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다 보면 뭐든 하고 있겠죠
방황하다 보면 뭐든 하고 있겠죠
  • 이세인 기자
  • 승인 2024.01.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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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깨달으려면 거쳐야 하는 시기가 바로 ‘방황’이다. 방황하지 않고선 우리는 그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다. 모든 방황은 새로운 발견의 시작이니까. 『방황하는 소설』은 기억 상실로 인한 방황, 사회 초년생의 적응과 방황, 인관관계에 대한 방황 등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로 방황하는 모습이 나온다. 7명의 저자가 그리는 7개의 방황은, 어쩌면 삶의 목적은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방황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해준다.

최은영의 「파종」은 이별로 인한 방황, 그리고 이별을 대하는 자세의 변화를 그린다. 이별은 다 슬프고 아픈 게 아니라고. 이별엔 괜찮은 이별도 존재한다고.

소리는 힘이 들고 지칠 때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다고 적었다. (...) 애써서 삼촌의 목소리를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서 슬펐다고, 소리는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글을 써서 남겨놓아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고 쓰기도 했다.

죽은 이를 기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이별을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여기며 기억에서 점점 잊혀지길 바란다. 그녀 또한 자신의 삶에서 오빠의 존재를 그렇게 잊으려 했다. 하지만 소리는 삼촌과의 추억이 깃든 상처를 보며 “이게...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사람은 사라져도 그 사랑의 기억은 남은 사람을 살아가게 만든다. 애도의 시간은 짧지만, 기억의 시간은 긴 법이니까.

소리가 어린 시절에 그와 함께 텃밭을 가꾼 이야기를 잊지 않고 붙들고 있었다. 자기 언어로 그 작은 순간순간들을 복원했다.

텃밭을 가꾸는 일은 마음을 가꾸는 일과 꽤 닮아있다. 씨를 뿌리고 흙을 덮고 물과 거름을 주는 일은 하루아침에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게 아니다. 마음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 나가야 한다. 그녀가 텃밭을 다시 가꾸고 빛내기로 한 건 진정한 이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한다.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다 보면 언젠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아픔을 추억으로 남길 날이 올 것이라고 바라며. 어떤 상처들은 영영 지워지지 않길 바라며.

우리에게 찾아오는 방황의 모습과 시기는 모두 제각각이다. 그것을 겪어 내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부딪치고 싸우기도 하며 때론 애써 침묵한다.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점, 그것이 방황의 이유가 될 때도 있다. 박상영의 「요즘 애들」은 배서정과 편집장으로 대표되는 구세대와 김남준과 황은채로 대표되는 MZ세대 간의 갈등을 그린다.

요즘 애들은 매사에 진취적이고 적극적이지 않다는 말. 구세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끼워 맞추려고 해서 생긴 말이 아닐까. 요즘 애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이 사회에, 이 직장이라는 집단에 적응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뿌리는 뻗어 나간다’라는 말처럼 흔들릴수록 더 단단하고 깊게. 요즘 애들도 그렇게 진짜 성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채로.

그리고 이제 나는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배서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배서정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나와 황은채를, 요즘 애들이라고 이름 붙여진 불가해의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어떤 종류의 이해는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자세로 남기도 한다. 내게는 그 시절이 그랬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사정이라는 게 있다. 나이, 직급, 위치에 따라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해야만 하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내가 힘들어한 만큼 그 사람도 어느 정도는 나 때문에 힘들어했을 것이라는 거. 정말 나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좋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적절한 나쁨과 좋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기자 역시도 사회생활을 오래 해본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생각 또한 틀릴 수 있다. 기자 역시 이 소설에서 말한 것처럼 ‘요즘 애들’이니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소설 속 방황의 모습과 닮은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방황하고 있다는 건 어디론가라도 가야 할 것을 알고 그 목표점을 찾고 있다는 말일 테니까. 적어도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주체적인 삶에 들어가려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말일 테니까. 변화의 중심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흔들리고 나서야 다시는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갖춰나가는 과정, 그게 이 소설이 말하는 ‘방황’이다.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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