 시인의 얼굴] 이까짓 것쯤이야 문제없다: 박세영, 「양자강(揚子江)」
  • 이민호 시인
  • 승인 2024.02.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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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흐리고나 바단가싶은 이 강(江)물은

어지러운 이 나라처럼,

언제나 흐려만 가지고 흐르는구나,

옛날부터 흐리고나, 이 강(江)물은

그래도 맑기를 기다리다 못하여

이 나라 사람의 마음이 되었구나.

해는 물 끝에 다 갈 때,

물은 붉은 우에 또 붉었다,

아즉도 남은 배란 웃물에 나붓기는 돛단배 하나.

-박세영, 「양자강(揚子江)」

이까짓 것쯤이야 문제없다

우리 문학사에 잃어버린 시인이 또 있습니다. 박세영입니다. 1988년 해금 시인 중에 끼였지만 지금도 그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어쩌면 아예 망각 속에 가두려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요. 그는 식민지 시대 ‘카프’에서 활동했으며 해방기에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다 월북한 이후 북한에서 숙청당하지 않고 주요 자리를 맡았습니다. 더군다나 북한 애국가의 작사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럼에도 온전한 우리 문학을 꿈꾸며 그를 불러 봅니다. 그는 소위 흙 파먹고 살 정도 가난했습니다. 가난은 불온합니다. 살아갈 내적 의지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인간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박세영의 시 속에는 그런 절박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 「양자강」은 1938년 첫 시집 『산제비』에 실린 작품입니다. 당시 일제의 카프 탄압이 가혹했기 때문에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시는 배제되었습니다. 그만큼 옛 정서가 낯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중국 남경에 있는 대학에 유학했을 때 경험을 담았습니다. 당시 대부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 데 중국을 택한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유학이라 했지만 거의 방랑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그만큼 가난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중국 시민들이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모습을 깊이 새겼습니다. ‘강물이 사람의 마음이 되었다’는 표현 속에 고국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양자강처럼 두고 온 산하 역시 고통으로 붉게 물들었을 것이라고. 그러기에 그는 홀로 외롭게 떠 있는 돛단배처럼 하류로 쓸려가지 않고 상류에서 굳은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그는 굴하지 않고 현실을 극복하려 애썼습니다. “이까짓 것쯤이야 문제없다.” 말하며.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있습니다. “귀신같이 다 해내고 만다.”입니다. 친구인 송영에 따르면 가난했음에도 뜻한 바를 접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문제없다. 귀신’이었다고 합니다. 시인은 ‘귀신’인 것 같습니다. ‘문제’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신념을 품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무엇도 그를 쓰러뜨릴 수 없습니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아마도 가난해도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곳은 아니었을까요. 그의 바람마저 지워 버릴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문제없다’, 그를 흔쾌히 받아 줄 때를 기다립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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