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 수상 소식에 가슴 뜨거워졌다면… “그게 야구니까!”
김하성 수상 소식에 가슴 뜨거워졌다면… “그게 야구니까!”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3.11.06 17: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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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한국시각)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 김하성(28)이 MLB(미 프로야구)에서 한국인 선수 최초로 골드 글러브 수상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한국은 열기로 가득하다. 1957년 제정된 골드 글러브는 수비력만으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상이다. 2루수, 3루수, 외야수 등 고정된 포지션에 대해서만 수상을 하다가 지난해부터는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는 유틸리티 부문이 신설됐다. 무엇보다 아시아인 내야수 최초로 받은 상이라 더 값지다. 그동안 ‘아시아 출신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팽배했지만, 김하성은 내야수로 맹활약하며 이를 깨부쉈다. 앞서 아시아인 중 유일하게 골드 글러브를 수상한 스즈키 이치로(일본)는 외야수다. 수비 부문에서 내야수는 외야수보다 몇 배의 가치를 지닌다.

김하성의 수상 소식에 가슴 벅차오른 당신이라면 자칭타칭 ‘야구 덕후’일 확률이 높다. ‘그깟 공놀이’에 뭐 그리 열광하냐는 ‘머글’(소설 ‘해리포터’에서 유래한 단어로 ‘덕후’와 반대되는 ‘보통 사람’을 의미한다)의 타박을 지겹도록 받았을 게 눈에 선하다.

만능 야수를 의미하는 유틸리티 야수 부문 상은 2022년에 처음 제정됐다. 김하성은 최종 후보에 오른 무키 베츠(LA 다저스),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야구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춘 한국계 토미 현수 에드먼(세인트루이스)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진=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인스타그램 캡처]
만능 야수를 의미하는 유틸리티 야수 부문 상은 2022년에 처음 제정됐다. 김하성은 최종 후보에 오른 무키 베츠(LA 다저스), 토미 현수 에드먼(세인트루이스)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진=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인스타그램 캡처]

23년 차 베테랑 야구 전문기자 김양희는 저서 『야구가 뭐라고』에서 ‘야구 덕후’라면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질문, ‘야구가 왜 좋냐’고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어린 시절에는 몰입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게 좋았다. 가슴이 쿵쾅쿵쾅 대는 긴장감이 있어 좋았다. 뒤지고 있더라도 막판에는 역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어 좋았다. 9회말 2사까지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다. 꼴찌 팀도 1등을 이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저 온갖 확률 속에서 점수를 내기 위한 선수들의 치열한 몸짓을 바라보며 즐기면 되는 거였다.”

그렇다. 별일 없이 반복되는 ‘현생’을 청춘만화의 한 장면으로 물들이기 때문이다. 일본 소년 만화 잡지 점프의 슬로건이었으나, 어느새 소년만화의 3요소로 정립된 ‘우정, 노력, 승리’가 야구에는 있다. 9명의 선수와 벤치 선수들, 감독, 코치 모두가 한뜻을 모은다. 선수들은 어깨와 무릎이 너덜너덜해지도록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두른다. 관객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목이 터지라고 응원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뤄낸 눈물 젖은 승리, 기적 같은 우승. 어느새 나는 이 속에서 기꺼이 그들의 동료가 되어 희로애락을 맛보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야구처럼 온갖 감정이 뒤엉키는 스포츠도 없다. 중간에 대타로 바뀌지 않는 한 최소 세 차례는 돌아오는 타석에서 타자가 한 번만은 쳐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못 쳤을 때는 ‘다음번에는 잘할 거야’라는 기대감을 품게 된다. 마지막까지 삼진으로 돌아설 때는 실망감에 ‘다신 응원 안 할 거야’ 다짐하면서도 기어이 다음날에는 또다시 그 선수와 팀을 응원하게 된다. 가까운 지인에게 실망하면 며칠, 몇 달은 가건만 야구팀만은, 야구 선수만은 왜 그리 쉽게 용서하고 믿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게 야구야’라고 되뇔 뿐이다.”

저자가 고백했듯, 야구팀과 팬은 끈끈한 사이를 넘어 동기화된 관계다. 사랑에 빠졌을 때 아무리 주변에서 놀림 받아도 콩깍지에 씐 이상 별 수 없는 것처럼, 맨날 져서 들어오면 구박은 하겠지만 한 번 내 팀은 영원히 내 팀인 건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응원하는 팀을 ‘갈아타는’ 일이 거의 없다.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절대 쉽지 않다. 야구팬들에게 갈아탈 생각이 없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손사래 치고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야구가 아니라고.

다시 김하성의 수상 얘기로 돌아가서, 김하성의 수상은 ’BTS, 봉준호, 손흥민 Let’s go’라는 밈(meme)처럼 단순히 애국심에 확 불타올랐다가 얼마 안 가 팍 식어버리는 그런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야구 덕후들에게는 좀 더 내밀하고 진지하며 소중한 종류의 것이다. 이 미묘한 차이를 머글들에게 뾰족하게 설명할 수 없기에 이럴 때마다 만능으로 써먹는, 그러나 모든 야구 덕후들의 열렬한 마음을 담은, 그래서 모든 것을 내포하는 이 말만이 그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그게 야구니까!”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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