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 유고집 『유한함에 관하여』 출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 유고집 『유한함에 관하여』 출간
  • 김혜경 기자
  • 승인 2023.10.1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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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독일 문학 최고의 작가이자 199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의 유고집 『유한함에 관하여―유머로 가득한 이별』(민음사)이 출간됐다.

이 책은 작가가 디자인과 글꼴, 제작 사양까지 모든 것에 관여한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자 독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다. 그라스는 2012년부터 일종의 문학 실험으로 이 책을 기획하고 작업했으나 안타깝게도 출간 직전인 2015년 4월 8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부제인 ‘유머로 가득한 이별’은 30여년간 함께했던 출판사 슈타이들이 연 출판 기념회의 테마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시와 에세이 96편, 드로잉 63점에는 삶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육체와 정신의 노쇠, 죽음에 대한 예감이 특유의 강건하고도 유머러스한 스타일로 담겼다. 『양철북』,

『게걸음으로』, 『양파 껍질을 벗기며』 등 그라스의 주요 작품을 번역하고 작가와도 각별한 인연을 맺은 장희창 전 동의대학교 교수가 우리말로 옮기고, 풍부한 해제를 덧붙였다.

이 책의 원제인 ‘Vonne Endlichkait’에서 ‘Endlichkait’는 동프로이센 방언으로 “언젠가는 죽을 운명인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작가의 고향인 동프로이센 단치히 자유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로 편입되어 그단스크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가 어린 시절 사용하던 방언도 세월이 지나 이제는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죽은 언어가 되었다.

언제나 논쟁적 주제로 글을 썼던 그라스가 생애 마지막으로 다룬 주제는 무너져가는 육체와 정신, 즉 나이 듦과 필멸(必滅)이다. 죽은 새, 버섯, 짐승의 뼈, 돌, 화석, 틀니, 나무뿌리, 깃털, 낙엽, 다 말라비틀어진 열매……. 책에 실린 글들의 마중물이 되어준 그림들의 주제 역시 늙음과 죽음을 연상시킨다. 그 그림들은 일견 그로테스크하게도 보이는데, 그라스가 바라보는 우리 삶의 현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책 말미에 이르러 그라스의 마지막 하나 남은 이는 마침내 빠져 버린다. “이제 치통은 없다”고 작가는 선언한다. 이가 다 빠졌다고 세상의 부조리에 대고 일갈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건만, 그는 자신을 지난 시대의 인물로 치부하며 그 몫을 이가 남아 있는 젊은 세대에 넘기려 한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100세 생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역사가 남긴 교훈은 간데없고, 또 다른 세계대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예감에 다시 분기탱천한다. 어린 시절 자신을 “따뜻하게 데워 주었던 언어”의 소멸을 가슴 아파하면서 그가 안타까워한 것은, 언제든 우리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이방인이 될 수 있음에도 좀처럼 베풀지 않는 환대의 마음이다.

그라스가 평생을 걸고 한 투쟁과 고발의 이면에는 이처럼 짙은 휴머니즘이 깔려 있었다.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십 년을 향해 가지만, 더 이상 ‘전후 시대’라고 단언할 수 없게 된 이 시대에 귄터 그라스는 거듭 다시 읽혀야 할 작가로 남아 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 유한함에 관하여― 유머로 가득한 이별
귄터 그라스 지음 | 장희창 옮김 | 민음사 펴냄 | 192쪽 |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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